수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국내산 맥주와 북한 대동강맥주를 부은 잔에 빨대를 꽂아 놓고 어느 맥주잔의 빨대가 오래 서 있는가를 비교한 적이 있다. 국내산 맥주잔의 빨대는 얼마 되지 않아 넘어졌지만 대동강 맥주잔의 빨대는 국내산 맥주보다 훨씬 긴 시간 서 있었다.양 맥주의 승부(?)는 거품이 결정지었다. 국내산 맥주의 거품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지만 대동강맥주의 거품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빨대를 지탱하고 있었다. 대동강맥주 거품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것은 맥주 맛을 좌우하는 홉(HOP)의 품질에서 승부가 갈린 것이다. 홉은 춥고
지난 2023년말 기준 홍천의 고령인구가 첫 2만 명대를 넘어서 고령화율이 전체 인구대비 29.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비단 홍천군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으로 저출산으로 인한 건강보험료 수입 감소 문제와 함께 인구고령화로 인한 진료비 지출 증가로 이어져 현재와 같은 공적 건강보험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한다.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수입 기반 확충뿐 아니라 지출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 누수 요인을 찾아
□ 독립협회 활동과 황성신문 사장으로 독립정신을 일깨우다독립협회의 발기인에서 총대의원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서재필의 귀국과 남궁억의 만남토목국장으로 일하면서 왕명으로 강원도 지방 선유사로 다녀오고 나서 조선에는 아관파천의 상황에서 또 다른 변화의 신호탄이 나타났으니 1895년 12월 서재필의 귀국이었다. 서재필은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학(漢學)에 능하였고, 일본 하사관학교에 유학하는 동안 일본어를 습득하고 군사학을 몸에 익혔으며, 미국에서 10여 년 사는 동안 영어를 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미국인이 되어 귀국하였다. 그
두 번째 서회는 학문적인 성숙과 가족의 안위였겠다. 예리한 필봉은 이 대목의 서회에서 무디었던 일필휘지는 예리한 칼날이 되고 말았을 것이니. 남겨놓은 글이 없을 때 무한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다음은 뻔뻔한 후진이 없을 때 앞으로의 장래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자신이 남겨놓은 흔적과 안타까운 후예의 걱정을 본다. 흥에 겨워 읊고 돌아가니 지금도 남아있는데, 동고에 옮겨 기대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獨坐書懷(독좌서회)[2] / 순암 안정복세상일은 구름 같아 모두가 환망이요인심은 거울같이
지난 호에서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의사가 되는 과정 의료수가 등등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에는 의사들이 겪는 사례에 대해 몇 가지 써보고자 한다. 먼저 의사들은 수입면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생활에서는 편하지가 않다. 늘 긴장감과 죄책감(응급실 및 중환자실의 중증 전담 의사)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생명에는 직접적인 면이 적은 성형외과나 안과 정신과 등은 덜하지만 의사의 의술에 따라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데서 근무하는 의사는 언제나 압박감을 받고 있다.또 사람마다 체질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배우고 익힌 의술이 적용되지 못할 때 힘
□ 어전 통역관, 칠곡부사, 내부 토목국장 그리고 독립협회 활동을 전개하다흥화학교와 YMCA 중학부에서 교육자로서 첫발을 딛다남궁억은 민영환의 흥화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1903년도 황성기독청년회 즉 황성 YMCA 창립 이사위원 때부터 관계하던 YMCA에 중학부를 신설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자 그곳에도 초빙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이를 보면 남궁억에게는 ‘교육’이 숙명처럼 다가왔고 이를 계기로 평생 교육에 몸을 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YMCA 중학부 교사도배재의 음악교육에서 기억돼야 할 인물 중
혼자 앉아 서회를 읊는 시간이 더 없이 즐거웠으리라. 처음은 지난날의 회고다. 질곡의 세월을 딛고 버티어왔던 시간은 희비가 교차되는 엄숙한 시간이었으리니. 남을 위하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남에게 도움을 받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혼자만의 물음도 있을 것이다. 질곡의 그림자를 밟는 순간이리니.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니 별세계요, 영장 일곡은 전생의 인연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獨坐書懷(독좌서회)[1] / 순암 안정복 물고기 솔개 뛰고 영장 일곡 인연인데푸른 산 그림자는 지팡
의료대란이고들 한다. 서울의 대형병원(주로 대학병원)과 지방 의대생 일부와 전공의들이 지난주부터 집단으로 자퇴 내지 휴직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반대 이유는 2025년부터 의대생 신규 모집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엔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가 부족해 증원한다는 것인데 왜 전공의들이 반대하는가 하는 거다.표면적으로는 아주 간단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이유들이 내포돼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의사는 대략 12~13만여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매년 신규 학생
□ 어전 통역관, 칠곡부사, 내부 토목국장 그리고 독립협회 활동을 전개하다흥화학교와 YMCA 중학부에서 교육자로서 첫발을 딛다남궁억은 토목국장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민영환이 세운 흥화학교에 나가서 동국사와 영어를 가르쳤다. 또 YMCA 중학부에서도 수업하였다. 남궁억으로 확인해 본 각종 기록에는 흥화학교에서 가르쳤다는 기록은 나타나지만, YMCA 중학부에서 가르친 흔적은 남궁억을 검색한 자료에서는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선생이 가르친 제자들이 ‘남궁억 선생에게서 배웠다’라고 자술(自述)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영환의 흥화학교에서
조선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았지만 고려의 전통과 얼이 숨어 있어 불교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스님과 마주 앉아 다정스럽게 대화했고 스님과 함께 곡주도 마셨다. 나라가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운명의 위기에 놓였을 때 나라를 구한 승장의 본보기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가서 큰 성과를 거둔 스님도 있었다. 삼월 광릉에는 산에 꽃이 가득 피어나고, 맑은 강 돌아오는 길은 흰 구름 사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贈僧(증승) / 고죽 최경창삼월에 광릉은 산에 꽃 가득 피고맑은 강 돌아오는 길 흰 구름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유한하고 예술은 무한하다. 이 말은 인간은 한세상 살다가 죽으면 끝나지만 예술은 끝이 없어 오래간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품 모나리자는 지금도 유명하지만 정작 그 그림을 그린 작가는 수백 년 전에 살던 자가 아닌가. 우리나라에도 추사 김정희의 글씨나 김홍도의 미술 걸작들이 그 작품은 남아있으나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주인공들은 모두 죽은 지 몇백 년이나 됐다.지금은 살아있는 사람 즉 예술가를 대우해야 할 때이나 지역에서는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이웃 군인 양구는 현재 생존하는 철학자 중 최
□ 어전 통역관, 칠곡부사, 내부 토목국장 그리고 독립협회 활동을 전개하다아관파천으로 친일 정권이 몰락하며 선유사로 명(命) 받다춘천 의병대장 이소응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더욱 힘을 내어 의병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은 아관파천으로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자 남궁억을 강원지방 선유사로 파견한다. 거기에는 고종의 불가피한 선택이 있었다.고종의 입장에서는 아관파천으로 친일파가 괴멸되었으니 반일을 내건 의병도 활동을 중지하고 생업으로 돌아갈 것을 선유하게 되는데 선유를 담당할 적임자가 누구냐는 문제에 봉착하여 남궁억을
가야산은 선사시대 이래 산악신앙의 대상으로서 고려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한 해인사를 품에 안은 불교성지다. 가야산은 민족의 생활사가 살아 숨쉬는 명산이자 영산이라 일컫는다.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旱災·水災·兵禍)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 밝은 문 밖에 물은 쉼 없이 흘러만 가는데, 어느 곳이 진정 무릉으로 가는 길인지 알 수가 없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伽倻山(가야산) / 손곡 이달 중천에 뜬 학은 가을밤에 내리고천년의 구름은 하늘에 떠가고 있는데문밖의 물 쉼
지난달 6일 문화예술회관에서 국회의원(홍천·횡성·영월·평창) 의정보고회가 있었다. 회의장은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개회식이 있었고 지역 정당 인사의 내빈 소개가 있었다. 약 100여 명에 대한 과거나 현재 직책을 맡은 분들의 소개가 있었고 그때마다 박수를 유도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웬만한 단체장은 (참석 여부를 떠나서) 전부 소개했는데 유독 예술 관계 쪽에 대한 소개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 관계자들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별로인가 보다. 어쨌든 좀 서운한 맘을 가지고 보고회를 봤다.홍천은 땅이 제주도와 비슷하고 전국에서 제일 큰
□ 어전 통역관, 칠곡부사, 내부 토목국장 그리고 독립협회 활동을 전개하다아관파천으로 친일 정권이 몰락하며 선유사로 명(命)받다고종은 겉으로는 일본에 동조(同調), 속으로는 의병을 독려남궁억이 강원도 선유사로 파송되었을 때는 고종의 애통조(哀痛詔)가 이미 의병장에게 전달되었었다. 애통조는 1895년 12월 15일에 작성되어 1896년 초에 전국 각지의 향교에 보낸 것으로 1895년 겨울부터 격렬해진 전국의 의병들을 선무(宣撫)하기 위하여 발송한 조서이다. 1895년에 일어난 을미사변(乙未事變, 일본인의 민비시해)과 단발령(斷髮令)
나이가 연만해지면 어쩐지 자기 주변을 챙긴다. 사람도 챙기고 물건도 챙긴다. 사람을 만나자고 해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사립문이라도 열어두면 어서 들어오라는 표시가 되련만 그마저 차단된 공간을 만든다. 노인의 모습을 보며 쑥덕거리기 일쑤다. [저 늙은이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하면서. 꽃 피면 날마다 시골 스님과 만나자고 약속하더니, 꽃 지면 열흘이 지나도 대사립을 닫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此翁(차옹) / 아계 이산해 꽃 피면 날마다 시골 스님 만나고꽃 지면 열흘 지나 대사립 닫는데모두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유로 인간관계를 맺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혼자 살아가는 독불장군은 없다는 뜻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인연에 대하여 처음 만나는 인연도 떠나가는 인연도 모두 부처님의 뜻이니 너무 아쉬워하거나 슬픔을 갖지 말라고 한다. 옛 인연이 떠나면 또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있다. 인연은 오래될수록 더 두텁고 정이 간다고 한다. 가는 인연 붙잡지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말라고도 한다. 역시 부처님 말씀이다.필자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종교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열심히 믿지 않을
□ 어전 통역관, 칠곡부사, 내부 토목국장 그리고 독립협회 활동을 전개하다아관파천으로 친일 정권이 몰락하며 선유사로 명(命)받다아관(俄館)은 조선 주재 러시아 영사관을 의미한다. 한 나라의 군주가 그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이야기이니 아관파천은 조선의 측면에서 보면 참혹한 일이었다. 임금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여 주재(駐在)한 외국 공간에 맡긴다?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정세가 이러니 의병 활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강원도 춘천, 홍천, 횡성, 원주, 경기도 지평
원산에 명사십리는 바닷가 8킬로미터로 펼쳐진 흰 모래밭 해수욕장이 있다. 여기에는 해당화가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붉게 핀다. 이 해당화는 고전소설 《장끼전》에도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한탄 마라. 너야 내년 봄이면 다시 피려니와 우리 님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는 내용이 있다. 몽금포 타령에도 해당화가 나온다. 늦봄이 되어 온갖 꽃이 다 지고 없는데, 안타깝게 해당화만 홀로 남아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海棠花(해당화) / 금원 늦봄에 꽃 지고 해당화 남았는데이제 해당화마저 다 지고 만다면봄날의 일이 헛
수년 전 중국 연변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1998년 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 주관한 국제문학 심포지엄과 해외 문학탐방을 겸한 2주간의 긴 여행이었다. 여행 코스로는 연변과 심양 봉천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을 두루 거치는 관광을 겸했다. 연변은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치라고 해서 한족자치주였다. 한국인이 원체 많아서 중국 속의 한국 같았다. 연변 거리의 상점 간판은 한글이 먼저고 그 밑에 한자 간판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한자를 먼저 쓰면 그 밑에는 반드시 한글로 썼다. 일본이나 중국 본토 대만 등에도 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