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간오지 집배원 탐방, 12번째 중 네 번째 이야기>

강원 춘천 북산면 조교리 물로리, 소양댐으로 인한 고립마을 100여 가구 산간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며 주민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친구 같은 집배원을 소개한다.

봄이다. 완연한 봄이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만발한 봄꽃들이 지천에 가득하다.

 홍천 읍내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자은우체국으로 향했다. 벌써 산간오지 집배원탐방 네 번째.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 물로리 지역을 찾았다. 이곳은 104가구 3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소양댐 상류에 위치해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춘천시 북산면이지만 우편물은 홍천 자은우체국에서 배달한다. 소양호에 고립되어 배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천하는 안전운전, 행복한 나의 가정 안전지킴이 자은우체국 파이팅!”

오전 9시 자은우체국에 들어서자 안전운전 구호소리가 우렁차다. 김영권(51) 집배원을 만났다. 적재함 가득 우편물을 싣고 조교리로 향했다.

1914년 당시 조교리(照橋里)는 춘천군 북산외면 지역이었으나 행정구역이 통합되면서 조탄지역과 삽교마을 이름 한 자씩 따와서 만들어졌다. 자은우체국에서 약 11km, 원동리를 지나고 구불구불한 삽다리 고갯길을 넘어서야 나타나는 마을이다. 소양댐에 물을 담으려면 높은 산을 병풍처럼 둘러야하고 호수 가까운 수몰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높은 재를 넘어야 마을이 나타난다. 삽다리 고갯길은 경사가 매우 심해서 승용차로도 잘 쫓아가질 못할 정도다.

 조교2리 첫 번째 집이다. 농사준비에 여념이 없는 윤득모(77) 노인을 만났다. 우편물만 주고 가려했는데 모판 만드는 법, 농약살포기 작동법 등을 집배원에게 물으며 발길을 잡았다. 여기서 나고 자란 집배원 김영권은 1996년도부터는 집배원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를 도와 휴일엔 농사도 틈틈이 지어왔던 터라 농사 지식도 해박하다. 그는 우편물보다도 농사일의 어려운 점을 물어보고 또 그걸 대답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로 산 농약살포기가 말썽인 듯.

조교 2리로 향했다. 맑은 개울이 이어진다.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옛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겨운 마을이다.

배달은 이어졌다. 물로리와 조교리 갈림길에서 조교1리 이장 최성배(59)를 만났다. 오미자 밭에 비닐을 덮고 있었다. 그는 이 곳 오지마을 택배배달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산간오지에 택배배달은 우체국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이윤이 남지 않아 택배회사가 들어오지 못하는데 우체국에서 이렇게 도맡아 배달을 해주니 지자체의 예산으로 우체국을 지원해주면 안되겠느냐?”라고 했다.

조교2리 모예골 끝자락. 임도 포장길을 20여분 가량 들어갔더니 홀로 사는 이영자(77) 할머니가 택배를 받기위해 나왔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며느리가 보내온 기침약이라고 했다. “우체국 택배가 없으면 이 약을 받을 수가 없어요. 여긴 약국이 없으니 우체국 택배가 약국입니다.” 할머니는 건강을 지켜주는 우체국 택배가 정말 고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곳 모예골은 10여 가구 정도가 흩어져 살고 있었다. 과수원집 앞에 이륜차를 세웠다. 지금부터는 이륜차도 통행이 어려운 산길이라 30분을 함께 걸었다. 쓰러질 듯한 흙벽에 얇은 판자지붕과 허술한 문이 있는 작은 집이 나타났다. 홀로 살고 있는 김근호(75) 노인을 만났다. 낭떠러지 같은 산비탈 꼭대기에서 도라지 씨를 뿌리고 있다가 집배원이 왔다고 소리를 지르니 인기척이 반가운 듯 부리나케 내려왔다. 깊은 골에도 전기는 들어왔다. 멀리서 왔으니 커피를 대접해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가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서 내왔다. 산 깊은 곳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란 참……. 신문 한 부 배달하며 노인의 건강을 챙기는 김영권 집배원. 백발이 성성하지만 밝게 웃는 인상이 참 매력적이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생각했다. 깊은 골에 홀로 사는 이유야 구구절절 많겠지만 그는 사람이 그립다. 감자 씨는 언제 뿌렸고, 얼마에 팔리고, 도라지는 언제 뿌려야 적기고……. 20분이 넘도록 말동무를 해주는 김영권 집배원. 계속되는 질문세례에 다음 배달을 위해 어렵게 말허리를 자르고 내려왔다. 건강하게 지내시라 당부와 함께.

 모예골을 벗어나 조교2리 마을 끝 집으로 향했다. 강아지 많은 집에 주인은 없다. 마을에는 장뇌삼을 재배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번에 도착한 집에도 산에 삼을 심으로 갔다고 했다. 싹이 나기 전에 심어야 한다며 지금이 심는 적기라고 했다. 산에 심어놓은 장뇌삼 때문에 이곳에서는 산에 함부로 들어가면 도둑으로 오인 받는다. 마을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침입과 동시에 경보가 울리며 경찰이 출동한다고 했다.

소양호 조교리 선착장이다. 육로로는 더 이상 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구를 위한 우편함이다. 우편물 보관교부지다. 이곳에 우편물을 넣어 두면 마을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와서 우편물을 가져간다고 했다. 재밌는 것은 장마철 소양댐 수위가 높아져서 물이 차 올라오면 수취함을 뽑아서 높은 곳으로 옮겨야 한다. 물이 차 올라오는 시기를 놓치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수취함을 뽑아 옮겨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렇게 깊은 골에 집배원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면 이런 보관교부지를 늘려야 하지만 그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조교리 배달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오지마을이라 식당은 없고 보통은 조교리 집배원 본가에서 해결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자은우체국장이 도시락을 직접 싸들고 마을회관으로 나왔다. 인근에서 오미자 밭을 일구던 조교1리 이장도 함께 했다. 그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과 집배원의 고생했던 여러 일화 등을 들려줬다. 점심을 서둘러 먹고 물로리로 향했다. 조교리로 가기위해 지나왔던 마을회관 앞 갈림길에서 물로리 방향으로 다시 와서 물로고개를 넘었다. 조교리에 비해 골은 훨씬 깊었고 집배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교리는 도시길이라고.

물로리(勿老里)는 무로골 또는 무로곡(無老谷)에서 유래됐는데 뜻으로 보면 늙지 않는 마을 정도로 해석된다. 예전부터 주변경관이 뛰어나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늙지않는다고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물로리라는 명칭 때문에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하여 놀러왔던 사람들이 물놀이 할 곳은 없고 땡볕아래 호수만 보고 올라갔다는 우스갯소리를 집배원이 들려줬다. 여하튼 명칭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을에 70이상 되는 노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물로리 첫 번째 골 깊은 곳에 6.25전쟁 때 대위로 전역하고 홀로 지내는 전요현(85) 할아버지를 만났다. 도로명주소로 바뀐 것 때문에 집주소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지 집배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세상의 변화가 신기하다고 했다. 노인의 얘기는 끝없이 이어졌지만 집배원의 그의 얘기를 끝가지 들어줬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외롭다는 것을. 그가 배달할 때 가장 힘든 때는 일이 고돼서가 아니라 그들의 말을 끊고 언제 돌아서야 하는 지 모를 때라고 귀띔했다. 공과금을 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말허리를 잘라 다시 발길을 돌렸다. 마을주민들을 위해 이정도 잔심부름은 일도 아니라며.

 

물로리 마을 깊은 곳을 한참이나 들어갔더니 산에 가려 진경을 잘 볼 수 없었던 소양호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양댐은 동양최대의 사력댐(沙力; 바위, 모래, 자갈, 진흙을 쌓아올려 만든 댐)으로 높이 123m, 댐길이 530m로 세계에서도 4번째로 큰 댐이다. 춘천, 홍천, 양구, 인제군에 접해있으며 춘천, 경기, 서울지역에 생활용수, 공업용수, 홍수조절 등에 기여하는 다목적댐이다.』 강원도의 험하고 높은 산을 막아서 만든 땜이기 때문에 댐건설이전의 집들은 대부분 수몰되었다. 또한 주변의 지형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진입하는 길이 경사나 비탈이 매우 심하다.

해가 뉘였뉘였 넘어가고 있었다. 배달은 계속 이어지고 승용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이륜차가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서광선(86), 변순애(78)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다. 지난겨울 협심증으로 갑자기 쓰러진 할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해 구급대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옮겼던 사람도 김영권 집배원이다. 재작년에도 그런 일이 있어 할머니는 “2번이나 우리 할아버지 목숨을 구한 영웅”이라며 집배원에게 엄지손가락을 펴보였다. 훌륭한 일을 알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당연한 걸요. 뭘!”이라며 말끝을 돌렸다. “겨우내 할아버지가 집에 없어서 강아지 3마리 밥 챙겨주느라 혼났어요!” 라며 너스레다. 그는 집배원이 아니라 맘 따뜻한 의사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회복이 더뎌 방안에 누워있어 얼굴은 뵙지 못해 아쉬웠다. 할머니가 택배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전에 미쳐 못준 금액 천원을 줘야한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집배원은 없으면 그냥 놔두라고 하는데도 두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마을 어귀마다 중간 중간에 산불감시원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도 물론 마을 주민이다. 집배원은 어디에 누가 있는 지 마을주민 대부분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마을 출입자를 감시하고 있었다. 우리도 차량번호와 핸드폰번호를 이들에게 제출한 뒤 들어가야 했다. 외부출입자가 불이라도 내면 큰일 나니까 말이다.

 

배달의 마지막은 가리산 끝자락에 위치한 절 은주사다. 지난해 여름 수해를 크게 입어 들어가는 입구가 어지러웠다. 비포장 산길 1km가 이어졌다. 승용차로는 갈수가 없었다. 이곳에 택배가 오는 날에는 우체국에서 택배를 사륜차에 싣고 바로 배달한 다음 다시 우체국에 들어가서 이륜차로 나머지 구역을 배달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택배가 없고 신문 같은 일반우편물만 3통이어서 걸어서 올라갔다. 비포장도 심하지만 경사도 심하여 지난겨울 눈길에 배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에 선했다. 비구니 스님 몇 분만이 살고 있는 곳 은주사. 이곳에서 10분정도 올라가자 이 지역 최고의 명당 한천자의 묘가 나타났다. 다시 자은우체국으로 돌아온 시간은 5시 30분. 움직인 거리는 차로만 약 70km. 걸어 다니고 차량이 가지 못해 이륜차로 다닌 거리까지 합하면 100km가 넘는다.

 이번으로 네 번째 산간 오지마을 집배원 방문이다. 오지 집배원을 만날 때마다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집배원의 기본적인 업무야 우편물 배달이지만 산속 깊은 곳에 홀로 사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건강악화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가장 먼저 발견하고 연락해 주는 응급구조사의 역할, 요즘 같은 건조한 봄에 산불을 예방하고 신고하는 역할, 농사일 자문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산간오지 마을에 집배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누가 과연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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