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74]

혼자 앉아 서회를 읊는 시간이 더 없이 즐거웠으리라. 처음은 지난날의 회고다. 질곡의 세월을 딛고 버티어왔던 시간은 희비가 교차되는 엄숙한 시간이었으리니. 남을 위하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남에게 도움을 받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혼자만의 물음도 있을 것이다. 질곡의 그림자를 밟는 순간이리니.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니 별세계요, 영장 일곡은 전생의 인연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獨坐書懷(독좌서회)[1] / 순암 안정복 
물고기 솔개 뛰고 영장 일곡 인연인데
푸른 산 그림자는 지팡이 짚고 서있고
꾀꼬리 소리 가운데에 잠들어 하는구나.
魚躍鳶飛別有天    靈長一曲是前緣
어약연비별유천    령장일곡시전연
靑山影裡扶筇立    黃鳥聲中擁卷眠
청산영리부공립    황조성중옹권면

푸른 산 그림자 속에 지팡이 짚고 서있으려니(獨坐書懷1)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1712~179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니 별세계요 / 영장 일곡은 전생의 인연이라네 // 푸른 산 그림자 속에 지팡이 짚고 서있으려니 / 꾀꼬리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포근히 잠을 자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홀로 앉아 회포를 적다1]로 번역된다. 가슴에 쌓인 한이 많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고부간이나 부자간의 가족 갈등 때문에, 승진 문제 때문에 그리고 임을 만나지 못한 애타는 가슴 때문에 한과 눈물과 시름이 많았다. 시인은 이런 마음의 회포를 썼던 것 같다.

시인은 대체적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인 영장의 일곡에 대한 관심이 많았음을 안다.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니 별유천지가 분명하고, 영장 일곡은 전생의 인연이라고 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이 아마도 전생의 인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자는 별세계에 대한 깊은 심회에 대한 모습을 보이더니만, 자연에 합일하는 모습도 보인다. 푸른 산은 그림자 속에 지팡이 짚고 서있고, 꾀꼬리 소리 가운데 곤한 잠을 잔다고도 했다. 회포를 시원스럽게 풀만한 그릇이 작게만 보였다. 업보業報일 수도 있으리라. 이어지는 후구에서는 [세상일 뜬구름과 같아 모두 환망이요 / 사람 마음은 거울 같아 연마를 요구하네 // 흥겨워 읊고 돌아가니 지금도 남아있는데 / 동고에 옮겨 기대어 흘러가는 물을 본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뛴 물고기 솔개 날고 영장 일곡 전생 인연, 꾀꼬리 소리 가운데 포근하게 잠을 자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1746년 35세 때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부터는 학문의 목표를 오직 경세치용에 두고 진력하였던 인물이다. 1749년 만령전참봉 이후로 감찰·익위사익찬을 역임하였고, 65세 때 목천현감을 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魚躍: 고가가 위로 뛰어오르다. 鳶飛: 솔개가 멀리 날다. 別有天: 별세계. 靈長: 영장. ‘사람’이란 뜻으로 쓰임. 一曲: 한 곡. 是前緣: 전생의 인연이다. // 靑山: 청산. 影裡: 그림자 속. 扶筇立: 지팡이를 짚고 서다. 黃鳥: 꾀꼬리. 聲中: 소리가 나는 가운데에. 擁卷眠: 팔이나 목을 끼고 잠을 자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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