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73]

조선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았지만 고려의 전통과 얼이 숨어 있어 불교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스님과 마주 앉아 다정스럽게 대화했고 스님과 함께 곡주도 마셨다. 나라가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운명의 위기에 놓였을 때 나라를 구한 승장의 본보기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가서 큰 성과를 거둔 스님도 있었다. 삼월 광릉에는 산에 꽃이 가득 피어나고, 맑은 강 돌아오는 길은 흰 구름 사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贈僧(증승) / 고죽 최경창
삼월에 광릉은 산에 꽃 가득 피고
맑은 강 돌아오는 길 흰 구름 사이에
스님은 소쩍 소리에 봉은사 문 닫는다.
三月廣陵花滿山    晴江歸路白雲間
삼월광릉화만산    청강귀로백운간
舟中背指奉恩寺    蜀魄數聲僧掩關
주중배지봉은사    촉백수성승엄관

소쩍새 우는 두어 마디에 스님은 살며시 문 닫네(贈僧)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삼월 광릉에는 산에 꽃이 가득 피어나고 / 맑은 강 돌아오는 길은 흰 구름 사이라네 // 배 안에서 등 뒤로 가리켜 주는 저 봉은사엔 / 소쩍새 우는 두어마디 소리에 스님은 살며시 문을 닫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봉은사 스님에게 주다]로 번역된다. 봉은사奉恩寺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에 있는 절이다. 절의 기원은 794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한 견성사다. 그 뒤 1498년에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인 선릉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중건했다.

시인은 이와 같이 유서 깊은 봉은사를 찾아 주지 스님(?)을 만나 본인의 소회를 담아 드리고 싶었던 시상의 주머니를 매만지고 있다. 삼월 광릉에는 산에 꽃 가득 피고 있고, 맑은 강 돌아오는 길에는 흰 구름이 그 사이에 있다고 했다. 자연의 그림을 그려보려는 시인의 시상은 마냥 도톰해 보인다.

화자는 한강을 지나는 배 안에서 바라다 보이는 봉은사 스님이 문을 닫는 모습을 상상했다. 배 안에서 등 뒤로 가리키는 봉은사에는 소쩍새 두어 소리에 스님이 그냥 문을 닫는다고 했다. 스님은 왜 문을 닫았는지 그 이유를 대답해 주지 않는다. 구슬프게 우는 소쩍새 소리에 더는 구슬퍼지지 않고 싶었던 모양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광릉 산에 꽃이 가득 맑은 강 흰 구름 사이. 가리켜준 봉은사엔 살며시 문 연 스님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으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거문고와 피리에도 신묘하였던 인물로 알려진다. 젊었을 때 임시 영암에서 살고 있을 때 을묘왜란으로 왜구를 만났으나 퉁소를 구슬프게 불자 왜구들이 향수에 젖어 물러갔다는 일화가 전한다. 백광훈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이다.

【한자와 어구】
三月: 삼월. 廣陵: 경기도 광주(廣州)의 옛 이름. 花滿山: 꽃이 산에 가득 피다. 晴江: 맑은 강. 歸路: 돌아오는 길. 白雲間: 흰 구름 사이. // 舟中: 배 가운데. 背指: 등 뒤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奉恩寺: 봉은사. 蜀魄: 소쩍새. 數聲: 두어 소리가 들리다. 僧掩關: 스님이 문을 닫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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