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자는 더 이상의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산통(産痛)을 겪으며 낳은 두 아이도 두고 홀연히 떠났다. 5편으로 이어진 이야기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려는 행위는 어리석다. 선사의 고뇌에 찬 일념의 찬시讚詩다. 그리고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불심을 시험해 보려고 했을 것은 뻔했을 것인바 홀연히 떠나는 낭자를 찬(讚)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讚娘子(찬낭자) / 삼국유사 일연소나무 그늘에 한 가닥 길을 잃어밤중에 중 찾아가 시험해 보았는데새벽에 아이 낳고서 서쪽으로 가버렸네.十里松陰一徑迷 訪僧來試夜招提십리송음일경미 방승래시야초제
목욕시켜주기를 요구했던 낭자는 노힐부득에게도 목욕을 권했다. 망설이던 그가 탕 속에 몸을 담그자마자 온 방에 향기가 진동하며 몸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옆에 연꽃좌대가 나타나자 낭자가 앉기를 권하며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는 이제 [대보살]을 얻었소.”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일연선사는 다시 남암(南庵)에서 염불했던 노힐부득을 찬(讚)하며 읊었다.讚南庵大師(찬남암대사) / 삼국유사 일연골짜기에 안개 자욱 어디서 왔는지남창에 대자리니 어서 쉬어 가시오밤 깊어 시끄러움에 잠 깨울까 염려되오.谷暗何歸已暝煙 南窓有簟且流連곡암하귀이명연 남창
노힐부득의 정성으로 해산解産한 낭자는 어려운 일을 또 부탁한다. 여인의 몸에 손을 대어 목욕 시켜주기를 청하게 된다. 거절하지 못한 노힐부득은 더운 물로 낭자의 몸을 정성껏 씻어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욕하는 통 속의 물이 갑자기 황금액(黃金液)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이 소식을 들은 달달박박을 엉뚱하게 찬(讚)하며 읊은 일연선사의 시를 번안해 본다.讚北庵大師(찬북암대사) / 삼국유사 일연그윽한 바위 앞에 문 두드리는 그 소리그 뉘가 날 저문데 구름 빗장 두드리나남쪽에 이끼 푸른 내 뜰 더럽히지 마시라.滴翠嵒前剝啄聲 何人日暮
어여쁜 여인에게 부득이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노힐부득은 행여나 정신이 흐트러질까 염불을 외는데 열중했다. 한참 후 낭자는 산통(産痛)을 호소해 노힐부득은 물을 따뜻하게 끓여 출산을 도왔다. 남자가 여인의 출산을 돕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시 낭자가 잠자리를 청하면서 읊었던 일연선사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娘子之詞(낭자지사) / 삼국유사 일연걸음 늦고 해가 지니 온 산이 저물어길은 멀고 마을 멀어 사방도 끊어지고오늘밤 화상께서는 화를 내지 마시오.行遲日落千山暮 路隔城遙絶四隣행지일락천산모 로격성요절사린今日欲投庵下宿
늦은 밤에 북쪽 암자(北庵)에 낭자가 찾아와 하룻저녁 묵기를 청했다. 불도를 닦고 있던 ‘달달박박’은 일시에 거절했다. “이곳은 청정한 곳이라 여인을 들일 수 없소” 하면서 문을 닫았다. 낭자는 할 수 없이 남쪽 암자(南庵)에서 불도의 공에 열중한 ‘노힐부득’을 찾았다. 낭자의 정성이 담긴 오언율시 노래로 읊었던 후구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娘子之偈2(낭자지게2) / 삼국유사 일연나를 비는 것 길을 잃음 아니나니높으신 스님이 인도하기 위함이라청함을 거절치 말고 누구냐 묻지 마오.乞宿非迷路 尊師欲指津걸숙비미로 존사욕지진願惟從我請 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5회에 걸친 이야기다. 백월산 남쪽 3000보쯤 되는 곳에 선천촌仙川村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살았다. 속세의 얽힌 것을 풀어 버리고 무상의 도를 얻기로 하고 출가해 수양했다. 성덕왕 8년 己酉 해 질 무렵 달달박박의 북암(北庵)으로 예쁜 낭자가 사향 냄새 풍기며 찾아와 하룻밤 묵기를 청한 다음 “詞”를 지어 바치며 읊었던 시를 번안해 본다.娘子之偈(낭자지게[1]) / 삼국유사 일연해 저문 첩첩한 산 그 산길을 가는데가도 가도 사방에는 인적이 끊어지고골짜기 냇물 소리는 새롭게 들려오네.日暮千山路 行行絶四隣일모천
거북은 기린․봉황․용과 더불어 ‘4령’(四靈)으로 불린다. 기록에 의하면 1,000살 먹은 거북은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고 털이 난다 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구지가龜旨歌] 노래에서 거북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을 드러내게 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이러한 의미를 담는 구암사를 찾아 초가을을 맞이하는 심회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龜巖寺初秋(구암사초추) / 만해 한용운가을 되니 마음 맑고 달빛 달린 박꽃 흴 때서리 앞 남쪽 골짜기 단풍 숲 속삭임에몇 잎 새 겨우 붉어졌구나, 서너 가지 끝에서.古寺秋來人自空 匏花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민족이 가야 할 바를 제시한 오천년 역사의 쾌거였다. 자음 17자 모음 11자 등 28자만 조합하면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말의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야 한다면서 엄중하게 가르친다. 인문인 훈민정음이 심오하니 이는 천심이 발한 것일지니, 열다섯 줄에 자모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頌正音(송정음) / 매하 최영년 훈민정음 심오하니 천심이 발했었고열다섯 줄 자모가 갖추어져 있는데이롭게 영원한 보물 그 공덕이 깊구나.人文神閟發天心 十五
봄 매화를 보면서 시를 음영했던 경우도 많았지만 겨울 설경을 보며 음영했던 것도 부지기수다. 시적 배경은 설경이지만, 느끼는 시상은 각기 달랐다. 설경과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같은 선상에 놓거나 하늘의 선녀들이 남긴 발자국을 연상하는 시상도 있어 감정이입은 신선하다. 천황씨가 죽었다든가 황제씨가 죽었다든가, 온 산의 나무들이 모두가 흰옷으로 상복을 갈아입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雪(설) / 난고 김병연천황씨 죽었는가 황제씨 죽었는가온 산에 나무들이 상복을 입었거늘내일에 조문케 하면 눈물방울 흘리겠네.天皇崩乎人皇崩 萬樹
암자를 찾거나 정자를 찾아 시문을 음영하면서 자연을 즐기는 선현들의 시상을 많이 만난다. 자연과 벗하면 더없는 휴식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친지들과 암자나 정자를 찾아 막걸리를 나누면서 시문을 주고받은 마음은 더 없는 풍류였을 것이다. 그늘진 깊숙한 골짜기는 마치 긴 행랑만 같은데, 흐르는 시냇물에 해와 달이 떠돌고만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下仙巖(하선암) / 추사 김정희그늘진 깊숙한 골짜기 행랑 같아흐르는 물에 해와 달이 떠도는데흰 구름 먼지 없어서 향불이나 피우리.陰陰脩壑似長廊 流水浮廻日月光음음수학사장랑
우리 음식 중 꽃으로 부친 ‘전’ 부꾸미가 일미를 더한단다. 부꾸미는 찹쌀가루, 밀가루, 수수 가루 등을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빚어 번철에 지진 음식으로 흔히 [전煎]이라 하기도 하고, 화전花煎으로도, 차전병의 하나로 꽃잎을 붙여 부친 부꾸미로도 알려진다. 식사대용이나 술안주로 활용했다. 삼월 삼일 명절은 밝고 고운 햇볕 아래서, 울긋불긋한 꽃들이 아름다움을 서로 다툰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花煎(화전) / 도애 홍석모삼월 삼일 밝은 명절 고운 햇볕 아래서울긋불긋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구나성안엔 진달래꽃으로 화전안한
여인네들에겐 삼종지도(三從之道) 지키는 것을 근본으로 여겼다. 어려서는 부모 말씀에 순종하고 혼사한 후에는 남편을 따르며, 나이 들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요즈음으로 말한다면 여자의 인권을 무시한 행위라고 야단이겠지만 우리 선현들은 금언과 같이 여기면서 잘 지켰다. 걷고 또 걸어서 겨우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바다 끊임이 없고 거울 같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磨天嶺上吟(마천령상음) / 송정부인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더니동해바다 끊임없고 거울처럼 맑았어라만 리를 무슨 일로 왔나 삼종도리 귀하네.行行遂至摩天
여성의 생각과 뜻을 짐작하기 어렵단 말을 한다. 황진이가 은사 서경덕을 사모했던 일이랄지, 변승애라는 젊은 여인이 시인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다 연정을 느끼며 접근했던 일들이 실례이리라. 계산상으로 자하는 73세, 젊은 여자 나이는 스물 셋이었음이 시문 속에 훤히 보인다.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을 입은 여인이, 마음 속 정을 정갈스럽게 재잘거리며 얘기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莫問郞年歲(=贈卞僧愛:막문랑연세) / 자하 신위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에다마음에 정성스레 재잘재잘 얘기하네님이여 오십년 전에 스물
[고苦]는 맛이 ‘쓰다’는 뜻을 담지만 ‘모질다․지겹다’는 뜻도 담고 있다. 지겹도록 더운 여름을 [고열苦熱]이라 했고, 모질고 지겹게 비가 내는 것을 [고우苦雨]라 했다. 인생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은 [고행苦行]이라고 했다. 여름 장마에 ‘이제 그만!’ 할 정도로 지겹게 비가 내렸겠다. 지겨운 비 지겨운 비 지겹게도 오는 비에, 밝은 해는 나오지 않고 구름도 안 열린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苦雨歎(고우탄) / 다산 정약용지겹게도 오는 비 지겹게도 오는 비맑은 해 안 나오고 구름도 안 열리고밀 보리 쓰러지어도 일어나지
낙화를 보면서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인생을 피었다가 시드는 한 송이 꽃일 뿐이라 한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일 년 동안 인고를 딛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진 바람과 서리와 눈을 견디어 냈다. 물이 부족했을 때는 목이 말라 애태웠고, 햇볕이 부족해 몸부림을 치기도 했었다. 금년 꽃은 지난해와 같아서 좋기만 한데, 지난해의 사람은 금년에 와서 너무 많이 늙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落花(낙화) / 형암 이덕무금년 꽃 지난해 같아서 좋기만 하지만지난해 그 사람은 금년 와서 늙었구려사람은 가석한 낙화니 쓸
1923년 일본 동경에 관동대지진이 일자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군에 학살당했다. 이에 의열단은 결사 단원을 일본에 파견해 요인을 암살하고자 계획을 세웠고, 김지섭 의사가 실행 대원으로 선임됐다. 의사는 일본 궁성으로 들어가는 이중교(二重橋) 위를 달리며 위병들을 향해 2개의 폭탄을 더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오늘날 종적을 감춰 바다에 뜬 이 나그네, 와신상담했던 사람이 아니던가를 묻던 시를 번안해 본다.決平生志(결평생지)[2] / 추강 김지섭오늘날 종적 감춰 바다에 뜬 이 나그네그 아니 누워서 상담했던 사람 아니던가오늘 고향 향하는 길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 등불 격으로 흔들릴 때 분연하게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의사와 열사들이 있었다. 이름을 널리 알렸던 장군이나 의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없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민족 대부분은 그렇게 의분을 삭이지 못해 자기의 목숨을 쉽게 생각했다. 기구한 세상 분분한 물정 촉도보다 험하고, 성내고 흥하고 정미로움은 진나라보다 더 무섭다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決平生志(결평생지)[1] / 추강 김지섭넓은 바다에는 좁쌀 같은 이 한 분이고뱃속 사람 모두 원수라 친한 사람 누군가세상은 촉
사람이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돌아오면 늙어감을 두렵게 생각한다. 정신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희미해지면서 피부로 느껴진다. 늙어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울을 볼 때 흰 머리카락에서 부터다. 다음은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의 모습에서 이런 감정을 받게 된다. 현대인도 마찬가지지만 선현들도 같았다. 흰 수염 두서너 줄기 더해만 가는데, 내 몸은 육척의 키를 더해가지 못한다면서 읊었던 시다.元朝對境(원조대경) / 연암 박지원하얀 수염 두 서너 줄기 더해만 가고내 몸은 육척의 키 더해가지 못하는데해마다 달라진 얼굴 금년에는 변
시인은 당대의 평양 가객들이 공연을 펼칠 때마다 양귀비를 담은 노래를 선창했다. 이 비련의 가락이 평양 감사의 부임 축하연에 불렸던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관서인들의 기호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세춘이 이 노래를 평양에 소개하면서 서울에서 유행 중이던 새로운 가락을 소개했다. 늦은 저녁 무렵에 신륵사 종소리 들리니, 누각 앞 버드나무에 묶어둔 배 풀어 돌아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歸神勒寺(귀신륵사) / 석북 신광수봄날에 푸른 강물은 옷에 물이 든 듯강위에 원앙새는 서로 쫓아 나는 데신륵사 종소리 들려 배 풀어 돌아가네.
시적 상관자인 신광수는 시조란 말을 처음으로 썼다. 특히 관서악부 제15수에서 [처음에 부른 창은 양귀비를 부른 장한가인데(初唱聞皆說太眞) / 지금도 마외역에 남은 한을 슬퍼하네(至今如恨馬嵬塵) // 일반시조에 장단을 붙인 이는(一般時調排長短) / 바로 장안에서 온 이세춘이었다(來自長安李世春)]라 이세춘을 지목했다. 개 두 마리를 앞세운 시골 아낙네가 있었는데, 고리짝엔 점심 참 가득 담았다던 시다.送申使君之任漣川(송신사군지임연천)/혜환재 이용휴개 두 마리 앞세우고 시골 간 아낙네가머리에 인 고리짝에는 점심 참 담았는데행여나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