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를 불문하고 친지와 만나 따스하게 대화 나누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헤어지는 시간은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헤어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상대를 보면 다시 주저앉고 싶은 갸륵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연인이었다면 더 이상 말을 해 무엇하겠는가. 아직 달도 뜨지 않은 초저녁이었다면 눈물과 한숨이 마르지 못했으리라. 가고 가시는 그 길을 편안하게 가시옵고, 길
모기 녀석이야 앙칼지게 물든 말든 여름이면 시원한 누각에서 낮잠 한숨을 하기에 딱 좋다. 암벽에 정자를 짓기도 하고, 번지르르하게 암자를 짓기도 한다. 신선이 따로 있을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에서 임과 함께 단잠을 자고 나면 천하를 얻은듯한 착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빈 벽 절반 쫌 가을달이 밝게 비추고 있는데, 그대와 서로 다정
퇴근길에 주막집에 들러 한 잔 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풍습이었던 것 같다. 시계를 잡히고 술을 먹는 일은 흔히 있었던 일이고, 옷이며 조복까지 잡히는 일도 빈번했던 것 같다. 남자의 못된 술주정이었으리라. 그 뿐만 아니다. 집이 가난하다 보면 출퇴근용으로 관에서 받은 말까지 팔아 밭을 샀던 경우도 있었으리라. 귀하고 중한 나라의 은혜 아직도 다 갚지
아는 친지 집을 찾아 대좌를 하고 앉으면 술이 제격이다. 은근하게 술이 취해오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 줄줄 나오면서 대화가 무르익는다. 주흥이 무르익다 보면 한 가락도 나왔을 법하고, 삼경을 울리기가 바쁘게 어두운 오솔길을 줄달음질 하듯이 내려온다. 조처사란 친구가 은거했던 곳은 바로 그런 곳이었음을 알게 한다. 산에 있는 집에서 먹었던 술을 깨니 흰
봄은 희망과 용기를 주지만 가을은 소소함을 낳게 한다. 봄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지만 가을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다가올 겨울의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오리와 기러기 떼가 가을 하늘을 갈지자(之)를 그리면서 남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늦가을의 소묘랄까 가을은 그랬다. 대숲 바람은 불지 않고 동산은 고요한데
남성의 권유와 요청에 여성이 쉽게 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여기에 매력을 찾는 여인네들은 ‘짐짓’이란 용어까지 쉽게 쓴단다. 흔히 쓰는 말로 한 번 튕겨본다고나 할까? 남녀관계는 서로의 자제自制에서 찾는 것이 보다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시인은 흔연스럽게 양귀비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 티끌 되었다고
남녀관계는 오묘한 끌림이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성추행이나 성희롱이란 말이 유행처럼 입언저리에 오르내리지만, 과거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아니 남자의 야성野性은 아리따운 여인을 보면 가만 두지 못하는 오묘한 발동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지식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억제하는 것이 지성인임을 알게 한다. 나그네 잠자리 쓸쓸해 꿈이 좋지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듯이 사물을 보고 느낀 느낌도 다 다르다.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고 달이 산이란 아들을 낳았다고 할 수도 있고, 대변을 누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물과 바다를 비추면 설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생각의 차이다. 이경(9시~11시 사이) 무렵에 산이 달을 토해냈다는 시상은 대단히 좋은 착상인 것 같다. 이경(二更)에 동산에 두웅
향로봉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의 하나다. 인제, 고성, 간성 3군 경계지역으로 1,293m의 고지에 위치한다. 구름 덮인 날이면 향로에 향을 피우는 것 같은 형상으로 보여 향로봉이라 했다고 한다. 맑게 개인 날에는 금강산 비로봉과 고성 절벽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이며 동해 해금강과 만경창파까지 보인 곳이다. 대사도 이런 산을 올랐던 모양이다. 만국의 도성
새벽부터 꾀꼬리 한 쌍이 울어댄다. 기나긴 밤을 지새우다가 늦잠이 들어 일어날 줄 모르는 여인의 가슴을 태우려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스스 눈을 비벼 뜨면 꿈에서 보았던 임의 자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허탈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꿈길에 보았던 규정閨情의 잔영에 허전함을 달랜다. 여인에게 주는 봄의 선물이다. 꽃잎 떨어뜨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기
뿌옇게 안개 낀 강기슭에 모래톱이 보이고 해오라기 한 쌍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아침 일찍부터 먹이 사냥을 하고 있겠지만 먹잇감은 나타나질 안는다. 버드나무는 푸릇푸릇 봄 멍이 들기 시작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가 서서히 걷히는 지 멀리 텃새들이 아침부터 멱을 감는다. 춘경春景이 나들이 나가는 자연의 절경이다. 누대에 가득한 버들가지 문 앞에 드리워져
이별은 아쉬움으로 가슴 한 켠에 잔잔하게 남게 된다. 이 세상에 만났던 사람과 이별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되묻는 시인묵객도 많았다. 그러면서 이별을 아쉬워한다. 시인의 시상에도 이런 은근한 생각이 은유적으로 숨겨져 있다. 나이 들수록 이별의 아쉬움과 기다림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허연 귀밑머리 자꾸 나는 것을 가엾게 여기면서 정다
큰 계곡은 마음을 넓게 한다. 마음만이 아니다. 생각 자체도 크게 한다고 한다. 계곡 자체의 형상들이 그러할 것으로 생각된다. 깊은 산 큰 계곡에 있으면 누가 찾아 올 사람도 없지만 누군가가 꼭 올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수가 있다. 그런데 안개나 나들목이 가려 누군가가 올지도 모를 발길을 붙잡을 지도 모른다. 길이 막혀 올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는 있
작가는 지금 달도 져버린 강변 누각에서 꿈속이지만 홀로 가고 있을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보고 싶은 임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본다. 늘 보았던 보고 싶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 먼 곳에 꿈속의 일인 양 아득하기만 하다. 지금 이 시각이면 서로 만나 즐겁게 손잡고 걷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잠길 수가 있을 것이다. 마음 속 어여쁜 임 꿈
시인의 나이 만년에 쓴 작품으로 보인다. 사람이 나이 들면 흰 머리가 희끗희끗 난다. 인생의 황혼기에 흔히 보이는 현상으로 흰 머리가 난 시기에 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해오라기의 색깔은 백색이다. 먹이를 찾아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힘이 없어 노쇠한 시인 자신의 초라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란 생각을 선뜻 하게 된다. 해오라기는 모래에 의지해 날다가 앉아
여인이 쓴 시의 대체적인 경향을 보면 멀리 가 있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것도 직설적인 표현이 대부분으로 은유적이며 우회적으로 쓴 경우는 많이 드물었다. 시인이 규방의 원망이었다면 황진이처럼 보름달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넣었다가 굽이굽이 펴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서풍이 불어오니 오동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하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을 보내고 난 후 한 학자가 첫눈을 본다. 솜덩이, 솜이불, 온통 흰 세상이라고 표현할 법한 첫눈을 보고 시인은 누군가가 황홀한 수정궁에 자기를 앉혀 놓았다는 시상을 전개한다. 범상한 시심은 아니라고 보아진다. 누군가가 분명 시인의 사립문을 찾아와 큰 선물을 주었을 법했으련만 막상 나가보니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립문 앞에 커다란 소
옥당은 대체적으로 홍문관을 지칭하기도 했다. 곧 조선 시대 삼사의 하나로 궁중의 경서와 사적을 관리하고 왕에게 학문적 자문을 하던 관청으로 불렸다. 홍문관은 경서와 사적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로 학문적·문화적 사업에 관여한 기관이었다. 옥당에 있는 산수화 한 폭의 매력에 빠져 백 갈래 폭포가 나무 끝에 비로소 보
봄을 피워 문 매화가 진한 매향을 풍길 즈음의 온 집안은 그 향이 진동한다. 화장을 짙게 한 여인이 사립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 것만 같다. 매향 아씨가 봄 처녀가 되어 찾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봄을 그렇게 매향을 보내면서 우리 곁에 찾아 온 것이다. 졸졸졸 내가 흐르는 개울에도 북쪽 농막의 기슭에도 매향의 진동함은 함께 읊는다. 봄 구름이 한밤에 눈
백아와 종자기에 대한 고사다. 백아는 가야금을 잘 타는 명인이었고, 종자기는 음악을 잘 알아들었다. 그러던 종자기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백아는 종자기의 죽음을 슬퍼하며 더 이상 가야금을 타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가야금의 명인 백아와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종자기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음(知音)이라 가르치고 있다. 거문고 줄을 골라내어 옛 가락을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