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75]

남성의 권유와 요청에 여성이 쉽게 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여기에 매력을 찾는 여인네들은 ‘짐짓’이란 용어까지 쉽게 쓴단다. 흔히 쓰는 말로 한 번 튕겨본다고나 할까? 남녀관계는 서로의 자제自制에서 찾는 것이 보다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시인은 흔연스럽게 양귀비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 티끌 되었다고 하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贈某女(증모녀)[2] / 기은 박문수
왕소군의 고운 모습 오랑캐 땅 묻히고
양귀비의 고운 얼굴 티끌이 되었는데
사람의 옷자락 풀기 아까워 말게나.
昭君玉骨湖地土 貴妃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裙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군

사람의 본성일랑 본래 무정치가 않은 것이니(贈某女)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다.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혔고 / 양귀비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 티끌 되었네 // 사람의 본성이 본래 무정치가 않은 것이니 /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어느 여인에게 주다(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완만한 상승곡선이란 은유적 표현은 작품성을 격상시켰다. 비유법의 명수임을 보여주어 은근성이란 묘미가 은유적 속성에 고운 색을 덧칠했다. 곧 전구에서는 [나그네 잠자리가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나 /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봄 한 철 이라네]라는 은유적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시인은 이어지는 경련과 미련에서는 직설적인 직유성에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았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캐 땅에 묻혔고, 양귀비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 티끌이 되어 지금은 없다 했다. 정절의 고운 자태도 살았을 때 뿐이지 죽어지면 소용이 없다는 뜻을 내포한다.

주색이라고 했다. 거나한 한 잔에 노골적으로 여인을 희롱하지 아니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화자는 노골적인 본색을 드러내 사람의 본성이 본래가 무정치 않은 것이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라는 시상을 드러냈다. 전반의 은유와 후반의 직유적인 대비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왕소군도 땅에 묻고 양귀비 티끌 되네, 사람 본성 무정치 않네 옷자락 풀기 아껴 말게’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32년 선혜청당상, 1734년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 진주사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호조참판을 거쳐 1737년 도승지를 역임한 뒤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풍덕부사로 좌천되기도 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한자와 어구】
昭君: 왕소군. 중국 4대 미녀. 玉骨: 고운 모습. 湖地土: 오랑캐 땅에 묻히다. 貴妃: 양귀비. 중국 4대미녀. 花容: 꽃다운 모양. 馬嵬塵: 마외파의 티끌. 당 현종이 양귀비를 사사한 곳. // 人性本: 사람 본성. 非無情物: 무정치 않다. 莫惜: 아까워하지 말라. 今宵: 오늘 밤. 解汝裙: 그대 옷자락 풀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