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골은 구목령 도실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구목령으로 오르는 구비에 아름드리 돌배나무가 아홉이 있다하여 구나무재(구목령)라하는데 지금은 큰 돌배나무는 보이지 않고, 살 냄새 같은 배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그 어귀에 지금은 지갑부(75)씨가 산다. 피리골 토박이로서 맨 끝집이다. 수돗가엔 볍씨를 담근 큰 고무함지가 있었고, 물이 담긴 논에서 두둑을 지어 못자리 판을 고르고 있었다. ‘도실암’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다가 이곳으로 나와 살고 있는데 그때 지은 화전민 통나무집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자꾸 기둥이 기울고 흙이 떨어지고 나무가 썩어 개울가에 조립식 집을 짓고 산다. 화전민들이 짓고 살았던 집을 보고 싶어 가보니, 벽 두께가 한자 반 정도 됐다. 대토를 다지고 그 위에 돌로 단을 쌓고 통나무를 얹어 다시 진흙으로 이겨 붙여 쌓아 올렸다. 화전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생각된다.
갈만한 데가 있냐고 물으니 망정소가 있다고 한다. 얼마나 깊은지 명주꾸리를 다 풀어도 닿지 않았다고 한다. 한여름 천렵장소였다는데, 가재도 많았고 특히 깔딱메기(미유기)가 많았다고 한다.
망정소에는 마씨 부부와 말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자식이 없는 마씨 부부는 강가에 말을 매어놓고 들어와 대가 끊길 것을 한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고 뇌성벽력이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뒤늦게 강에 매어놓은 말이 생각난 노인은 폭우를 무릅쓰고 말을 데리러 나갔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노인도 말도 소식이 없었다. 새벽이 되자 물은 방문턱까지 차올랐고, 노파는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바위에 올라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던졌다. 그 후 노파가 노인과 말과 함께 살던 정을 생각하며 몸을 던졌기에 그 정을 바라본다 하여, 바위를 망정암(望情岩)이라 부르고, 노파가 몸을 던진 곳을 망정소(望情沼)라 한다. 심마니들 사이에서는 노인은 구목령 산신이 되었고 노파는 마고산(할미자리)의 신령이 되었다고 하여, 꿈속에 백발의 할머니가 보이면 심(산삼)을 많이 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을 떠올리며 구목령을 향하면서 ‘이 골짜기 안에는 아무도 안 살지요?’ 여쭈어 보았다. 최근에 누가 이층집을 짓고 산다고 했다. 그 골짜기 위 컨테이너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누가 산다고 했다. ‘누가’라고 하는 걸 보니 서로 왕래는 뜸 하던가 없다는 걸 느꼈다.
내친김에 올라갔다. 통나무로 지은 이층 누각이다. 집은 ‘벌개골’을 뒤로하고 남서향을 향하고 있었다. 집은 텅 비어 있고 목줄 매인 개가 짖어 쌓는다.
누구나 외지인이다. 그리고 토박이가 된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살다가 쫓겨나게 되자 그래도 평지에 땅을 가진 사람들은 남게 되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처로 나갔다.
이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찌됐든 이 마을에 살기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오래도록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쉽게 맘을 트고 살수는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품어야 한다. 산이 산을 품듯이 사람이 사람을 품어야 한다.
구목령을 오르면서 만나는 골짜기는 벌개골이다. ‘벌개골’을 오르면 ‘원골’이고, 마가리(막)에서 ‘먼골’과 만나 ‘할미자리’로 ‘모두부치’로 이어지는 골짜기다. 벌개골 어구를 지나면 피리골의 마가리라 할 수 있는 구나무고개(구목령)다. 고개가 가파르다. 숨이 차올랐다. 옛날에 봉평에서 이 마을로 시집올 때 신부도 가마에서 내려 걸어내려 왔다고 한다.
한참을 오르다가 중턱쯤에서 또 다른 골짜기를 만났다. 오른편으로 이어졌다. 도실암 막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다. 도실암 막은 태기산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도실암을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간다. 치마골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만나고 문지방바위 너머 화전민들이 살았던(지금은 낙엽송이 우거져있다) 비탈을 지나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참 깊다는 걸 알았다. 나무가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가로지른 바위를 타고 넘는다. 고목이 쓰러져 길을 막았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해거름이 들어 내려왔다.
도실암은 오래전에 꽤 알려진 지명이다. 원시림이 우거지고 산나물이 많이 나던 곳이다. 서석 생곡입구에 산나물 가공공장이 있었는데, 그때 상표가 홍천을 대표하는 산나물 ‘도실암산나물’이다. 도실암에서 나는 곰취를 주 상품으로 하여 홍천 산나물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 덕분에 외지인들이 찾아들어 산나물을 뜯는 등 산촌 체험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산림조성사업으로 도실암막의 원시림이 도벌되고 낙엽송과 잣나무를 심고부터 곰취는 사라지고 자연히 도실암곰취라는 산나물가공공장도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한시(漢詩)를 하시는 노인을 만나 홍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홍천강은 ‘덕고산’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한때는 덕고산을 찾아 횡성, 봉평에 사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나 모른다고 했다. ‘덕고산’- 대동여지도에는 분명 나타나 있지만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산.
그러나 산악인들 사이엔 꽤 알려진 산이다. 덕고산은 홍천군 서석과 횡성군 청일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덕고산 봉복사란 절이 있다.
도실암막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는 덕고산에서 샘솟고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물이 흐르듯이 산도 흘러가며 맥을 이룬다. 홍천강이 북한강으로 흘러들듯이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한강지맥(한중지맥)도 계방산 모두부치 덕고산 운무산 만대산 오음산으로 흐르고, 도실암막은 태기산으로 이어지고 그 막(마가리)에 가면 진펄을 이룬 늪에서 시작하는 물줄기는 횡성 둔내와 갑천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사람들은 구나무 고개를 넘어 봉평장을 보러 나갔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집마다 자가용이 들어오고 나서는 서석장이나 홍천으로 나간다고 했다.
다시 구나무고개로 올랐다. 등산객들이 다닌 길이 있어 조금은 수월했다. 고갯마루에 올라 이편저편을 바라본다.

봉우리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의 물결이 푸르게 짙어온다.
산~ 산~ 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 사이로 이어지는
길들이 돌고 돌고,
첩/첩/첩 가로막은 능선 사이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 작은 마을 -

멀리 보이는 골, 저기가 검산이다.
발길을 검산으로 옮겼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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