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피어올랐다. 하루하루 날씨는 수은주를 한 눈금씩 밀어 올리며 봄을 향하고 있다. 등산화에 카메라, 간단히 먹을 점심을 챙겨 길을 나서는 마음은 늘 설렌다. 춘분- 봄의 문턱을 넘어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날이다. 날씨는 온화하고 따스하다.

얼음축구로 들썩였던 얼음장은 스스로 몸을 풀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눈치와 마자떼, 은빛비늘을 반짝이는 피라미떼가 물살을 따라 지느러미를 흔든다. 연봉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해빙의 강 물결이 햇살에 반짝인다. 강은 하늘의 푸른빛과 조우하며 서서히 안개를 피워낸다. 잠시 대동여지와 홍천군지(1989년)에 남아있는 기록을 찾아보았다.

홍천은 고구려 시대 이래로 많은 이름을 갖게 된다. 고구려 시대에는 벌력천현(伐力川縣)이었고 당시의 읍지( 邑址)는 삼정포(三丁浦)였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벌력천정(伐力川停)을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년)에 녹효(綠驍)라 고치고 朔州(지금의 삭주)를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현재의 홍천으로 불리게 된 것은 940년 고려 태조(高麗 太租) 23년이다.

그 후 홍천은 현무(縣務)를 설치하고 현감(縣監)이 설치되었다가 1895년 전국을 8도(道)23부(府)로 개편할 때 춘천부 홍천군(春川附 洪川郡)으로 되었다가 다음해 8월 23부제(府制)가 13도제(道制)로 개편되면서 강원도 홍천군(江原道 洪川郡)으로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홍천지역에는 석화산(石花山) 앞에 홍천읍을 감싸고 흐르는 화양강(華陽江·홍천강), 동쪽으로는 공작산(孔雀山), 그 기슭에 자리 잡은 영서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수타사(壽陀寺), 서쪽의 칠봉산(七峰山)은 자연경계가 뛰어난 명승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화양강(華陽江)은 태백산맥의 한 골짜기인 내면 율전리(뱃재)에서 발원하여 가리산과 공작산의 물줄기와 합류하여 홍천읍을 거쳐 경기도 청평까지 150㎞를 흘러 북한강에 합류하는데, 강물이 맑고 양안의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아 홍천군의 상징적 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홍천의 다른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이 홍천은 강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고구려시대의 벌력천이란 이름은 물살의 세기를 말해주는 뜻임을 알 수 있고 당시의 삼정포라는 포구가 생길만큼 큰 강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녹효(綠驍)·화산(花山)<우수주에 속한 화산현(신라 경덕왕 16년)>이란 이름은 산이 지형에서 붙은 듯 한 지명인데, 녹효(綠驍)·화산(花山)은 홍천을 상징하는 산으로서 지금의 남산과 석화산(石花山)을 말한다.

대동여지도에 보면 홍천을 중심으로 하류지역은 홍천강으로, 범파정(대기고개) 위쪽 상류지역은 벌력천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지도에서 처음으로 홍천강이란 이름이 지도상에 나온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벌력천이란 이름은 꼬리를 감추고 화양강이라 부르게 된다. 대부분의 홍천 사람들 또한 홍천 시내를 감싸고 흐르는 강은 화양강(華陽江)이라고 부른다. 홍천시내의 초·중·고교의 교가에도 화양강(華陽江)이란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화양강(華陽江)은 홍천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자리 잡은 이름이다.

화양강(華陽江)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자료는 1864년에 편찬한 관동지가 유일하며, 홍천지역에서는 홍천문화원에서 발행한 ‘화양시사집록’에 짧게 소개되고 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면 북쪽으로는 석화산이 서쪽으로 이어지고 옛 산성터의 봉우리가 우뚝 서있다. 남쪽을 바라보면 봉우리가 연달아 달리는데 그 모양이 푸른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의 형상이라 녹효(綠驍)라 하고, 남산과 화산을 안고 도는 강 양편에 철쭉과 단풍이 물빛에 환히 비추어 밝게 빛난다하여 강을 화양강(華陽江)이라 하였다고 했다.(강창도·90)

따라서 화양강(華陽江)에 대한 유래는 알 수 없고, 구전되어 내려오는 기록들은 화냥바위와 관련된 자료가 있을 정도다.

벌력천은 기세등등한 물줄기에서 비롯된 것이고 화양강(華陽江) 또한 물속에 비친 맑은 풍경에서 연유 된 점과 넓은 내를 가진 홍천(洪川)이란 지명이 붙은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홍천은 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사 속에 숨은 자료를 찾는 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길을 나선다.

흘러가는 물은 흘러가게 하라.

발길은 이제 흘러오는 강물을 따라 오르기로 했다. 연봉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연봉 강변로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에서 삼삼오오 지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얼굴에 봄 햇살이 가득하다. 마음에 품은 소망만큼 햇살이 가득하길 바라며 오르다가 연봉농협 건너편 강변 쉼터에 세워진 ‘홍천강을 청청수로 보호하자’는 표지석을 보았다. 97년 물의 해 기념행사로 세운 기념비다. 대리석에 새긴 우리의 소망이 먼 훗날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물줄기를 거슬러 올랐다. 남산교를 지나 병원으로 가는 산책로에 섰다. 비석이 서있다. 자연 대리석에 <화양강 맑고 깨끗한 화양강은 홍천의 자랑>이라 새겨 넣은 지석이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 기록은 없으나 강을 사랑하는 홍천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정감 있고 오랜 추억을 가진 이름들이다.

길을 떠나면서 필자는 편의상 화양강이란 이름보다는 홍천강이란 명칭을 붙이기로 했다. 화양강이든 홍천강이든 간에 홍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기 바라며, 샛강을 찾아 나선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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