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77]

이별의 그리움을 붓으로 쓴다면 한 권의 책이 되었을 것이고, 눈물로 채웠다면 술항아리로  하나 가득 찼을 것이다. 이별하는 그 장면도 마찬 가지이겠지만, 이별하고 난 뒤의 아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으리. 시적 화자가 여성이라면 떨리는 감정이 극에 도달하는 몸부림이었겠고, 남성이었다면 한 말 술도 부족했을 것이다. 옛날의 역 밝은 달빛 아래서 나눈 이별주였다면, 아마도 강남의 소쩍새 우는 그때였을 것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送人(송인) / 고담 이순인
한 말 술로 오늘 저녁 우리 서로 만나서
어느 곳에 서로 가장 그리워해야 하나
옛날의 달빛이라면 소쩍새 우는 그 때겠지.
一墫今夕會    何處最相思
일준금석회    하처최상사
古驛逢明月    江南有子規
고역봉명월    강남유자규

어느 곳에서 만나든 서로를 그리워해야 할까 보네(送人)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43~15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말 술로 오늘 저녁 우리 같이 만나서 / 어느 곳에서 만나든 서로를 그리워해야 할까 보네 // 옛날의 역 밝은 달빛 아래서 나눈 이별주였다면 / 아마도 강남의 소쩍새 우는 그 때이겠지]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지인을 보면서 / 한 말 술로 오늘 저녁에는]으로 번역된다. 친구끼리 만나서 헤어지는 장면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모습이 선하다. 술잔을 앞에 놓고 권하거니 받거니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간절한 한 마디씩 던지는 이별주는 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정성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도 그 정도는 아마도 같았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인은 친구와 헤어지는 심정은 차마 보낼 수 없다는 한 마음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시상의 밑그림이 잘 그려진다. 한 말 술로 오늘 저녁 우리 같이 만나서, 다시 어느 곳에서 서로를 가장 그리워해야 할까라고 했다. 헤어지기가 너무 섭섭하다는 말과 함께 그 이별이 다시 재회의 기쁨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화자는 오늘의 이별이 과거의 이별과 대비해 보는 순수성을 나타내 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의 역 밝은 달빛 아래서 나눈 이별주였다면, 아마도 강남의 소쩍새 우는 그때였을 것이라 했다. 아마도 소쩍새가 우는 화창한 봄날이었음을 떠올린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현재에 대한 서운함과 미래를 살며시 예견하는 아픔으로 치환해 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 말 술로 오늘 저녁 그리워서 서로 만나, 밝은 달빛 이별주를 소쩍새 우는 그 때를’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43~1592)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들을 역임하였던 인물이다. 1592년(선조 25) 예조참의에 올랐는데 임금이 의주로 피난하게 되자 중전과 동궁을 호위해 피난하다가 결국 과로로 병이 들어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一墫: 한 말 술. 今夕會: 오늘 저녁에 만나다. 何處: 어느 곳. 最相思: 가장 서로 그리워할 것이다. 상사의 뜻이 최고조였을 것이다. // 古驛: 옛날에는. 逢明月: 밝은 달밤에 서로 만나다. 과거를 회상해 보는 시상이다. 江南: 강남. 곧 강남으로 갔던 (소쩍새). 有子規: 소쩍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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