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615)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계묘년 막바지인 지난해 12월 28일 홍천군자유총연맹(회장 유영곤) 연말 총회가 하오안리 양지말화로구이 연회 회의장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신영재 군수와 박영록 군의장 외 군의원과 내외빈 회원 등 백여 명이 참석해 성대한 송년회 겸 총회를 마쳤다. 특히 내빈으로 자유총연맹(전신 대한반공청년단) 초대 단장이었던 성낙신(작고)의 장남 성진경(88)과 4남 성웅경(72) 씨가 참석해 더욱 뜻있는 연말 총회가 이뤄졌다.

유영곤 회장이 취임하고서 큰 행사로는 처음 개최되는 총회였고 임원진 외 회원도 많이 교체된 상태다. 그동안 자유총연맹을 이끌어 온 이희덕 전 회장은 10여 년간 연맹을 맡아 오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자유총연맹의 역사는 근세 우리나라의 정치와 무관치 않다.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광복이 되기 전 당시 청년인 성낙신이 주동이 되어 애국청년단을 조직해 일제와 맞섰다. 일본이 연합군에 의거 패망하자 우리나라는 급속히 혼란에 빠지고 무정부상태에서 미군정이 시작됐다.

이런 복잡한 정치적 구조 상태에서 남쪽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자유민주 정부가 태동했고 그동안의 임시 치안은 미군정(하지 중장)이 맡아서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북쪽은 소련의 스탈린과 김일성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유엔에 의해 38선이 그어졌다. 홍천의 경우 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적산자산) 중 일부는 연고에 의해 주인이 정해지고 그 외 재산은 필요에 따라서 소유권이 주어졌다. 이때 성낙신 단장은 일본인이 소유했던 전 홍천문화원 부지 약 천여 평을 점유해 애국청년단 소속으로 했다.

그 후 일부 주거지와 상가를 철수시키고 홍천청년단을 위한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이때 성 단장은 애국청년단을 대한청년단으로 개명하고 질서 확립에 앞장서 청년운동을 계속했다. 1949년 당시 홍천군 인구는 13만 7천여 명으로 근 14만여 명에 이르렀다. 성 단장은 홍천군과 인제군 일부(당시 행정구역에 인제 남면 등 일부가 홍천군에 편입돼 있었음)를 포함해 대한청년단 조직을 정비하고 주로 반공운동에 힘썼으며 치안을 위해 경찰과 함께 공조했다.

이즈음 큰 사건으로 화촌면 야시대리 대남공작원 침투 사건이 벌어져 경찰과 청년단원이 합세해 큰 전공을 세웠다. 이때 침투한 북한정찰대원은 1차와 2차에 거쳐 교전해 대한청년단원 20여 명이 희생됐다. 이들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현 화촌면 야시대리 구 초등학교 터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를 세울 때 성 단장의 장남인 성진경 씨가 성금 1천여만 원을 희사한 바 있다. 이 무렵 성 단장은 청년단의 단합과 교육장소가 필요함을 느끼고 광복 직후 마련한 일본인이 두고 간 적산토지(신장대리 구 문화원 터 현 공영주차장)에 사무실을 짓기 위해 청년단원들로부터 성금을 각출하기로 하고 건축비를 조성했다.

당시에는 현금이 귀한 터라 현물과 기타 방법으로 각자 능력에 따라 내기로 했다(이 내용은 홍천신문 기고문에 이미 언급한 바 있음). 즉 형편이 나은 대원은 쌀 한 말 콩이나 팥 옥수수는 두 말을 내고 장작은 100가치 하루 품삯의 인력 등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조성해 착공할 무렵 1950년 6.25가 터졌다. 한 민족의 대비극인 한국전쟁은 3년간 진행됐고 대한청년단 건물은 1952년 휴전 직전에 착공해 목조2층 건물로 완공됐다. 1층은 공연장과 교육장 2층은 영화상영실과 사무실 등으로 활용했다.

6.25 이후 대한청년단은 반공청년단으로 개명하고 성 단장은 몇 년 더 단체를 이끌다 이임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나자 혁명정부에서는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자유당 정부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반공청년단을 해체하고 현 자유총연맹을 재창립했다. 당시 대한청년단의 모든 자산(문화원 대지 건물)은 홍천군에 기탁 귀속됐으나 이면계약으로 홍천군자유총연맹이 원할 때는 언제든 홍천군이 단독 전용 사무실을 마련해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현 회원과 임원진의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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