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67]

조선 최고의 가사문학 대가에게도 한가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시제를 정하지 못해 마음을 주섬주섬 추스르다가 궁색스런 우음이라고 붙이고 나서 너무 평범한 시제에 자기도 모르게 아차, 했을 지도 모른다. 시인들은 어쩌면 생각이 세심한 것 같기도 하더니만, 단조로운 면을 보이고 있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득히 어느 곳으로 향해 가는가, 자네가 한강에 이를 수만 있게 되기를 바라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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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吟(우음) / 송강 정철
흐르는 물은 골짜기에서 나오고
아득히 먼 곳으로 어디로 가는지
한강에 내가 이르면 깊은 정 부치리.
流水峽中出    迢迢何所之
류수협중출    초초하소지
爾能達江漢    吾欲寄幽思
이능달강한    오욕기유사

내 깊은 그리움을 그대에게 부칠 수 있으련만(偶吟)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졸졸 흐르는 물은 골짜기에서 흘러 나와서 / 아득히 어느 곳으로 향해 가는가 // 자네가 능히 한강에 이르게만 된다면 / 내 깊은 그리움을 그대에게 접어서 부칠 수 있으련마는]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우연히 읊다]로 번역된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시상을 떠올리는 수가 많지만, 그것은 대체적으로 어떤 시적인 상관자를 두고 그리움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수가 많다. 사람에게 그리움은 정감 표현의 제일로 잡는 수가 많다. 그리움은 곧 정情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보면 우연의 시상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없으렷다.

시인은 선경先景이란 첫 시상에서 물의 근원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고 가고 있는가를 묻는 넉넉함을 보인다. 흐르는 물은 골짜기에서 나와서 아득하게 먼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인가라고 했다. 덧없이 흘러가는 진정한 물의 근원을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화자는 물의 흐름과 연결이 바뀌는 상황을 모조리 알고 싶었음을 은근하게 내비치는 시상을 떠올린다. ‘자네가 능히 한강에 이르게만 된다면, 내 깊은 그리움을 그대에게 접어서 부칠 수 있으련만’이라 했다. 흘러가는 물에 자기의 깊은 뜻을 부쳐보려는 심사가 한강이라는 또 다른 상관 대상자의 흐름으로 덧칠하는 멋을 부려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 어느 곳을 향해 가나, 한강에 이르게 되면 그리움 접어 부치련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 1등을 하고, 이듬해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던 인물이다. 성균관전적 겸 지제교를 거쳐 사헌부지평에 임명됐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등 가사문학의 태두로 널리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流水: 물이 흐르다. 峽中出: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다. 迢迢: 아득하게. 혹은 멀리. 何所之: 어느 곳으로 가는가. [何]로 인하여 의문문이 되었음. // 爾: 자네. 2인칭 대명사임. 能: 능히. 達江漢: 한강에 도달하다. 吾欲: 나는 ~을 하고자 하다. 寄幽思: 그윽한 그리움. 깊은 그리움 혹은 사랑을 뜻함.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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