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63]

남명 조식(1501~1572)은 61세인 노년에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지었는데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는 곳이고 또한, 본인의 학문을 이곳에서 성숙시킨 곳이기도 하다. 이른 봄이면 남명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남명화가 핀단다. 조식의 문하에서 독실하게 수학했던 시인이 어찌 산천재에 대한 감회와 느낌이 없었겠는가. 깨끗한 달빛 추석의 비단처럼 밝기만 하고,  맑은 물결은 매우 고요하여 물결도 일지 않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山天齋(산천재) / 개암 강익
깨끗한 추석 달빛 비단처럼 밝아 오고
맑은 하늘 심오하여 잔물결 살랑 일어
온 밤을 앉아 보내니 참맛이 무엇인가.
素月明秋練    澄流靜不波
소월명추련    징류정불파
春風坐一夜    眞味正如何
춘풍좌일야    진미정여하

참된 맛이 정말로 그 무엇과 같다고나 할까(山天齋)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깨끗한 달빛 추석의 비단처럼 밝기만 하고 / 맑은 물결은 매우 고요하여 물결도 일지 않았네 // 봄바람에 온 밤을 편히 앉아서 보내고 나니 / 참된 맛이 정말로 그 무엇과도 같다고나 할까나]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산천재에서]로 번역된다. 산천재는 남명 조식의 일관된 학문의 체계를 집합하는 곳이라 하겠다. 이곳에 가면 이미 450여 년 전 남명이 심었다고 하는 고목 매화가 있어 눈길을 끈다. 남명학의 요체는 [內明者敬(내명자경: 안으로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경이고), 外斷者義(외단자의: 밖으로 밝고 올바름을 실천하고 단행하는 것이 의다)]라고 했다.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남명 제자인 시인은 이를 실천하려고 했겠다.

시인이 선경의 시상을 역시 고요하기 그지없는 산천에서 찾고자 했던 시통 주머니는 넉넉해 보인다. 깨끗한 달빛은 추석 비단처럼 밝기만 하고, 맑은 물결 고요하기는 물결도 일지 않는다고 했다. 달빛과 물결이란 조화로움이 시적인 분위기를 돋는다. 자연의 진실에 도취하는 모습이다.

화자는 이 좋은 밤 봄바람을 맞고 혼자 보내는 심사를 다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시상을 만지고 있다. 봄바람에 온 밤을 앉아서 보내려 하니, 참된 맛이 정말로 무엇과 같다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하는 참맛이다. 곧 더 이상 한 마디인들 잇지 못하겠다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추석 달빛 비단 같고 맑은 물결 고요하네. 온 밤 편히 보냈더니 참된 맛이 꿀맛 같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다. 호탕하여 얽매임이 없어서 일찍이 사냥꾼과 각저(角觝;두 사람이 맞붙어 기예를 겨루는 동작)를 좇아 유희하였는데 후에 잘못을 깨닫고 정희보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우고, 남명 조식에게 나아가 학문을 성숙시킨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素月: 맑은 달. 明: 밝다. 秋練: 추석의 비단과 같다. 澄流: 맑은 물결. 靜: 고요하다. 不波: 파도가 일지 않는다. // 春風: 봄바람. 坐: 앉다. 혼자 앉아 보내다. 一夜: 하룻밤. 眞味: 참다운 맛. 正: 바로. 곧. 如何: 무엇이라고 할까. 더 이상 다른 무엇에 취해 다른 말을 잇지 못함을 보임.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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