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62】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선배는 후배를 기른다. 소질이 있는지의 여부도 알아보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과제를 제시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알아본다. 이것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후진 양성이나 다름없다. 큰 스님이 동자 스님을 기르는 것도 마찬 가지의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후선자後仙子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말없이 고개를 살짝 돌려서 바라보니, 산 정상에서는 흰 구름만이 살며시 일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後禪子(후선자) / 서산대사 휴정
슬픔과 기쁨은 베개 속의 꿈일 뿐
만남과 헤어짐은 십년의 정일레라.
말없이 고개 돌리니 구름만이 일구나.
悲歡一沈夢 聚散十年情
비환일침몽 취산십년정
無言却回首 山頂白雲生
무언각회수 산정백운생

슬픔과 기쁨은 한 베개 속의 꿈일 뿐이려니(後禪子)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으로 조선 중기 고승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슬픔과 기쁨은 한 베개 속의 꿈일 뿐이려니 / 우리 서로 만남과 헤어짐은 십년의 정일레라. // 말없이 고개를 살짝 돌려서 보니 / 산 정상에서는 흰 구름만이 이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후선자에게 / 뒤를 이를 선자에게]로 번역된다. 뒤를 이을 선자禪子에게 계시와 같은 한 말씀을 남기는 순수한 승려의 한 자세를 가르치는 시문이 아닌가 보이는 작품의 구석구석을 만난다. 아니 어찌 뒤를 이을 승려뿐이겠는가. 계율에 들어가기 전에 삶을 진리를 가르치는 큰 스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우길 자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니.

 시인의 시상은 근엄함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오직 인간다운 자상함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율 강의의 엄숙 속에서 시상의 흐름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넉넉했을 것이다. 슬픔과 기쁨은 한 베개 속 꿈일 뿐이거늘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은 십년의 정일 것이라고 했다. 몇 번을 곱씹어 읽어도 물씬거리는 시상의 흐름 앞에 숙연해짐은 비단 평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려니…

 화자는 슬픔과 기쁨, 만남과 헤어짐 모두가 한 바탕의 꿈이라고 단정한 모습이 초라해 보였을는지 모른다. 말없이 고개를 살짝 돌려서 보니, 산 정상에서는 흰 구름만이 인다고 했다. 속세에서 아옹다옹하거나 몇 푼의 돈 때문에 인간들이 주고받는 마음 모두가 결국은 허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슬픔 기쁨 베개 속 꿈 만남 이별 십년의 정, 고개 살짝 돌려보니 산 정상엔 흰 구름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으로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장이었다. 1540년 수계사 일선, 증계사 석희·육공·각원, 전법사 영관을 모시고 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운수행각을 하며 공부에 전념해 1549년(명종 4) 승과에 급제하였다고 전한다.

【한자와 어구】
悲歡: 슬픔과 기쁨. ‘喜悲’와 같은 뜻임. 一沈夢: 한 바탕의 꿈, 聚散: 모이고 흩어짐. 구름이 모이고 흩어짐도 뜻하고 있겠음. 十年情: 십년의 꿈이다. // 無言: 말없이. 却回首: 문득 머리를 돌려보다. 山頂: 산 정상. 白雲生: 흰 구름이 생기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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