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60]

고산高山도 쉬어가고, 유수流水도 쉬어가라는 뜻을 담더니만, 이젠 명월明月과 청풍淸風에게도 잠시 쉬어가라는 부탁을 한다. [밝은 달 자네는 수 만년을 떠돌면서 지구를 비췄으니 어지간히 피곤하겠네]라고 했을 것이고, [청풍 자네도 참으로 피곤하겠네. 대밭에서 쉬어 가든지 사우정에서 잠시 쉬어 가시게]라는 시상으로 감흥을 얻었으리.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 근심에 잠겨보니 사람이 늙어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感興(감흥)[2] / 교산 허균
젊음은 언제나 근심에 늙어가고
어찌하면 죽지 않는 약을 얻어서 
난새를 타고 노닐며 삼도를 보리오.
少壯能幾時    沈憂使人老
소장능기시      침우사인노
安得不死藥    乘鸞戲三島
안득불사약      승난희삼도

난새(鸞鳥)를 타고서 삼도(三島)를 노닐어 볼거나(感興)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내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 근심에 잠겨보니 사람이 늙어 가누나 // 어찌하면 사람이 죽지 않는 약 얻어 / 난새(鸞鳥)를 잡아타고서 삼도(三島)를 노닐어 볼거나]라는 시상이다. 

 시제는 [흥겨운 느낌이 있음]으로 번역된다. 기상이 펄펄 넘치는 시적인 기상을 만난다. 이런 시를 두고 시인을 평하기를 천재시인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전구에는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두루 들러보니 / 뭇별들이 맑게 갠 하늘에 곱기도 하여라 // 푸른 바다에는 눈 같은 물결이 저리 포효하고 있는데 / 물을 건너려고 하니 바람이 너무 넓게만 부는구나]라고 했다.

시낭詩囊이 넉넉하기만 했던 시인은 전구의 전구에 이어 후구는 마냥 자기도취에 취한 감흥으로 시를 일구었다. 내 이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보면서, 이런 근심에 잠겨보니 사람이 늙어간다는 시상을 일구어 냈다. 나이가 들면 시상도 나오지 않고, 시적인 감흥도 일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 보인 시인의 깊은 심회를 넉넉하게 일굴 수 있다.

화자의 가슴에 넘치는 기상의 넘침이 ‘철철’ 소리가 나는 모양새를 보인다. 그래서 어찌하면 사람이 죽지 않는 그런 묘약을 얻어서, 난새(鸞鳥)를 타고 삼도(三島)를 노닐어 볼까라고 했다. 하늘을 잡고 세상을 포효하고 싶은 생각을 했겠다. 장자의 소요유(逍遙游)를 생각했으렷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젊음 몇 때 지탱할까 근심 잠겨 늙는구나, 죽지 않는 약은 없나 난세타고 노닐거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천재시인이다.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어 글재주와 넓은 학식으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다. 이런 공로로 삼척부사가 되었으나, 석 달이 못되어 불상을 모시고 염불과 참선을 한다는 탄핵을 받아 쫓겨났다.

【한자와 어구】
少壯: 넓을 때. 能幾: 능히 지탱하다. 時: 젊었을 그 때.  沈憂: 근심에 잠기다. 使人老: 사람으로 하여금 늙게 하다. 사람이 나이 들어 늙다. // 安: 어찌. 부정사적 부사적 용법. 得: 얻다. 不死藥: 불사약. 죽지 않는 약. 乘鸞: 난새를 잡아타다. 戲: 놀다. 희롱하다. 三島: 삼도. 여러 곳의 섬을 두루.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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