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름 변호사               '법률사무소 해원' 대표        홍천군청 법률상담 위원
 ▲선아름 변호사               '법률사무소 해원' 대표        홍천군청 법률상담 위원

매수인이 계약금을 지급하고 나서 잔금 기일이 지났는데 잔금을 주지 않습니다. 계약을 해지·해제할 수 있나요? 자주 접하는 상담인데 매매계약의 해지·해제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본 지면을 통해 차근차근 알아보자.

1. 해지와 해제의 차이

계약의 해지는 계약이 진행되는 중에 장래에 관하여 계약의 효력을 발생시키지 않는 의사표시이다. 따라서 해지의 의사표시 이전에 이미 완료한 서로 간의 법률행위는 유효하다. 예를 들어 이동통신계약의 해지가 있다.

계약의 해제는 처음부터 계약이 없었던 거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토지를 매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일방이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쌍방의 합의 하에 계약을 무효화하는 게 해제이다. 따라서 계약의 해제에는 반드시 ‘원상회복’의 문제가 생긴다. 해제의 의사표시 이전에 서로 간에 이행했던 급부를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려야 한다. 예를 들어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계약금을 지급한 이후에 계약이 해제된 경우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매수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가 따위의 원상회복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앞서 한 질문의 경우에는 계약을 ‘해제’한다고 표현하는 게 알맞다.

2. 법정해제의 발생요건

그렇다면 계약의 당사자들은 어떤 조건에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까. 민법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요건을 정해놓았다. 한쪽 당사자가 ‘이행지체’에 빠지거나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불능이 되었을 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오늘은 이행지체에 관해서만 다루겠다. 매매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해 그 이행을 최고(催告, 상대편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통지하는 것)하고 그 기간 내에도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를 이행지체로 인한 계약의 해제라 한다. 그런데 매매계약과 같은 쌍무계약에서는 계약 당사자들이 ‘동시이행항변권’을 갖기 때문에 한쪽 당사자가 제때 이행을 하지 않은 사유만 가지고는 이행지체에 곧장 빠지지는 않는다. 이제부터 어려운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알기 쉽게 설명해보겠다.

3. 쌍무계약에서의 동시이행항변권과 이행지체

쌍무계약이란 매매계약과 같이 양쪽 당사자가 모두 자신의 채무를 이행해야 하는 성질의 계약이다. 토지의 매도인은 자신의 토지의 소유권을 매수인에게 넘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매수인인 매매대금을 매도인에게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매도인의 소유권이전의무와 매수인의 잔금지급의무 중 어떤 의무를 먼저 이행해야 할까. 우리는 이를 동시에 이행한다. 누가 먼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한다면 다른 상대방이 이득을 얻은 후에 자신의 채무는 이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양 당사자는 동시에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

따라서 한쪽 당사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동안에는 다른 쪽 당사자도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항변권이 생기는데 이를 ‘동시이행항변권’이라 한다. 이해가 쉽도록 예를 들어보자. 갑과 을이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잔금일에 갑은 을에게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하고 을은 갑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런데 잔금일에 갑이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을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면 을은 그래도 자신의 채무를 제때 이행하기 위해 갑에게 잔금을 지급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을은 동시이행항변권이 있어서 갑에게 잔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는다. 그럼 반대로 이럴 때 갑은 이행지체에 빠질까. 그렇지 않다. 갑 또한 잔금일에 을이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는다.

4. 쌍무계약에서 이행지체에 빠지게 하려면?

따라서 위와 같은 사례에서 갑이 토지 소유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어 보여 을이 계약을 해제하고 싶다면 을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할 준비를 하여 갑을 이행지체에 빠트려야 한다. 그래야 법정해제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을이 갑에게 덜컥 잔금을 입금하는 건 위험한 일이니 잔금을 법무사나 공인중개사 등에게 맡기고 이를 갑에게 통지하여 자신은 이행할 준비를 마쳤다는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 행위를 법률용어로는 ‘이행의 제공’이라고 한다. 을이 갑의 계좌에 잔금을 입금하는 건 채무의 완전한 이행이 되는 것인데 이행지체에 빠트리기 위해서 자신의 채무 이행까지는 필요하지 아니하며, ‘이행의 제공’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민법 및 판례의 확립된 입장이다.

5. 결론

이제 질의에 대한 답변을 해보자. 매수인이 계약금을 지급하고 나서 잔금 기일이 지났는데 잔금을 주지 않을 때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고 싶다면 매도인은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법무사에게 맡기고 법무사로부터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여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법무사사무실에 보관 중이라는 확인서를 받는다. 이렇게 해두면 매수인은 이행지체에 빠진다.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매도인이 잔금지급기일에 법무사 사무실에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맡겼으니 몇월 몇일까지 잔금을 준비해서 법무사 사무실에서 만나자. 그렇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의사표시를 전해야 한다. 이를 ‘최고’라고 하는데 통상 최고기간은 14일 내외로 둔다. 최고 기간이 지나도록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해제의 의사표시를 전한다. 그러면 계약은 해제된다.

위 사안에서 매도인이 이미 수취한 계약금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에 관하여는 다음 지면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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