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5-39]

시인은 노방도路傍松에서 자화상을 그렸지만 무오사화 때 귀양살이의 소감도 시조에서 읽는다.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 중에 호미 메고 / 산전을 흩 매다가 녹음에 누웠으니 / 목동을 몰아서 잠든 나를 깨운다]고 했다. 시조만 읽어도 선하게 떠오르는 그림 같은 정경이려니와 따사롭고 목가적인 시 정신을 한껏 읽을 수 있다. 매화의 절개만을 그 무엇보다 더 사랑했다네, 서리 바람에도 홀로 피어 시들지도 않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   ​​​​​​​  ​​​​​​​                ​​​​​​​   ​​​​​​​   ​​​​​​​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   ​​​​​​​  

咏梅(영매) / 사옹 김굉필 
매화의 절개를 무엇보다 사랑했고
바람과 서리에 홀로 시들지 않는데
백년을 기약 했더니 희끗희끗 어쩌나.
最愛梅兄節    風霜獨未凋
최애매형절    풍상독미조
百年期作契    其奈髥鬢蕭
백년기작계    기나염빈소

백 년 동안 친구를 삼자고 굳게 기약을 했더니만(咏梅)으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사옹(簑翁) 김굉필(金宏弼:1454∼150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매화의 절개를 무엇보다 더 사랑했었네 / 서릿바람에도 홀로 피어 시들지도 않고 있구나 // 백 년 동안 친구를 삼자고 굳게 기약을 했더니만 /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이를 어찌 할거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매화를 읊다]로 번역된다. 봄의 전령인 매화는 아무리 칭송 받아도 그 소리가 아깝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선현들은 매화의 진미에 푹신하게 취했음을 알게 된다. 그 향이 독특하고 그 절개가 굳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매화와 친구 삼자는 굳은 약속까지 하면서 매화에 흠뻑 취했음을 느끼는 시상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매화의 절개와 짙은 향속에 시상으로 엮기까지 매우 버거웠을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의 면면을 본다. 시인은 매화의 절개를 무엇보다 사랑했었으니 서릿바람에도 홀로 시들지 않는다는 시상이다. 어디 서릿바람뿐이겠는가. 매화가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딛고 서서 그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화자는 매화의 본성이 착하고 검소하여 오랜 친구를 삼자고 굳게 약속했던 속셈이었음이 훤하게 보이는 시상의 이면을 본다. 백 년 동안 친구 삼자고 기약을 했더니만, 내 이미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했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라고 했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의 귀밑머리가 희어져 친구 삼기는 차마 미안하다고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하기는 했던 모양임을 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매화 절개 사랑했고 풍상도 시들지 않고. 백년 친구 굳은 기약 귀밑머리 어찌할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사옹(簑翁) 김굉필(金宏弼:1454∼1504)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494년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에 의해 유일로 천거되어 주부, 감찰,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던 인물이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最愛: 가장 사랑하다. 梅兄: 매화. 매화를 의인화함, 매화를 높여 부르는 말. 節: 절개. 風霜: 바람과 서리. 흔히 독실함을 뜻함. 獨: 홀로. 未凋: 시들지 않다. // 百年期: 백년을 기약하며, 作契: 약속을 맺다. 其奈: 이를 어찌하다. 髥鬢: 귀밑머리가 따르다. 蕭: 맑은대쑥. 곧 ‘희어지다’는 뜻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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