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582]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지난 14일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아주 특별한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홍천솔잎테니스 회원들이 강릉에서 온 귀한 손님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였다. 이 모임은 조규형(81세) 회원이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그의 제자들인 강릉농업고등학교(현 강릉 중앙고교) 49회 졸업생들이 당시 담임선생님이었던 조규형 회원을 찾아뵙기 위한 자리인데 조 선생이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인 홍천으로 귀향해 건강을 위해 취미로 하는 테니스동호회 회원들을 모두 초청한 것이다.

1978년 당시 강릉농고는 8개 과로 380여 명이 졸업했으며 그 중 농업과 졸업생 49명이 똘똘 뭉쳐 지금까지 45년 동안 반창회 모임(회장 박창호 총무 박재진)에서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당시 졸업반 담임이었던 은사 내외분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고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중반인 그들은 조 선생과 그의 부인을 만나러 40여 명(제자들 부인 동석)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홍천을 찾은 것이다. 강릉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을 게다.

필자는 조 선생의 한 해 선배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 60여 년이 흘렀어도 스승님을 제대로 찾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런 자리에 초청받아 후배의 제자들로부터 훈훈한 대접을 받고 보니 그동안의 내 행적이 초라해보였다. 스승님에 대한 나의 마음과 정성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 선생 제자들은 해걸이로 조 선생을 모신다고 한다. 조 선생을 강릉으로 초청해서 인사를 드리면 다음 해에는 제자들이 홍천으로 온다. 그러면 조 선생 내외는 그 제자들을 융숭하게 대접한다.

몇 해 전 홍천에 왔을 때에는 수타사 관광을 하고 중식으로 조 선생 부인이 직접 만든 비빔밥으로 점심을 대접해 제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상호 왕래 방문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 해외여행도 세 번씩이나 다녀왔고 몇 년 전에는 역시 조 선생을 초청해 중국 황산을 다녀왔다고 한다. 스승의 날 제자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졸업 후 45년 동안 매년 이런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요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로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조규형 선생은 홍천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강원대를 나온 농학사이다. 전공인 농업교사로서 40여 년간 교직에 있다가 정년퇴직했다. 당시는 농업이 우리나라 전 산업의 90%인 농업국으로 어느 산업보다 중요한 산업이었다. 1960년대 먹거리인 농업(특히 쌀)을 안정적으로 키운 정부는 사업의 역점을 공업과 상업에 두고 산업 개조에 성공했다. 이에 농업계 고교는 전국에 일부만 남겨두고 일반고로 전환됐다. 당시 강릉농고도 정부 교육개혁 시행에 따라 일반고로 전환돼 현재 정책적으로 순수 농고는 몇 곳 없다. 구 강릉농고는 축구 명문으로 강릉상고와 쌍벽을 이뤘다. 마치 서울의 연고전과 같았다. 물론 주문진고와 춘고도 축구를 잘했지만 이 두 학교의 인기만큼은 못 했다.

매년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말 그대로 어린이날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하고 어버이날은 부모님께 효도를 잘해야 하며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덕에 고마움을 표하는 날이다. 요즘에는 스승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졌다고 한다. 사랑의 매는 폭력의 매로 고소와 고발을 당하기 일쑤다. 스승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게 현실이다. 이는 어찌 보면 교육계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다. 바로 교원노조 탄생이다. 교원노조 창립 초기에는 매우 신선하고 좋았으나 차츰 정치세력화되면서 교육 자체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교사 스스로가 노동자라고 칭하고 부터다. 물론 크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정신노동(교육학문)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급여)를 받으니 노동자라고 하는데 사제 간으로 볼 때면 이건 아니지 싶다. 하긴 옛말에는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도 있었으나 지금은 욕 안 먹으면 다행이라는 자포자기의 풍조 시대다. 하여튼 이번 조규형 선생님과 그 제자들의 모임은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보기 드문 선행행사로 모든 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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