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581]

 ▲강정식 시인전 홍천예총 회장국가기록원심사위원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심사위원

반세기 전 라디오 방송시대의 아나운서는 인기 직업이었다. 최근 국내 모 방송사에서 여자 아나운서를 뽑는데 1000:1의 비율로 경쟁이 무척 심했다고 한다. 수십 년 전 TV가 없고 라디오만 있을 당시에도 아나운서는 인기 직업으로 연예인 못지않았는데 요즘도 여전히 인기 직업으로 꼽히고 있다. 1960년대부터 TV방송국이 개국하기 전까지 눈으로 볼 수 있는 화면은 없고 오직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아나운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영화로 된 대한뉴스뿐이었다.

1960년대 민간방송이 생기면서 아나운서들의 수요는 더 늘어났다. 요즘은 아나운서 양성 전문학원이 생길 정도로 경쟁이 심한 직업군이다. 라디오 시절에는 표준어에 음성(목소리)이 좋으면 미모는 그다음이었지만 지금은 미모도 겸비해야 TV 화면을 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여야 정당의 국회의원 중에도 여자 아나운서 출신이 심심찮게 있어 정당의 간판 얼굴이 되기도 한다.

1950년대 말에는 KBS의 남자 아나운서로 강찬성이 있었다. 그는 미국의소리 방송(voa)에서 주로 뉴스를 진행했고 대한뉴스도 녹음했다. 그 후 일반뉴스도 담당했다. 강익수도 있었다. 스포츠 중계로 유명한 이광재는 올림픽 경기나 아시아경기 등등 운동경기 중계를 많이 했는데 청취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생중계를 잘했다. 임택근도 각종 사회와 스포츠 명중계자였다.

굵직한 프로그램과 뉴스에는 장기범 아나운서도 유명했다. 그는 특히 스무고개란 오락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했다. 또한 구수한 목소리의 전영우 아나운서는 퇴직 후 아나운서 양성 교수를 했다. 박영오 아나운서는 퇴직을 하고 그 아들이 대를 이어 역시 아나운서를 하고 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1961년 5.16 군사정변 때 혁명 공약 방송과 정변을 알리는 대국민 방송으로 유명했다. 박 아나운서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고 호소력이 짙은 게 특이했다.

여자 아나운서로 1960년대부터 맹활약한 KBS의 강영숙은 목소리가 고와 성우 뺨칠 정도였다. 그는 주로 여성 프로그램 사회와 뉴스를 담당했고 특히 어린이 프로인 “누가 누가 잘하나”를 10년 넘게 담당했다. 이에 버금가는 MBC의 김인숙 아나운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미모를 겸비한 이 두 여자 아나운서는 국영방송인 KBS와 민간방송인 MBC의 간판 아나운서들이다. 강영숙은 퇴직 후에도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예원’의 이사장도 했고 「아나운서의 벗」이란 책도 썼다.

퇴직 후 정치 쪽에 몸을 둔 이계진 아나운서는 국회의원을 두 번 하고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 후 고향인 원주 소초면에 낙향해 살고 있다. MBC의 간판앵커였던 엄기영도 퇴직 후 역시 강원도지사 후보로 나왔다가 공천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KBS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김동건이 있다. 그는 KBS 장기 프로그램인 “가요무대” 사회를 수십 년째 보고 있다. 현역 때는 물론 퇴직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가요무대 사회를 보고 있는 인기 아나운서다.

홍천 출신 여자 아나운서도 있는데 얼마 전까지 현역으로 있다가 퇴직하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윤영미 아나운서로 그는 홍천초교 62회 졸업생이다. MBC 아나운서를 거친 SBS 여자 간판 아나운서 출신으로 특히 90년대에 대한민국 스포츠 중계방송 역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프로야구 중계 캐스터로 이름을 알렸다. 동명이인인 KBS 여자 아나운서 윤영미도 있었다.

유명한 방송인인 아나운서들은 이미 세상을 뜬 사람도 상당수 있고 현존해 은퇴 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이 현역 생활을 할 때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임택근 한 분의 얘기만 해보면 그는 한창 현역 시절 서울 종로 거리를 차를 타고 가면서 길가의 간판을 전부 읽었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든 아나운서란 직업은 인기 직업인 것만은 틀림없다. 정다운 목소리 그리운 목소리 현역을 떠난 그들의 활동상을 회상하면 필자는 지금도 스포츠 중계와 뉴스 등등이 귀에 쟁쟁하고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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