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572]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우리나라 조선시대 농촌에서는 화장실을 아주 원시적으로 이용했다. 보통 농가에서는 커다란 돌멩이 두 개를 사람이 쭈그리고 앉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양쪽에 놓고 대소변을 본 후 볏짚을 태운 재나 나무를 태운 재를 뿌려서 변을 치워 농사용 거름으로 썼다. 소변만 볼 때는 항아리나 오지그릇 따위를 변소 옆에 두고 소변을 받아서 역시 거름으로 썼다. 도시에서는 망우통이라고 해서 잿간에 바닥을 파고 묻은 후 역시 그 위에 송판이나 적당한 나무로 거치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대소변을 보고 일정기간 지나 망우통이 다 차면 변을 퍼가는 인부가 대금을 받고 이를 퍼갔다.

우리나라의 변소는 이렇게 시작해서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오늘날의 수세식 변기와 비데 설치까지 이르렀다. 주거환경의 변화에 따라 급속도로 개량됐다. 화장실이 큰 변화기를 맞기는 1961년 군사정변 후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시골에서는 지붕개량과 길 넓히기 변소개량 부엌개량이 시작됐다. 특히 변소개량은 대개 마당 인근에 시멘트벽돌로 외부를 쌓고 환기 굴뚝을 세웠다. 바닥은 역시 시멘트로 가로 30cm 세로 50cm 정도의 구멍을 내고 그곳에 대소변을 보게 했다. 오줌통은 별도로 안 만들고 대신 양동이나 플라스틱 함지를 놓아 소변 전용 용기로 썼다. 본격적으로 수세식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집에서 사용했고 도시도 그랬다.

농촌에서는 지금도 간혹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이 더러 있다. 요즘 도시는 아파트와 빌라 다가구주택 고급 단독주택이 들어서면서 수세식 화장실을 쓰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변소 하면 일본이 세계적으로 제일 깨끗하고 화장실 문화가 발달됐다고 했으나 지금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앞섰다고 한다. 그 예로 웬만한 공중화장실에는 전담 청소자가 있어 매일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뿐만 아니라 운동장 근처나 대표 관광지 화장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들려온다. 화장실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잘 된 화장실 문화인가. 일본은 물론 유럽이나 북남미에도 없는 문화적 시설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일이다.

정부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전국 깨끗한 화장실 경연대회를 열어 시상하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은 과거 몇 년 전만 해도 공중화장실이 없고 들판이나 도로변에 마구 실례를 했다. 그러다 민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그나마 화장실 문화가 바뀌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쫓아오려면 아직 먼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노인정이나 학교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 화장실 개량에 있어 아직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면의 노인회관 내 화장실이 노후화돼 많은 예산을 들여 개보수를 하는데 전에 있던 소변기(남자 전용)를 없애고 좌변기만 설치해 많은 이용자들이 불편하다고 항의하자 관계기관(도·군 담당자)에서는 장애인 편의시설 운운하면서 원상태로의 개선보수를 못 해준다고 하더란다. 이용자들은 극소수(하루 몇 명 사용)를 위해서 다수인 수십 명의 사용이 불편하다면 개선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 전의 모습대로 수선해 모두가 편리하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먹으면 배설을 하게 되어 있다. 먹는 것만큼 배설도 중요하다. 이에 화장실 문화는 향후 발달 될수록 인간에게는 좋은 것이다. 먹는 문화가 발달하는 것만큼 배설 문화도 같이 발달해 주위 환경과 깨끗한 화장실 문화를 이어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