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562]

▲강정식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강정식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올 하반기 우리나라 수출액 중에서 베트남이 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한다. 물론 흑자 부분에서다. 그동안 중국이나 기타 동남아 등에서 수출 흑자를 보고 일본을 위시한 몇몇 나라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따라서 베트남이 우리 무역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베트남은 불과 4~50년 전만 해도 적과 적의 관계에 있던 나라다. 물론 6.25 한국전쟁 당시 지금 베트남의 전신인 월남이 민주정권일 때 우리에게 군수물자(군화 등)를 대준 나라이기도 하다. 

월남이 북쪽 월맹(공산국가)에 패망하기 전까지는 그 나라도 남과 북이 갈라져 있었다.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로부터 독립된 나라로 남쪽은 미국이 주둔한 자유민주국가고 북쪽은 공산주의가 다스리는 사회주의국가로 남북 간 국정운영의 체계가 달라 항상 전운이 끝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북쪽은 공산국가 남쪽은 자유민주국가로 서로 대립하면서 전쟁이 났다. 남쪽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월남군을 도왔고 북쪽은 정규군과 베트공 즉 게릴라 군이 맞섰다. 

1970년 초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된 한국군은 초기에는 간호부대 의무부대 공병대 순으로 파병이 되다가 전투부대로 맹호부대가 참여했다. 월남참전 맹호부대는 홍천에서 창설됐고 훈련은 화천군 오음치에서 유격 등의 파병훈련을 받은 후 출발했다. 그 후 십자성부대 등등의 전투부대가 직접 참여해서 미국과 합동으로 베트공과 월맹군을 상대로 전쟁을 했던 나라다. 불과 반세기 전 얘기다.

그런데 며칠 전 베트남 주석이 윤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국빈자격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두 나라 수장이 만나 회담을 했다. 이날 모 언론사 기자가 베트남 주석에게 질문을 했다. 50여 년 전 전쟁을 했던 나라인 한국에 온 소감을 묻자 그는 “반세기 전은 과거일 뿐 우리에겐 미래가 더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하긴 그렇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적이 되어 총부리를 겨눴지만 지금은 비록 체제는 다르지만 같은 국가로서 대등하게 발전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세계의 냉전시대가 끝나고 일부 국가의 신냉전이 계속되는 시점에서 국가적 통치체제는 다르지만 경제는 하나로 계속 번영해야 할 것이다. 

1945년 일본은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그 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과 일본은 찰떡 동맹으로서 굳건히 나아가지 않는가. 과거만 본다면 일본의 하와이 침범 등 제2차세계대전의 그 막대한 전쟁의 피해를 초기에 받았던 미국과 2차대전 막바지 원자탄 두 개로 무조건 항복한 일본이 서로 친해질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서로의 이해득실을 따져 동맹이 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하는 때다. 

베트남은 오랜 전쟁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었다. 영토와 인구는 우리(남한)의 약 배다. 농업국가로서 이모작이 가능하고 아열대기후로 겨울이 없다. 또한 우리와 같은 한자문화권의 조상을 갖고 있다. 중국과의 경계도 우리와 비슷하다. 요즘 베트남은 한국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재벌들이 공장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이나 LG SK 대우 등의 기업들이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나라 공장에 취업하는 것이 꿈이라고들 한다. 임금도 자국의 기업보다 배나 많고 각종 후생시설도 좋다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어가 그들의 제2외국어가 되고 국제간의 친목도 더욱 돈독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들 와서 산다. 결혼도 하고 농촌이나 공장 할 것 없이 인력들이 들어오고 있다. 동남아 국가 중 우리나라와 동질성이 가장 많은 나라다. 앞으로 보다 잘 협력해 두 나라 모두 번영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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