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550]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필자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러나 술에 대한 관심은 많다. 홍천은 1950~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소주와 탁주(막걸리) 제조로 유명했다. 그 당시에는 각 면마다 탁주공장이 있었고 일부는 소주도 만들었다. 홍천읍내에는 홍천양조장이 지금의 KT와 홍천우체국 터에 있어 막걸리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홍천양조장이라 해서 읍내에 공급했고 직접 만든 소주는 ‘화양’이란 상표를 붙여 홍천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공급했다.

북방면에는 ‘록향’이란 상표의 소주가 역시 전국을 상대로 판매했다. 록향은 상표이름도 좋고 소주의 질도 좋아서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술이었다. ‘화양’ 역시 ‘록향’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사세를 확장해오다가 정부의 양조장 통폐합으로 소규모 공장은 전부 문을 닫고 폐업했으며 도 단위에 한 개씩만을 남겼다.

5-60년대는 정부에서 홍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탁주제조를 못하게 금지하고 허가를 받은 양조장에서만 만들게 했다. 영농기나 명절 때쯤이면 세무서에 속한 밀주단속반이 마을을 집집마다 뒤져 술 제조하는 것을 금지하고 걸리면 많은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당시의 소주는 곡주로서 화학성분의 알코올을 사용하지 않고 증류주로 제조했다.

이때 강원도는 강릉에 ‘경월’소주만 그 명맥을 이었다. 홍천에는 ‘화양’과 ‘록향’ 외에도 내촌면 도관리에서 제조했던 ‘백우’ 소주도 대단했다. 내촌양조장은 70년대 큰 장마로 공장이 침수되면서 자연스럽게 폐업을 했다. 물론 막걸리는 계속 제조했다.

이렇게 소주는 홍천읍과 북방면 내촌면에서만 제조됐고 막걸리는 영귀미면과 남면 서석면 서면 내면에서도 만들었으나 막걸리 제조공장(양조장)도 소주의 대량공급으로 사양길을 걸었다.

홍천양조장은 신장대리에서 갈마곡리 사미정 옛 잠종장터로 이전해 운영하다가 폐업했다. 제일 늦게까지 운영되던 화촌양조장도 2000년대 초에 문을 닫고 시설물과 공장부지가 모두 정리됐다. 옛 양조장은 이렇게 모두 문을 닫고 2000년대 들어와 서면 모곡과 몇몇 지역에서 탁주를 제조했다. 홍천읍 삼마치리에는 탁주공장이 가동을 하다가 공장 자체를 하이트진로사에 매각했다.

홍천은 탁주와는 과거부터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3대 명주로 뽑힌 경주법주와 황해도 해주의 황주 홍천의 백주가 유명해서 임금에게까지 올렸다는 얘기가 있다. 특히 홍천백주는 홍천산 곡물로 제조해서 궁중의 진상품으로 선정됐었다니 당시에는 꽤나 유명했던가 보다.

최근에는 서석면에서 옥수수를 원료로 해서 옥선주를 만들고 있으나 경영상의 어려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서면에서도 막걸리가 나오고 있으나 타 지역(지평 원주 등 기타) 제품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 예로 필자가 속해 있는 모임에서도 주당들이 찾는 막걸리는 우리고장의 잣막걸리 보다 타 지역의 제품을 선호하고 있어 안타깝다.

홍천의 옛 명성을 살려 홍천을 대표하는 막걸리를 제조했으면 한다. 이를테면 6년근 인삼막걸리 옥수수막걸리 수라쌀막걸리 또는 옛 이름과 역사성을 살려서 화양과 록향 백우 공작산 가리산 등의 이름을 딴 홍천 대표 양조를 했으면 한다.

지난여름에는 별빛맥주축제를 했는데 맥주는 대형 맥주회사인 하이트가 지원을 많이 하고 소규모로 개인이 만든 수제맥주가 선보였다. 어쨌든 간에 홍천은 산수가 수려하고 특히 물이 좋은 곳이다. 남아도는 쌀로 막걸리를 잘 만들어 옛 명성도 되살리고 애주가들이 즐겨 찾고 군민은 소득을 올리는 일거양득의 양조사업이 활성화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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