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545]

▲강정식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강정식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 심사위원

자칫 본인이 본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 중 제 자랑을 하면 팔불출에 들어간다고 욕을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홍보시대다. 자기의 얘기를 떳떳하게 해야 한다. 서양 속담에 “귀신도 말을 해야 안다”고 했다. 나의 과거는 가난하고 나약하고 보잘 것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현존하고 있는 지인들도 상당수가 그러했다.

한국은 5~6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의 필리핀 북한 태국 등등이 우리보다 몇 배 잘살아 우리에게 원조도 해줬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완전 그 반대의 세상으로 세계 10대 무역국이다. 그때와 오늘날을 단순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아픈 과거와 가난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시대가 그렇고 나라가 그랬으니 개개인도 대개는 그러했다. 물론 일부는 조상덕 부모덕에 호의호식했지만 그들의 자손까지 그러하지 않은 자들도 많다. 과거에 부유했다가 현재에 힘들게 사는 것과 그 반대로 과거에는 힘들게 살았지만 현재에 부유하게 산다면 독자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지 자문자답 해보자. 하기야 한세상 잘살든 못살든 세월이 가면 결국 한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게 인생이다. 아등바등 살지 말고 구름 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살면 되지 하면서도 막상 세상살이가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이 또한 인생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세계의 저명인사들과 정치가 사업가들은 상당수가 자서전을 쓴다. 물론 대필해 쓰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들은 꾸며낸 얘기나 그럴싸한 얘기 좋은 얘기들만 쓰지 사실 자신들의 초라하고 진솔한 숨은 얘기들은 감춘다. 이는 어찌 보면 민낯이 아니라 화장한 얼굴로 그래야만 자신의 홍보가치가 좋게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내는 오랜 투병 끝에 2014년 2월에 저세상으로 갔다. 그해 4월 16일에는 집사람을 떠나보낸 지 2개월여 후 지인들이 해외여행이나 다녀오자고 해서 뱃길로 중국 청도여행을 떠났었다. 중국 여행을 비행기로는 여러 번 했지만 배로는 처음이었다.

그때 잊지 못할 큰 사건이 일어났다. 즉 세월호 사건이다. 안성 단원고 학생들이 뱃길로 제주도 여행을 떠날 때로 우리와는 불과 100여m 거리에서 서로 마주보며 손을 흔들 정도였다. 필자가 탄 배가 약 1시간 먼저 떠나고 그 다음 학생들이 탄 배가 떴는데 그 이튿날 중국에 도착할 무렵 배에 있는 TV를 통해 사고소식을 접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계층은 다르지만 소위 성공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결국 종말은 다 똑같다. 모든 것이 끝날 무렵 크게 성공한 사람은 크게 실망할 것이고 반대로 작은 소망을 이룬 사람들은 작은 실망을 겪을 것이다. 아마 요즘 가장 괴로움 속에 사는 사람들은 지난 6월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들일 게다. 그러나 과히 실망들 하지 마시라. 당선된 사람도 또한 4년 후에는 실망스러운 일이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화원장 선거에 두 번을 지고 세 번을 양보해 결국 다섯 번이나 문화원장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첫 번째는 허기영 지인에게 두 번째는 김종은 대선배님에게 세 번째는 현 원장인 박주선 후배에게 양보했다. 홍천문화원 창립회원으로 회원자격 47년에 이사 10년 부원장 10년으로 원장만 못했다. 지금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근사하게 원장을 할 수 있다는 포부만은 잃지 않고 있다.

필자는 평생 못하는 게 참 많다. 그 중 대표적으로 술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젊었을 때 그 흔한 연애도 못했다. 물론 담배도 아예 배우지를 않아서 못한다.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별로 없다. 여린 성격에 감동도 잘 받고 속아 넘어가기도 잘하는 편이다. 이렇게 해서 필자의 자화상을 써봤다. 연 3회에 거쳐 필자의 숨은 얘기를 솔직하게 쓰고 나니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 쑥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털어놓을 것을 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개운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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