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14]

시제의 의미는 ‘사냥 나간다’는 뜻이다. 사냥을 나가 즐거웠던 일로 시상을 일으키기 보다는 무언가를 등에 짊어지고 돌아오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시의 흐름은 귀가歸家 쪽에 무게를 싣는다. 굵직한 산짐승을 사냥했다면 이를테면 ‘월척越尺’을 했으니 이웃의 자랑거리다. 어깨라도 으쓱하려는 심회를 담고 있을 것이다. 활을 벽에 걸고 바로 술을 찾으려고 했더니만, 서둘러 말안장부터 풀어서 벽에다 걸어두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出獵(출엽) / 가주 이상질
들판에 나섰더니 구름은 자욱하고
집안에 돌아오니 안개가 누른다네
말안장 먼저 걸고서 술상부터 찾았네
出野雲平水    還家月壓煙
출야운평수    환가월압연
掛弓仍索酒    催解馬鞍懸
괘궁잉색주    최해마안현

집에 돌아오니 달빛 안개가 마구 누르는구나(出獵)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가주(家州) 이상질(李尙質:1597∼163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들판에 나서니 물 위에 구름은 자욱하고 / 집에 돌아오니 달빛 안개가 마구 억누르는구나 // 활을 벽에 걸고 바로 술을 찾으려고 했더니만 / 서둘러 말안장부터 풀어서 벽에다 걸어두네 그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사냥 나갔다 돌아오며]로 번역된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냥이야말로 인생을 새로 배우고 사냥 속에서 잡고 잡히는 ‘먹이사슬’ 관계를 안다고 한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나 먹이그물까지 익히 공부할 수 있다면 퍽이나 구미가 당기는 운동(?)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동물보호의 차원에서 단속 대상이 된다.
시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며 운동삼아 사냥을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시상으로 엮었다. 사냥을 위해 들판에 나서니 물 위에 안개 자욱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달빛 안개가 누르고 있다는 시상을 만지작거렸다. 대구對句 자리에 놓지는 않았지만 시상으로 보아 구름과 달빛은 대칭적 관계에 있다.

화자는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출출한 목을 축이기 위해 활이며 말안장을 풀어야 한다. 사냥을 마친 후 활을 걸고 바로 술을 찾으려는 순서대로 말안장을 풀어 벽면에 걸어두었다는 단순한 시상이다. 시詩의 전반적인 흐름은 전구에선 보고 느꼈던 일에 대한 선정先情으로 얽혔고, 후구는 했던 일에 대한 곧 사냥 다녀온 후의 순서를 얽혀 두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물 위 구름 자욱하고 달빛 안개 억누르네, 술 찾으려 했더니만 안장부터 벽에 걸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가주(家州) 이상질(李尙質:1597∼1635)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사간원의 정언과 헌납, 병조좌랑, 춘추관기사관을 역임하고 홍문관에 추천되어 부수찬 겸 지제교로 제배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어서 호당에서 사가 독서하였다. 곧 예조좌랑을 제배하고 1632년에 홍문관부교리가 되기도 했다.

【한자와 어구】
出野: 들판에 나서다. 雲平水: 물 위에 구름이 자욱하다. 還家: 집에 돌아오다. 月壓煙: 달이 연기를 압도하다. // 掛弓: 활을 벽에 걸다. 仍索酒: 이내(곧바로) 술을 찾다. 催解: 서둘러 재촉하다. 馬鞍懸: 말  안장을 풀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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