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107]

송강의 한시는 당대를 쩡쩡 울렸지만 그가 남긴 가사는 불후의 곡으로 알려진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그랬고 기봉 기행기사의 맥을 잇는 관동별곡이 그랬다. 임(임금)을 향한 처절한 그리움과 단심의 애가哀歌까지도 일구어 놓았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가사문학의 대가라 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빈산에는 낙엽이 지고 비는 부슬부슬하게 내리더니, 재상의 그 때 그 풍류가 이처럼 적막하기만 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過松江墓(과송강묘) / 석주 권필
빈산에 낙엽지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제상들의 풍류들이 이처럼 적막하고나
일 배에 옛날 가곡이 오늘 두고 지었으리.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廖
공산목락우소소     상국풍류차적료
惆悵一盃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추창일배난갱진      석년가곡즉금조

옛날의 가곡이 바로 오늘을 두고 지었음인지(過松江墓)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빈산에는 낙엽이 지고 비는 부슬부슬하게 내리더니 / 재상의 그 때 그 풍류가 이처럼 적막하기만 하구나 // 다시 한 잔 술을 올리기 어려움을 슬퍼하노니 / 옛날의 가곡이 바로 오늘을 두고 지었음인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송강묘를 지나며]로 번역된다.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 대가로 알려진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이 그것이다. 한 여인이 사랑하는 임을 그리는 애절한 사연과 자기의 처지를 빗대어 그려놓았기 때문에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 많은 추앙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송강집에 전하는 시문의 면면을 보면 시상의 흐름이 고차원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심정으로 평소 그를 존경하고 있던 차 마침 송강묘를 지났던 모양이다. 빈산에는 낙엽이 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니, 재상의 풍류가 이처럼 적막하다는 시상 주머니를 여지없이 털어내고 만다. 재상宰相은 송강을 말한다. 의정부 좌의정에 이르렀고 인성부원군에 봉군되었으니 그럴 법도 했으렷다.

화자는 전구에서 송강의 풍류를 생각한다는 심회에 이어 또 하나의 정을 쏟아내고 만다. 살아계실 때 앞에서 술 한 잔 모시지 못했던 어려움을 이렇게 슬퍼하노니, 옛날의 가곡이 바로 오늘을 두고 지었음이란 정을 쏟아내고 만다. 송강이 지었던 가사나 시문이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시인이 송강묘를 찾고 있는 지금도 잔잔하다는 심회를 쏟아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빈산 낙엽 부슬부슬 재상 풍류 적막하고, 한 잔 술을 올리오니 옛날 가곡 오늘 두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과거에 뜻이 없어 가난하게 살았다. 동료 문인들의 추천으로 제술관이 되고 또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술과 시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일생을 살았다. [궁류시]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空山: 빈산. 木落: 낙엽이 지다. 雨蕭蕭: 비가 내려 소소하다. 相國: 재상. 삼정승. 風流: 풍류. 此寂廖: 이처럼 고요하다. // 惆悵: 슬퍼하다. 一盃: 한 잔. 難更進: 올리기가 어렵다. 昔年: 옛날. 歌曲: 가곡. 노래. 卽今朝: 곧 오늘을 두고 지었다. 오늘을 예상했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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