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95]

‘상춘傷春, 춘심春心, 춘수春愁’는 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리라. 역시 봄이면 속상하게 했던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봄을 맞이하는 우리들 마음으로 풀어야 할 숙제였다. 나이 연만해도 시집을 가지 못한 처녀의 춘수는 따사로운 햇볕과 함께 더욱 깊어갔으리라. 임을 멀리 보내고 소식이 없는 여인의 춘수 또한 깊어만 갔다. 시냇가의 실버들에는 유록색 가지가 늘어졌고, 봄 시름에 못 이겨 휘휘 늘어져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春愁(춘수) / 금원 김씨
시냇가의 실버들은 유록색 가지에다
봄날의 시름에서 못 이겨 늘어지는데
꾀꼬리 슬픔에 겨워 그치지 못한다네.
池邊楊柳綠垂垂   蠟曙春愁若自知
지변양류록수수   납서춘수약자지
上有黃隱啼未己   不堪趣紂送人時
상유황은제미기   부감취주송인시

임 이별의 그 슬픔만을 차마 이기지 못함인가(春愁)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원주 사람 금원(錦園: 1817∼ ?)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냇가의 실버들에는 유록색 가지가 늘어졌고 / 봄 시름에 못 이겨 휘휘 늘어져 있구나 // 꾀꼬리가 꾀꼴꾀꼴 울음 그치지 못하는 진정한 뜻은 / 임 이별의 그 슬픔만을 차마 이기지 못함인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봄의 시름에 겨워서]로 번역된다. 시인은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의 동인이다.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면서 1830년(순조 30)3월 14세 때 남자로 변장하고 단신 금강산을 유람하여 견문을 넓혀 시문을 짓고, 이런 인연으로 돌아와서 시랑이며 규당의 학사였던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이 같은 작가적인 사정을 알고 나면 시적인 흐름을 대체적이나마 알 수도 있으리라.

시인은 실버들과 봄 시름을 부여잡는 시상에 매달리는 한 모습을 적지 않게 보인다. 시냇가의 실버들에는 유록색 가지가 늘어져 있고, 봄 시름에 마냥 못 이겨 휘휘 늘어져 있다는 한 줌 시상이다. 선경의 그림치고는 고상하게 엮어 여인이었기에 가슴에 안았던 봄 시름 한 발에 빼곡하게 엮었을 것이다.

화자는 꾀꼬리 울음과 이별의 슬픔을 하나로 묶어 두려는 심사를 보인다. 꾀꼬리가 꾀꼴꾀꼴 울음 그치지 못하는 진정한 그 뜻은 아마도 이별의 슬픔만은 차마 이기지 못함은 아닐까.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듯 여인이었기에 시름은 더했으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유록색 가지 늘어져 봄 시름 휘휘 늘어져, 꾀꼬리 울음 그 뜻은 임의 이별 잊지 못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금원 김씨(錦園 金氏: 1817∼?)로 강원도 원주 사람으로 조선 후기 여류시인이다. 1845년(헌종11) 남편을 따라 관서지방을 두루 유람하였고, 1847년 다시 서울에 돌아와 남편의 별장인 서울 용산 삼호정에서 운초, 경산, 죽서, 경춘 등의 여류시인들과 시를 읊으며 여생을 보냈다 한다.

【한자와 어구】
池邊: 연못가. 楊柳: 버들. 綠垂垂: 녹색 가지가 늘어졌다. 蠟曙: 휘휘 늘어진 모양. 春愁: 봄 시름. 若自知: 스스로를 알지 못하다. // 上有: 위에서 있다. 黃隱: 황려조(黃麗鳥)로 꾀꼬리. 啼未己: 울음을 그치지 못하다. 不堪: 감당하지 못하다. 趣紂: 슬픔의 뜻. 送人時: 임과 이별할 때에.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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