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수
홍천전통발효연구회 전문위원
홍천허브·다물연구소 대표

오후만 되면 얼굴에 열감이 오르는 증상이 있다. 얼굴 전체를 붉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색시처럼 광대뼈 부근에 홍조가 주로 나타난다. 이런 열을 조열(潮熱)이라고 한다. 밀물과 썰물을 의미하는 조수(潮水)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후 조열의 또 다른 별칭은 ‘허열(虛熱)’이다. 허열은 음과 양의 편차로 인해 발생한 상대적인 열이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신체는 음과 양 즉 물과 불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이 균형이 깨지면 질병이 생긴다. 양이 부족하면 음이 남아돌고 음이 부족하면 양이 남아돈다. 양 부족을 양허(陽虛), 음 부족을 음허(陰虛)라 한다. 허열은 음이 부족해서 생긴다. 음이 부족하면 상대적으로 양이 부각되며 이것이 허열(조열)로 나타난다. 이를 음허(陰虛)에 의한 허열이라고 한다. 참고로 음허 증상에는 조열 이외에도 잠잘 때 땀이 나고 손·발바닥에서 열이 나는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노인들의 병증에 음허화왕이란 말이 있다 음허가 심해지면 일시적으로 화가 왕성해지고 양기가 넘쳐나는 듯한데 이런 상황을 회춘이라고 착각을 해서 정기를 남용하게 되면 풍을 맞게 되거나 급사를 하는 경우가 있으니 나이 들어 갑작스레 찾아온 회춘이라면 음허화왕을 한번쯤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음허열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불이 나면 물로 불을 끄는 게 원칙이지만 허열을 그렇게 다스려선 곤란하다. 이러한 화는 몸의 근본에 해당하므로 보호해야지 손상시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열을 다스리려면 양은 온전하게 두고 부족한 음을 보충해야 한다. 음허열이 음의 부족으로 생긴 현상이니 음을 보강하는 것은 당연한 치법이다. 몸에서 중요한 것은 음양의 균형이다.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은 3세기 초 후한시대에 장중경의 금궤요락에 금궤신기환으로 그 방제구성이 기록된 이후 오랜 역사를 통해 음허치법의 대표적인 방제로 널리 알려져 왔다. 육미지황환은 6가지 약재로 구성되어 있다. 숙지황, 산약, 산수유, 목단피, 복령, 택사가 그 여섯 가지 약이다.

이 여섯 가지 약재를 다시 구분하면 삼보(三補)와 삼사(三瀉)로 나뉜다. 삼보는 우리 몸을 보해주는 약재로써 병의 원인인 진액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며 숙지황, 산약, 산수유가 해당한다. 삼사는 진액을 만들기 전에 사전 정비작업으로 치료적인 성격이 강하며 복령, 택사, 목단피가 이에 해당한다.

▶ 삼보 (三補)
숙지황(熟地黃) : 신음을 돕는 대표 약재(혈, 정, 수를 보함)
산약(山藥) : 비음, 폐음, 신음을 돕고 비위를 돕는다
산수유(山茱萸) : 정을 보존하며 양을 돕는다

 삼사 (三瀉)
택사(澤瀉) : 신장의 화(허열)를 없애고 이수작용
복령(茯苓) :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습을 제거함
목단피(牧丹皮) : 허열을 없애고 혈을 서늘하게 한다

십전대보탕이 기와 혈을 보충하여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처방이라면 육미지황환은 갱년기, 노년기에 진액이 마르고 음이 부족해서 생기는 질환을 치료하는데 가장 필요한 처방 중의 하나이다.

숙지황은 지황을 9번 찌고 말리기를 반복해서 만들어진다. 이른바 구증구포(九蒸九曝)라고 하는 이런 제조과정을 거치면 노란색 지황이 검고 찐득하게 변한다. 검은 색은 오행 중 수(水)에 해당하는 색이고 찐득한 형태 또한 진액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수(水)의 기운을 담고 있는 까닭에 숙지황은 “신수(腎水)를 자양(滋養)하고 진음(眞陰)을 보(補)”할 수 있다. 숙지황은 음(수)을 확보하여 음허를 치료하는 중요한 약재이며, 육미지황환의 군약으로 쓰인다.

산약은 ‘마’를 이른다. 마는 끈끈한 진액덩어리로 비와 폐의 진액을 보충해 준다. 산수유 역시 “음을 강하게 한다.” 요컨대 숙지황뿐만 아니라 산약과 산수유도 진액을 생성하여 음을 확보하는데 일조한다. 이 세 가지 주요 약재들에 힘입어 육미지황환은 양을 훼손시키지 않고도 음을 보강해서 허열을 잠재울 수 있다. 나머지 약들은 이 세 약의 자음(滋陰)을 돕는다. 기존의 묵은 수분을 밖으로 빼주고(복령, 택사) 어혈을 풀고(목단피) 혈액순환을 시켜서 신선한 음을 확보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

육미지황환은 음(水)을 보강하여 양(火)을 잡는 치법의 방제이다. 황제내경에 건강한 사람을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라 칭했듯이 건강의 기준을 음양의 균형에서 찾았던 동양적 가치에도 가장 잘 어울리는 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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