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90]

기봉은 1553년에는 호당湖堂에 뽑혔고, 1555년 봄에 평안도 평사評事에 임명되어 서도관방에 부임했다. 그 곳의 삶과 정취, 자연 풍광을 시문으로 음영하던 중 가사 [관서별곡]을 지으니 당시에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한다(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白光弘曾任平安評事而卒其所製關西別曲至今傳唱"이라 했다) 난초를 캐고 싶은 마음 은근하게 생겨서 가서 받들어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자 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贈白大裕3(증백대유3) / 하사 김인후
난초 캐고 싶은 마음 은근하게 생기고
좋은 시기 부모님께 드리고자 하지마는
여뀌가 무성하여서 손 쓸 방법 없구나.
採蘭幽念起   好去奉親盤
채란유념기    호거봉친반
蓼蓼嗟無及   經營萬事難
요요차무급    경영만사난

늘 꾀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이처럼 어렵네(贈白大裕3)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고시 셋째 구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난초를 캐고 싶은 마음이 은근하게 생겨 / 가서 받들어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자 하지만 // 여뀌가 무성하니 손을 쓸 방도가 없구나 / (사소한 일도) 늘 꾀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이처럼 어렵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대유 기봉 백광홍에게 주다3]로 번역된다. 기봉이 1555년 봄 평안도평사가 되어 관서지방의 절경 등을 읊은 기행가사「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었고 가사문학의 효시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시인은 첫 구에서는 [봄 산에 온갖 꽃이 다 떨어지고 없는데 / 꽃 한 떨기가 남아 있어 천만 다행이구나 // 쓸쓸하게 떠있는 밝은 달 아래에 앉아 있으니 / 시름만이 가득하기만 한데 술잔은 텅 비어 있다네]라고 하면서 시적인 영감을 가만히 떠올리고 있다.

시인은 이제 엉뚱한 방향으로 시적 상관관계를 유도한다. 난초를 캐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생겨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자 생각한다는 효심의 시심을 일구어낸다. 학문적 두터움은 말할 것도 없고, 시상이 철철 넘치며 효심이 지극했던 대유를 일구어낸 시심이리라.

화자는 그렇지만 여뀌가 무성하여 방도를 모르겠으니 매사가 어렵다고 했다. 여뀌가 무성하니 손 쓸 방도가 없다면서 (사소한 일도) 늘 꾀하는 일이 이처럼 어렵다는 시상이다. 여뀌는 시기와 질투가 난무한 세상에 난초를 캐서 임금님에겐들, 부모님에겐들 드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자문자답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난초 캐고 싶은 마음 부모님께 드리고자, 여뀌 무성 방법 없네 모든 일이 어렵구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논란되었던 태극음양설에 대해 이항의 태극음양일물설을 반대한 기대승에 동조하면서 인심과 도심은 다 그 동처를 두고 이른 말임을 주장했다. 이로서 하서는 기대승의 주정설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採蘭: 난초를 캐다. 幽念起: 은근하게 일어나다. 은근히 생기다. 好: 좋아하다. 기쁜 마음으로. 去奉: 가서 받들다. 親盤: 친히 소반에 얹어 받들어 드리다. // 蓼蓼: 여뀌가 무성한 모양. 嗟: 아아!(감탄사) 無及: 미칠 바가 없다. 經營: 꾀하다. 萬事難: 만사가 어렵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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