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89]

기봉은 28세 때인 1549년에 진사 생원을 뽑던 사마양시司馬兩試에 급제하였고, 3년 후인 1552년 11월에 문과에 올라 홍문관 정자正字에 임명되었다. 그 해에 왕명으로 성균관에서 영호남의 문신들이 모여 재주를 겨루게 되었는데, 이 때 기봉은 부賦 '동지冬至'를 지어 장원으로 뽑혀 임금으로부터 ‘선시(選詩 10권을’ 받았다. 따스한 봄볕은 초가집에 비추고 있고, 술에 취한 얼굴이 다투어 붉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贈白大裕2(증백대유2) / 하서 김인후
봄볕이 초가집에 비추고 있는데
술 취한 취객은 다투어 붉어지니
너와 나 백발이 성성 두려울 뿐이로다.
春光留草屋   醉面欲爭紅
춘광유초옥    취면욕쟁홍
見子忘沈疾   其如雪鬢蓬
견자망심질    기여설빈봉

다만 우리 백발이 무성해짐이 두려울 뿐이라네(贈白大裕2)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고시 둘째 구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따스한 봄볕은 초가집에 비추고 있고 / 술에 취한 얼굴이 다투어 붉어지고 있구나 // 나와 그대 모두 깊은 시름을 잊는 듯 하옵지만 / 다만 우리 백발이 무성해짐이 두려울 뿐이라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대유 기봉 백광홍에게 주다2]로 번역된다. 백대유白大裕는 최초의 기행가사 관서별곡關西別曲의 작가 기봉 백광홍이다. 하서는 기봉보다 12살이나 많았지만 교의가 두터운 사이였음을 알게 한다.

시인은 따스한 봄볕을 대하면서 술에 취한 상대와 자기에 대한 시심 한 줌을 묻어낸다. 따스한 봄볕은 초가집에 비추는데 술에 취한 두 사람 얼굴이 다투어 붉어진다는 시상이다. 처음 만나서는 어색한 기운을 느끼게 되었지만,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흥취의 멋은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화자는 모든 시름을 잊고 백발이 무성해 짐을 두려워하다는 청유형으로 목을 축인다. 나와 그대 모두 깊은 시름을 잊고, 다만 이제는 백발이 무성해짐이 두려워했으면 좋겠다는 자기 의지를 밝힌다. 물론 상호의 다짐은 아니며 시인이 화자의 입을 빌어 권유하는 시상일 뿐이다. 이어진 후구에서는 [난초를 캐고 싶은 마음이 은근하게 생겨 / 가서 받들어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자 하지만 // 여뀌가 무성하니 손을 쓸 방도가 없구나 / (사소한 일도) 늘 꾀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이처럼 어렵네]라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따스한 햇볕 초가집에 술에 취해 얼굴 붉고. 깊은 시름 잊는 듯이 백발 무성 두려울 뿐’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554년까지 성균관전적, 공조정랑, 홍문관교리, 성균관직강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하서는 일찍이 퇴계와 함께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은 당대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평가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春光: 봄 볕. 留草屋: 초가집에 머물다. 醉面: 술이 취한 얼굴. 欲爭紅: 붉음을 다투다. 곧 얼굴이 붉다. // 見子: 그대를 보다. 忘沈疾: 깊은 시름을 잊다. 오랜만에 보아 그대의 시름을 많이 잊었다. 其如雪鬢蓬: 살쩍(귀밑 털)이 눈과 같이 쑥처럼 희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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