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4-88]

시적 대상자인 대유는 평안도 평사를 지냈던 기봉岐峯 백광흥白光弘을 가르친다. 시인 하서와는 12살의 차이가 나지만 [대유大裕]라고 했다. 기봉은 영천靈川 신잠申潛, 석천石川 임억령 林億齡,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율곡栗谷 이이李珥,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등 당대의 학자 굵직한 문인과 도의지계를 맺으며 학문을 쌓았다. 봄 산에 온갖 꽃이 다 떨어지고 없는데, 꽃 한 떨기가 남아 있어 천만 다행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삽화 : 인당 박민서 화가 제공

贈白大裕1(증백대유1) / 하서 김인후
봄 산에 온갖 꽃이 떨어져 없는데
한 떨기 꽃이 남아 퍽이나 다행이라
밝은 달 시름 가득한데 술잔이 비어있네.
春山百花落  幸有一支紅
춘산백화락    행유일지홍
寂寞茅詹下  飜愁酒盞空
적막모첨하    번수주잔공

시름만이 가득하기만 한데 술잔은 텅 비어 있다네(贈白大裕1)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고시 첫 구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 산에 온갖 꽃이 다 떨어지고 없는데 / 꽃 한 떨기가 남아 있어 천만 다행이구나 // 쓸쓸하게 떠있는 밝은 달 아래에 앉아 있으니 / 시름만이 가득하기만 한데 술잔은 텅 비어 있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대유 기봉 백광홍에게 주다1]로 변역된다. [대유大裕]는 상용 낱말은 아니다. [너그러운 사람] 쯤으로 해석함이 좋을 듯싶다. 시인은 시적대상자인 기봉 백광홍(白光弘 1522~1556)과는 12년 차이임에도 [대유大裕]란 표현을 썼다.

시인은 모든 산에 꽃이 떨어졌는데도 한 떨기 꽃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는 시적인 비유법을 썼다. 봄이 돌아와 산에 피었던 온갖 꽃이 다 떨어졌는데도 꽃 한 떨기가 남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시상을 일으켰다. 온갖 꽃이란 한가한 이름 있는 선비나 시인을 뜻하겠고 남아 있는 꽃은 기봉인 대유이리라.

화자는 후구에서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을 받았던지 시상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쓸쓸하게 떠있는 밝은 달 아래에서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데 시름은 가득한 가운데 술잔이 비어 있다는 시상을 일구었다. 술잔을 채워 정담을 나누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느낌을 갖는다. 시인은 이어진 후구에서 [따스한 봄볕은 초가집에 비추고 / 술에 취한 얼굴이 다투어 붉어지네 // 나와 그대 모두 깊은 시름을 잊는 듯하니 / 우리 백발이 무성해짐이 두려울 뿐이라네]라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 산에 꽃 떨어져서 한 떨기만 남았구나, 밝은 달 아래 앉아서 술잔 속에 시름 담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541년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하고 홍문관저작이 되었다. 1543년 홍문관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 홍문관부수찬으로 세자 보도 임을 맡았던 인물이다. 1543년 부모봉양을 위해 옥과현감으로 나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자와 어구】
春山: 봄 산. 百花落: 온갖 꽃이 떨어지다. 幸有: 다행히 ~이 있다. 一支紅: 한 가지의 붉음. 곧 한 가지만 비어있다. // 寂寞: 적막. 고요함. 茅詹下: 띠 처마의 아래에서. 飜愁: 뒤집어진 수심. 酒盞空: (앞에 있는) 술잔이 텅 비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문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전)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