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수
홍천전통발효연구회 전문위원
㈜홍천허브·다물연구소 대표

생각이 많거나 신경을 지나치게 써서 생기는 여러 증상에 쓰이는 방제인 귀비탕은 여성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처방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서는 화병의 치료에 귀비탕을 언급하고 있다. 과거 힘든 시집살이로 인한 화병이 여성들의 단골 병증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귀비탕은 ‘治憂思勞傷心脾, 健忘怔忡:근심이나 생각을 과도하게 하여 심비(心脾)를 상하여서 건망증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를 치료할 때 사용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비주운화(脾主運化)라는 말이 있듯이 비장(脾臟)의 주요 역할은 소화와 운화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비장은 생각(思)을 주관하는 장기로 예로부터 간의지관(諫議之官)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옛 관직인 간의대부에서 유래한다. 간의대부는 당나라와 발해, 고려의 관직으로 왕의 의사결정을 조절하고 자문과 간언을 한다. 즉 간의지관인 비장은 군주지관인 심장의 자문과 간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군주인 심장이 항진되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심화가 쌓였을 때 이를 제어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비장은 사사건건 심장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우리가 스트레스나 심화로 열을 받게 되면 당장 소화가 되지 않거나 식욕이 멈추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귀비(歸脾)”의 의미는  “순수한 비장으로서의 원래의 역할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귀비탕은 중국 송나라 엄용화(嚴用和 1127~1205)의 제생방(濟生方)에 처음으로 기록됐다. 제생방은 개인 임상경험집인데 이후 당귀가 추가되고 다시 명나라 때 설기(薛己)에 의해  원지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설기는 여기에 시호(柴胡)·치자(梔子)를 더하여 본래의 적응증에 열이 있을 때 사용하는 ‘가미귀비탕’을 처방하였다. 이 경우에는 귀비탕 증세보다 양증(陽證)인경 우에 쓰인다. 즉 억울하고, 신경증, 불면이 더 심한 경우 가미귀비탕을 쓰면 좋다. 귀비탕의 두 처방은 양증인가 음증인가에 따라서 구분해야 한다. 이후 귀비탕은 《의학입문(醫學入門)》, 《동의보감》 등 많은 서적에 소개되었다. 조선시대에 귀비탕은 마음을 다스리는 동시에 비위를 보하는 대표적 보약으로 많이 쓰였다. 특히 근심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하여 적체된 듯한 증세를 치료하는 데 자주 활용되었다.  

선조는 음식을 꺼리는 증세로 귀비탕을 복용한 바 있다(『선조실록』 40년 12월 18일). 또 『승정원일기』에는 인조대에 중전의 환후를 논의하면서 심비경(心脾經)이 허열(虛熱)하므로 마음을 다스리고 비위를 보하는[治心補胃] 약재를 사용해야 치료할 수 있다며 의관들이 귀비탕을 권한 기록이 있다. 숙종대에도 귀비탕은 맛이 쓰지 않아 심비의 혈기가 부족하거나 안질과 건망증이 심한 경우 처방하는 약으로 인정되었다. 

의관들은 귀비탕이 비장을 맑게 하고 혈기를 보한다고 추천하였다. 특히 비위만을 보하려고 하다가 따뜻한 약재에 치우치거나 심장을 다스리려다가 차가운 약재에 치우치게 되는데 귀비탕은 비위를 보하고 온·냉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가장 균형 잡힌 방제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 수재된 귀비탕의 구성 약재는 인삼, 황기, 백출, 복신, 용안육, 산조인, 원지, 당귀 각4g씩, 목향 2g과 감초 1.2g 생강 5쪽, 대추 2개로 인삼, 황기, 백출, 복신은 보기제로써 비위에 작용하며 군주인 심장을 보좌하느라 지치고 흩어진 비위의 기운을 북돋운다. 복신, 산조인, 용안육, 원지 등은 안신제로써 심장에 작용을 하여 스트레스와 심화로 인해 실조된 마음을 다스린다. 당귀 용안육은 비위와 심장의 흩어져버린 혈을 돌아오게 하는 조혈작용을 한다.

귀비탕은 한방에서 오래전부터 별다른 부작용 없이 강박증(노이로제)을 치료할 수 있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귀비탕은 정신적인 과로로 오는 모든 노이로제 증상에 쓰인다. 특히 쓸데없는 생각이 많고 자꾸 의심이 들 때,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면서 몹시 두려울 때 많이 활용된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귀비탕은 한의원에서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빈번히 처방되는 방제이다. 그만큼 현대인들도 화병이나 노이로제로 인한 비위기능의 실조를 많이 겪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귀비탕을 만들기 어렵다면  굳이 한의원을 찾아서 처방을 받지 않아도 제약회사 제조의 귀비탕을 구할 수 있다. 한풍제약의 귀비론 과립, 경방신약의 진경안신 등 과립 형태의 가미귀비탕 등을 약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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