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골목길은 어느 도시에나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의례히 길이 있게 마련이고 그 길이 좁으냐 넓으냐에 따라 골목길 소로 큰길 등으로 나뉘어 부른다. 서울의 경우도 종로구 관철동 서울역 앞 서대문구 서문로 쪽 동대문 평화시장 쪽 골목길이 수도 없이 많다. 우리고장 홍천에도 불과 2~30여 년 전만해도 골목길이 많았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되고 자동차나 자전거 손수레 등이 많아지면서 골목길이 큰길이 되는가 싶더니 아주 작은 길들은 아예 없어져버렸다. 

골목길이 없어지는 경우는 대체로  세 가지의 원인이 있다. 첫째는 도로확장이고 두 번째는 재개발이고 세 번째는 사용이 뜸해지자 주변의 가옥주인들이 무단으로 막아버려서다. 골목길은 막아도 큰 불편함이 없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막아버리는 거다. 경우에 따라 막고서 사용하는 자들도 있고 공터로 남겨두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집 근처에도 골목길이 많았으나 지금은 넓혀져서 골목길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길이 많다. 

수년전까지도 골목길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입구가 막혀버린 곳이 있다. 희망5리경로당 동쪽에서 진리경로당 방향 50m쯤에 가정교회(옛 통일교) 주차장 쪽으로 가는 약 60m 길이의 골목길이 있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아주 좁은 길로 이 길은 교회 마당을 지나 부군수 관사 앞길로 통하는 길이다. 수년전부터 사용을 안 하니까 자연히 주변 인근 거주자들에 의해 통로 자체가 앞뒤에서 막혀져있다. 지금이라도 살렸으면 좋겠다. 길은 현재 사용여부를 떠나서 터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홍천읍내에 골목길이 많은 곳이 진리다. 현 희망지구대 앞길 건너에는 과거에 서민들이 많이 살았다. 석화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5~60여 년 전만해도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골목길이 거미줄같이 나있었다. 동네 한가운데는 샘물이 있었다. 지금도 몇 군데에는 아직 골목길이 남아있다. 아동문학가로 수년전에 작고한 민현숙 작가의 생가 앞 골목길도 지금 확장은 됐지만 아직 그 형태가 남아있다. 아동문학가로 이름을 날린 민 작가의 유명세로 관광자원화의 하나로 활용돼도 좋을 듯하다. 

또한 전상국 소설가가 10여 년 이상 살았고 결혼을 해 신방을 차렸던 집도 있다. 홍천성당(천주교) 석탑 밑 골목에 있었다. 비록 지금은 타인이 건물을 헐고 가정집을 지었지만 그 터만은 기억할만한 곳이다. 경기도 양평 양수리 황순원 문학관은 그의 소설 ‘소나기’에 단 두 줄의 문장이 양평 북한강 강가에서 쓰였다 하여 황순원 문학관을 짓고 연인원 40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다. 화천군은 연고도 없는 이외수 작가를 끌어들여 문학촌을 만들어주고 있는 실정인데 그에 버금가는 전상국 작가가 아닌가. 그는 50~60년대 초 구 문화관(현 공영주차장) 밑 강가에서도 살았으며 그의 중·장편소설 상당부분을 이곳에서 구상하고 쓴바 있다. 역시 골목길 옆이다. 지금은 강변도로로 확장돼 있다.

홍천여고 뒤편 현 호국사 앞 동네(마지기로)에도 골목길이 많았다. 홍천초등학교 체육관 뒤 서쪽에도 골목길이 많아 미로같이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구 세무서(현 한림중앙의원) 뒤쪽과 홍천여고 앞 식당 뒤편도 골목이 많았다. 읍사무소 북쪽 동남장 여관 앞 골목길 K컨벤션웨딩홀(구 경동예식장) 뒤편과 진리 동양빌딩 북쪽 인근 홍천관광호텔 뒤쪽 다리건너 닭바위 쪽은 화양정미소 북동쪽 골목길이 유명했고 연봉리는 동국주유소 뒤와 한전 뒤쪽 골목길이 유명했다. 

길은 넓히는 것도 좋지만 있는 길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어쩌면 개발보다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야 개발로 인해 없어졌다 하더라도 현재의 길은 그대로 놔뒀으면 한다. 더 나아가 막았던 길도 확 터놓으면 향후 관광자원 등으로 요긴히 쓰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