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식
시인, 전 홍천예총 회장,
국가기록원민간심사위원

2020년 9월15일 오전 10시 홍천읍 희망리 필자의 자택에서 1960년 3.15부정선거와 4.19혁명부터 1993년 문민정부 수립까지 강원지역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자료 중 홍천지역 구술녹취를 한바 있다. 이 구술내용은 편집이 불가하고 영구보존용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전제주의나 제국주의 즉 독재의 반대 개념이다. 따라서 독재정치를 벗어나기 위해 항쟁한 것이 결국 민주화운동일 게다. 이 자료(구술 포함)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방지 광고란에서 우연히 우리지역의 민주화운동 관계 자료를 수집한다고 하여 문의를 했다. 처음에는 수기 정도를 써볼까 했는데 마침 운동본부에서 홍천지역의 적임자를 선정하지 못하던 차에 필자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 언급하는 내용은 그날 구술녹취 한 내용을 요약해 적은 것이다. 

1960년이면 지금부터 60년 전 일이다. 반세기를 훨씬 넘고 그때 태어난 아이는 지금 환갑이 된 긴 세월이 흘렀다. 당시 필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세 사회초년생이었다. 대학문턱은 1주일이 고작이고 귀향해서 취업준비생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알바생이고 그 당시는 가정교사라 하여 방문교사를 했다. 오전에는 놀고 오후에는 시간별로 학년을 나눠 저녁 늦게까지 가르쳐 용돈과 약간의 생활비를 벌었다.

민주화운동을 말하려면 3.15부정선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정가는 자유당이 여당이고 대표 야당은 민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아님)이고 그 외 군소정당이 몇 개 있었다. 1960년도를 전후해서 자유당이 권력을 장악하고 정경유착 인사독재 등을 하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 부통령을 재선시키고자 부정선거를 공공연히 했다. 부정선거 방법은 뇌물공여 금전살포 공권력 행사 등등 노골적으로 부정선거를 단행했다. 홍천지역은 당시 자유당 조직이 원체 탄탄해서 이재학 국회부의장이 내리 3선을 하고 옥중당선까지 했다.

이때 홍천의 학생들은 학도호국단이 주최가 돼서 부정선거 규탄 궐기대회를 했고 급기야는 4.19의거 직전 서울로 원정데모를 가기도 했다(이 내용은 예전 기고에도 언급한바 있음). 홍천농고와 홍천여고 여중 3학년 일부 학생들이 금강운수(당시 본사가 홍천에 있었음) 차량 10대를 이용해 상경했다. 서울 망우리에서 1차 제지를 받고 이어 청량리와 제기동에서 경찰과 조직폭력배들의 과격한 제지를 받자 연·고대생들이 학생들을 보호해 무사히 귀향토록 했다. 

당시 우리나라 전국 중고교가 6천여 개가 있었는데 이중에서 홍천이 다섯 번째로 부정선거 규탄 궐기대회(데모)에 참가한 것이다. 그것도 서울로 원정까지 가서 말이다. 부정선거 데모는 제일 먼저가 대구공고이고 그 다음이 마산상고 부산상고 서울의 성남고등학교 등이다. 결국 홍천의 민주화운동이 강원도 내에서는 제일 먼저 참여한 것이다.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했고 정부는 거의 무정부상태로 대혼란에 빠졌을 때 홍천지역에는 타지에서 온 청년들(대학생)이 머리에 흰 띠를 매고 군청과 경찰서를 장악하고 자유당 책임자들과 동조자 내지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토착세력가들을 응징했다. 당시 10여 명이 대상이 됐으며 그들의 가옥 대여섯 채가 파괴됐다. 

4.19 이후 자유당이 몰락했으나 그 뿌리가 워낙 튼튼해서 정당이 바뀌어도 새로운 국회의원도 결국 자유당에 몸담았던 자나 그 가족들에서 세 명이 나왔다. 선거구역이 광역으로 바뀌고 국회의원도 여야로 갈리면서 오늘의 지방정가를 맞게 됐다. 이날 구술녹취 내용은 대강 위와 같은 이야기로 1시간 30분간 녹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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