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24】

퇴계 이황 선생이 선조의 간청에 못 이겨 잠시 벼슬에 있다가 그마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다. 외로운 돛단배가 퇴계를 위해 머물러주지를 않는 시점에 장안의 명사들이 한강변에 나와 전송했다. 명사의 작별에 시가 없을 수 없는 법. 저마다 솜씨를 뽐내어 한 수씩 읊었는데 으뜸으로 뽑힌 작품이 고담시다. 조정의 시름은 잊고 가겠지만 그 시름을 어떻게 모두 잊고 고향에 있을 수만 있을까 반문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漢江送退溪先生(한강송퇴계선생) / 고담 이순인
한강물 유유하게 밤낮없이 흐르는데
외로운 돛단배는 길손 위해 머물지 않네
고향산 가까워질수록 시름 다시 생겨나리.
江水悠悠日夜流 孤帆不爲客行留
강수유유일야류 고범불위객행류
家山漸近終南遠 也是無愁還有愁
가산점근종남원 야시무수환유수

시름이 없어지다 다시 생겨나시리(漢江送退溪先生)로 번역된 칠언절구다. 작자는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43~1592)이다. 백광홍, 이산해, 윤탁현, 송익필, 최립, 최경창, 하응림 등과 더불어 명종 대의 조선 팔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황,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이, 송익필, 성혼 등과 각별한 교유를 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강물은 유유히 밤낮없이 흐르는데 // 외로운 돛단배는 길손을 위해 머물지 않네 // 고향 산이 가까워질수록 남산은 끝내 멀어지니 // 시름이 없어지다 다시 생겨나시리]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한강에서 퇴계 선생을 전송하며]로 번역된다. 별리를 노래한 시가 많다. 그것은 눈물이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애절함이다. 강물이 마르기를 기다렸고, 눈물이 강물되어 더 많이 불어난다는 별리도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순수한 정한이 녹아 있지 않고 평범하지만 비범한 면을 보인다.

개인적으로야 산림에 묻혀 학문하는 삶이 즐겁겠지만, 나라의 촉망을 받는 지식인으로서 산적한 현안을 등진다는 것이 또 다른 시름의 시작이라는 점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구구절절 애절한 이별의 슬픔을 언급하지 않고도 상대의 의중과 자신의 아쉬움을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구절의 모티브는 송(宋)나라 범희문(范希文)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찾는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백성들을 걱정하고, 멀리 강호에 묻혔을 때는 그 임금을 걱정한다. 나아가도 걱정이요, 물러나도 걱정인 것이니, 그렇다면 언제나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대목에서 보인다.

【한자와 어구】
江水: 한강물. 悠悠: 유유하다. 日夜: 밤낮으로. 流: 흐르다. 孤帆: 외로운 돛단배. 不爲~留: ~를 위하여 머물지 않다. 客行: 길손(퇴계 선생). // 家山: 고향의 산. 漸近: 점점 가까워지다. 終南: 끝내 남산은. 遠: 멀어지다. 也是: 이야말로. 無愁還: 시름은 멀어지지 않고. 有愁: 수심이 생기리라.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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