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11】

매서운 겨울은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다. 살을 에는 추위에 두툼한 옷 한 벌은 봄옷으로 갈아입기 위한 전단계의 준비다. 이는 만고의 진리이고 순환의 원리다. 그래서 사계절이 있고, 음양이 있고, 오행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한 큰 스승이었지만 봄을 맞이하는 시내 위에서 이런 원리쯤은 구상하지나 않았을지 모르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日溪上(춘일계상) / 퇴계 이황
눈 녹고 얼음 풀려 버들가지 휘날린데
병중에 와서 보니 봄의 흥취 넉넉쿠나
꽃답게 싹트는 저 모양 어찌 저리 어여쁠까.
雪消氷泮?生溪 淡淡和風?柳堤
설소빙반록생계 담담화풍양류제
病起來看幽興足 更憐芳草欲抽荑
병기래간유흥족 경련방초욕추이

봄날 시내 위에서(春日溪上)로 푸는 자연시의 칠언절구다. 작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다. 이동설(理動說)·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 주리론적 사상을 형성하여 주자성리학을 심화·발전시킨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1552년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었지만 여러 차례 벼슬을 사양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눈은 녹고 얼음 풀려 푸른 물 흐르는데 // 살랑살랑 실바람에 버들가지 휘 날린다 // 병중에 와서 보니 그윽한 흥 넉넉한데 // 꽃다운 풀 싹트는 모양 이 더욱 어여뻐라]라는 시상이다.

이 시는 퇴계 선생이 1561년 봄에 지은 시로 알려진다. 이 시 바로 앞에 실려 있는 시에 “올봄 날이 추워 눈은 허공에 가득하고 폭풍이 휘몰아쳐 산은 무너질 듯하네”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그 해 겨울은 봄이 되도록 추위가 매서웠던 것 같다.

시인은 이 시에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맞이한 봄날의 정취를 진솔하게 묘사한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봄의 풍광을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지만, 얼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파릇한 새싹은 우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생명체임을 노래한다.

화자는 계절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봄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음을 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입춘이 막 지났으니 곧 봄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꽃이 필 것이니 봄이 되면 꽃다운 풀들이 ‘쏘옥’ 얼굴을 내밀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한자와 어구】
雪消: 눈이 녹다. 氷泮: 얼음이 풀리다. ?: 푸르다. 生溪: 시냇물이 흐르다. 淡淡: 살랑살랑. 의태어. 和風: 화한 바람. ?: 휘날리다. 柳堤: 제방둑 버들가지. // 病起: 병중에 일어나다. 來看: 와서 보다. 幽興: 그윽한 흥. 足: 넉넉하다. 憐: 어여쁘다. 芳草: 꽃다운 풀. 欲抽荑 싹트고자 하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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