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10】

새 아씨가 시집오면서 계집아이를 데리고 왔다. 부모를 뵈러간다고 했다. 허락을 했더니 나풀나풀 뛰면서 좋아했다. “아뿔싸 나는 어쩐담. 친정집도 잊고 살았는데.” 종년의 처지와 시인을 비교한다. 그러나 윗전은 베풀어야 되는 법. ‘그래 너나 잘 다녀오너라’ 하면서 대리만족(代理滿足)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베푸는 사랑이다. 시인은 계집아이에게 부모 뵈러 가도록 허락해 놓고 자기의 처지를 비교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送童婢歸覲(송동비귀근) / 남정일헌
우리 집 종년 아이 나이가 열 넷인데
제 집 간다 좋아하며 나풀나풀 좋아하네
새아씬 양반집 따님으로 친정집도 못 갔는데.
童婢年十四 徒步告歸寧
동비년십사 도보고귀녕
嗟我閨中處 何時過鯉庭
차아규중처 하시과리정

부모 뵈러가는 계집아이 종년을 보내며[送童婢歸覲]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남정일헌(南貞一軒:1840∼1922)으로 고종 때의 여류시인이다. 시 57수와 제문 등을 모아 양자 성태형이 묘지문 등을 부록에 넣어 1923년 [정일헌시집(貞一軒詩集)]을 발간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리 집의 종년은 나이 열네 살 / 나풀나풀 뛰면서 제 집을 가네 / 우리 집 새아씬 양반집 따님 / 친정이 어디인지 그것도 모르는데]라는 시상이다.

남구만의 7대손으로 16세에 성대호에게 출가했다가 부군이 21세에 요절하는 바람에 21세에 홀로 되어 조카를 양자로 들이고 효과 치가(治家)에 정성을 다했다. 일생을 효부로서 글을 쓰며 서사와 시작에 전념하면서 83세를 살았다. 한 여인은 그렇게 세상을 살다가 갔다.

시인은 양반집 규수로 금이야 옥이야 자란 처녀였지만 양반집 시집살이는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친정에 돌아가 며칠만 푹 쉬었으면. 그렇지만 언감생심이었으리라. 그런데 열네 살 철없는 종년은 제 부모를 보러 가겠다고 한다. 다녀오라고 했더니 종년은 나풀나풀 뛰면서 좋아한다.

화자의 입을 빌은 시인은 답답한 가슴으로 자기의 처지와 계집아이의 처지를 비교해 본다. 그러면서 보내는 마음으로 좋아했을 것이다. 너라도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어렵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종년은 오히려 걸음이 가볍고, 호강스럽게 보이는 새아씨는 거꾸로 가슴이 답답했을 것이니. 두 사람의 현실의 처지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계집아이는 좋아하고 아씨는 가고 싶겠지만 친정집을 잊고 살아야 했으니.

【한자와 어구】
童婢: 어린 계집종. 年: 나이. 十四: 14살. 徒步: 한갓 걷다. 나플나플 뛰다. 곧 의태어임. 告: 말하다. 알리다. 歸寧: 고향을 다니러 가다. 嗟: 발어사. 탄식함. 我: 우리. 閨中: 안방. 處: 처자. 새아씨. 何時: 언제나. [何]로 인한 의문사임. 過鯉庭: 친정을 모르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한국시조사랑시인협회 국제교류연구소장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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