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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3  14: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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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인연일까요? 인생이란 참 묘해요. 저는 밤 10시 반 이후에 교대역을 지나가는 일은 2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에요. 어제는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언니가 택시 타고 오라는 말을 슬쩍 어겼어요. 그리고 교대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려고 계단을 오르려 하는데 60을 갓 넘겼을 성싶은 여인이 찬 바닥에 앉아 졸고 있습니다. 여인의 발밑에는 노랑 병아리가 들어 있는 작은 박스와 바닥에 10개쯤의 껌이 늘어져 있습니다. 그녀는 하염없이 졸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불현듯 들어오는 생각. 저 여인에게 내 형편에 2만 원쯤 기부를 해야겠다. 그러면서 가방을 뒤지니 아뿔싸 오늘 지갑을 안가지고 나왔군요. 그런데 또 들어오는 생각, 핸드폰 케이스 속에 넣어 둔 꼬깃꼬깃한 비상금이 생각났어요.

저는 한참이나 지나쳐 온 길을 되돌아가 여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얼른 집에 들어가 주무시라고. 한없이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변에서 저를 쳐다봅니다. 아마 귀부인이 돈이 남아돌아서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제가 어제는 겉으로 보기엔 싸구려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건 아니었거든요. 그 눈빛들을 의식하며 길을 걸어요. 어깨가 올라가고 마음이 차올라요. 아, 기부란 이런 것이구나! 고마워하던 그 여인보다 내가 더 기쁜 거구나.

벅찬 기분을 달래기 위해 딸아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딸은 아주 잘했다고 마구 칭찬을 해주는군요. 대학생이 된 이후 지하철을 자주 타게 되는 제 딸아이는 지하철 역 구내에서 장사하는 여인들을 보면 마음이 찌르르 아프답니다. 저 여인도 집에 홀로 키우는 자식들이 있을까? 무얼 먹고 살까? 안보이게 될 때까지 ‘남 걱정 까지’ 한답니다. 참, 오지랖 한 번 넓지요?!

우리 아들 얘기로 넘어갈게요. 3학년이 되면서 심리학으로 전공 설계한 아들이 아주 난해한 숙제를 하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집 아래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렸던 거예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굉음을 내는 스피커를 틀어놓고 온 동네 잔치인양 소음을 일으킵니다.

한 줄을 쓰고 넋을 놓게 되고, 급기야 분노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쫒아 내려갔댔지요. 그때 아들의 눈을 사로잡은 풍경. 마치 깡마른 방아깨비같은 노인들이 학교 운동장과 아파트 사이의 펜스(울타리)에 다닥다닥 빼꼼히 붙어있는 모습. 그들에게 이 유희는 또 다른 볼거리였구나. 엄청난 굉음 또한 더없이 고독한 그들에겐 아름다운 멜로디로구나.

순간 아들은 주저앉을 것 같은 커다란 슬픔을 느꼈답니다. 다가올 어머니의 노년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뒤섞여 한동안 울컥했답니다. 우리 이렇게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어린 자녀들의 감정이 성큼 자라 타인의 고통과 자기 어머니의 생을 뜨겁게 사랑해 주는 모습에 제 마음 또한 따뜻해져 옵니다.

새로 차린 카페 앞뜰에 국화가 곱습니다. 담배꽁초 한 500개쯤 주워 내고 사비를 털어 제가 만들어 논 이 정원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단 돈 38000원으로 만들어 낸 꽃밭 정원.
저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꽃밭을 내는 삶을 조용히 살아가겠습니다.

조연재
서울 서초동 소재
조연재 국어 논술 교습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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