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7】

가을 국화다. 중양절엔 높은 곳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신라시대부터 큰 명절로 정하여 잔치를 베풀어 군신이 즐거움을 같이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봄(3. 3)과 가을(9. 9) 2차례에 거쳐 노인잔치를 베풀어 경로사상을 드높이는 동시에 조상께 차례를 지냈다.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 들떠있는데 서리 맞은 국화가 그 분위기를 돋군다. 술잔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이 맑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霜菊(상국) / 남명 조식
찬 국화 만 송이가 얇은 이슬 맺혔구나
짙은 향기 많은 곳 뜰 앞의 한복판에
중양절 술잔에 비쳐서 맑게 보인 그 얼굴.
薄露疑寒菊萬鈴 活香多處最中庭
박로의한국만령 활향다처최중정
高堂綵舞重陽節 人面橫斜酒面淸
고당채무중양절 인면횡사주면청

서리 속에 핀 국화(霜菊)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은 성운(成運) 등과 교제하며 학문에 힘썼으며, 25세 때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읽은 뒤 크게 깨닫고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오로지 처사로 자처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자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찬 국화 만 송이에 얇은 이슬 맺혔는데 / 짙은 향기 가장 많은 곳 뜰 한복판이구나 / 높은 집에서 채색 옷 입고 춤추는 중양절에 / 사람 얼굴이 술잔에 비스듬히 비쳐 맑네]라는 시상이다.

조식이 생존했던 시기는 사화기로 일컬어질 정도로 사화가 자주 일어난 때로 훈척정치(勳戚政治)의 폐해가 극심했다. 그는 성년기에 두 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 훈척정치의 폐해를 직접 경험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을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오로지 학문과 제자들 교육에만 힘썼다.

시인은 중양절의 정점에 서서 찬 국화에 이슬이 맺혀 있음을 본다. 국화 향이 뜰 한 복판에 가득한 가운데 큰 명절에 친지들과 잔술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마시려는 술잔 속에 참석한 사람들 얼굴이 비친다고 상상한다.

화자 또한 음력 9월9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중양절을 맞이하면서 고운 색동옷도 입었던 모양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큰 명절에 어찌 잔 술 돌리는 즐거움을 제외할 수 있으리. 마시고 취하는 술잔 속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비쳤으니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따뜻함을 마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자와 어구】
薄露疑: 이슬이 엉키었다. 寒菊: 찬 국화. 萬鈴: 만송이가 열렸다. 活香: 짙은 향기. 多處最: 가장 많다. 中庭: 뜰 한 복판이다. // 高堂: 높은 집. 綵舞: 채색옷을 입다. 重陽節: 중량절. 음력 9월9일. 人面: 사람 얼굴. 橫斜: 비스듬히 빗기다. 酒面: 술잔에 술이 담겨 있는 면. 淸: 맑다.

장희구 張喜久(문학박사 / 문학평론가·시조시인)
아호 : 瑞雲·黎明·友堂
시조시인·문학평론가·수필가 / 한국문인협회 회원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남부대학교·북경경무직업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서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 外 출강
[중국문자정책의 得과 失 연구] 인민일보 보도 外 논문·기고 수편 발표
소년동아일보·광주일보·무등일보 외 매일한자 20여년간 연재(1980~90년대)
현) [매일신문(대구)·매일신문(광주) 外 지역신문] 번안시조 연재 중
현)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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