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식 시인, 전 홍천문화원 부원장,
국가민간기록원
홍천읍 학다리는 홍천읍의 중심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마지기천에 놓였던 다리(교량)다. 지금은 복개돼서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대단한 교량으로 길이 약 20m정도의 철근 콘크리트 다리로 일제강점기 때 놓여졌다. 그 후 홍천읍 시가지가 발전될 때 교량 밑을 흐르던 개울이 현재 관광호텔 쪽으로 굽어져 있었는데 1977년에 하천을 곧게 펴면서 홍천초등학교 앞에서부터 개울을 복개했다. 홍천주유소 옆까지 약 300m를 직선으로 새로 물줄기를 내면서 복개를 하고 원래의 개울은 메워버렸다.

학다리는 복개 전까지 다리 옆 구조물에 한문으로 맨 앞 글자는 학자가 새겨지고 그 다음 글자는 마모되어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위치는 구 평화약국(현 24시간 편의점) 건물에서 서쪽 삼성디지털전자와 영광라사 쪽으로 놓여졌던 다리다. 그런데 요즈음 학다리 위쪽의 도로변에 인도를 확장하면서 낡은 건물을 헐고 일부 신축건물이 들어서게 되어 공사가 한창이다. 이참에 학다리에 대한 변신을 써보기로 한다.

학다리는 홍천읍이 형성될 때 이미 돌다리부터 시작해서 나무다리를 거쳐 철근시멘트 다리가 일제강점기 중반 때 개설됐고 6.25전쟁 때 보수되어 차량이 통과되었다. 그 후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1977년도에 마지기천을 직선으로 펴면서 복개를 했다. 후에 차량이 늘면서 좁은 인도가 문제되어 도시정비 사업으로 2012년 하반기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2013년 상반기에 끝낼 예정으로 이번이 세 번째 도시정비 사업으로 모르긴 해도 우리세대에는 이번이 마지막 정비일 것 같다.

옛 홍천읍의 발전과정을 연상해보면 학다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발전해온 것 같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를 거쳐 6.25한국전쟁 전후를 살펴보면 학다리 밑을 흐르던 마지기천의 맑은 물줄기를 생각하게 된다. 최재일(83세)씨의 말에 의하면 1950년대 전후만 해도 마지기천은 물이 꽤 많아 아이들이 낚시로 송사리도 잡고 어항을 놓아 버들치, 붕어를 잡았다고 한다. 특히 여름 장마때는 화양강에서 올라온 물고기(잉어, 붕어 등)를 족대로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학다리에서 동북쪽 50m지점(우리한식집 식당)에는 홍천읍에서 수량이 제일 많이 나오는 바가지 샘물이 있어 홍천읍 시내의 상당수가 식수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농업용수로 썼으나 1980년대 초 도시기반정비 사업 때 샘물이 메워져 안타깝다.

학다리에서 서쪽으로 100m정도에는 3000㎡정도의 큰 천연연못이 예부터 있었으며 연못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물가에는 청포가 빼곡히 자랐다. 2~3m 깊이의 연못에는 붕어와 미꾸라지, 올뱅이가 많았고 필자가 본 것으로는 황새와 왜가리 등이 버드나무에 날라와 앉았다. 짐작컨대 조선시대에는 학이 와서 나무에 앉았다 해서 그 앞을 흐르는 물에 놓인 다리를 학다리로 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학다리에서 50m정도의 남쪽에는 6.25이전부터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그 옆에는 우체국(현 배스하우스 커피전문점)이 있었고 남쪽으로는 상가가 번성했다.

요즈음 서울은 청개천을 해체하고 가까운 춘천은 약사천을 살리기 위해 복개를 뜯어내고 도심 속의 실개천을 만들어 곧 통수를 한다고 한다. 홍천은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37년여 만에 해체한 마지기천의 물줄기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학다리는 철근시멘트 속에 묻혀 우리세대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흄관속의 교량으로 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섭섭한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홍천뉴스 / 홍천신문 홍천지역대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