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큰 명절이 두 개가 있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날로 설날이 있고 그 다음이 추석으로 역시 음력 팔월 한가위 즉 추석날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올해도 예외없이 약 3천여만명이 고향을 방문한다고 한다.

독자분들께서도 귀향길 어렵진 않았는지요? 또한 고향의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모여 오순도순 둘러 앉아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를 밤새워 나눴겠지요. 명절은 원래 정서적으로 감동이 짙은 동양인이 서양보다 잘 지킨다고 한다. 특히 중국에선 우리나라 못지않게 명절을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 추석명절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고 특히 신라시대에는 추석명절이 다른 명절보다 더욱 우위의 명절로 온 국민이 즐겼다고 한다. 추석에는 햇곡으로 음식을 지어 조상에게 바치고 이웃과 나눠 먹으며 하늘에 감사했다는 기록의 미풍양속이 있고 최근에는 산업의 다변화로 농촌거주 인구보다 도시에 훨씬 더 많은 인구가 분포돼있어 명절이 되면 귀향의 행렬이 길을 메우고 있다.

고속도로와 차량이 많지 않던 1960~ 70년대에는 요즈음 보다 더욱 교통혼잡이 대단했다. 지방으로의 귀향열차는 만원사례였고 공장에서는 버스를 마련해 각 지방으로 직원들을 수송해 주었다.

농업에서 상공업으로 전환되는 시점의 공단에서는 설날과 추석명절만 되면 그동안의 노고에 넉넉한 보너스를 챙긴 직원들이 선물꾸러미를 들고 일시에 고향을 찾기 때문에 교통전쟁이 나곤 했다. 지금은 잘 발달된 교통사정으로 복잡은 하지만 과거처럼 혼잡은 피할 수 있는 귀향길 명절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화가 조성되고 동서의 정서적 명절이 변한다고해도 우리고유의 명절을 즐기는 것은 오래 이어져갈 것 같다.

필자의 경우도 그렇다. 어린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경험으로 학창시절만 해도 고향이 그립고 향수에 젖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고향엔 아무도 없고 내 자신이 고향을 만들어 살고 있는 홍천이 내 후손들에게는 또다른 고향이 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고향을 갖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6.25전쟁이후 많은 실향민이 고향을 북에 두고 남하해서 성공해 잘살고 있는데 명절만 되면 특히 고향생각이 더 난다고 한다. 천만이 넘는 실향민 중에서 그 당사자들은 많이 고인이 되고 그 자손들이 대를 이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것 같다.

고향에는 대부분 조상의 묘가 있다. 명절을 쇠고 성묘를 갔다오면 그 날의 일상 한 부분이 끝난다. 조상의 묘를 파서 유골을 뿌린 후손의 말은 묘가 없으니까 홀가분하고 벌초할 일도 없고 성묫길도 없어 좋다고 한다. 그 말에 일리도 있지만 농업은 전 산업의 10%도 못 미치는데 귀향은 뭐고 성묘는 시대에 뒤떨어지게 왜 찾느냐고 한다면 그에 꼭 맞는 답을 찾기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주거의 70%가 도시권 인구이고 순수 농업인 가구는 10% 내외다. 시골학교는 폐쇄되고 면단위에서는 한 해에 출생아이가 몇 십 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농촌의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도시의 팽창은 기하급수로 늘고 있고 중소도시는 답보상태로 보합세다. 이러다간 얼마안가 명절도 시시해지고 귀향의 벅찬 마음도 고향도 잊혀지고 말것같다. 인간의 행복지수는 부의 창출이나 문명의 끝없는 발전에 있다고만 할 수 없다. 과거도 돌아보고 개울물 흐르는 고향산천도 그려보는 상상이 곧 행복지수를 높이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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