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의 물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청정1급수 화양강, 생동감 넘치고 아름다운 화양강 지키기 위해 모두가 나서야’

▲ 뱃재고개에서 발원된 물이 흘러서 홍천의 동서 화합을 이루며 화양강을 만들어 낸다
▲ 홍천강발원지에서 화양회 회원들과 함께
▲ 글 : 재경 화양회 상임고문 박 태 용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내 고향 홍천은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가운데 화양강의 물줄기를 따라 수 백가지의 내력을 내포하고 있다.

홍천군은 고구려시대 벌력천현, 통일신라시대에 녹효현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 홍천현이 됐다.

동쪽은 양양군과 강릉시, 서쪽은 가평·양평군, 남쪽은 횡성·평창군, 북쪽은 춘천시와 인제군에 각각 접한다. 홍천강은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에서 발원해 홍천 중앙부를 지나 북한강 청평호로 흘러들어 주민들은 “홍천강은 다른 지역의 물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청정1급수”라고 자랑한다. 홍천읍을 중심으로 상류지역은 화양강, 하류지역은 홍천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영서 내륙의 중앙에 자리한 홍천군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의 3배 넓이이며 강원도의 10.7%에 달한다. 홍천은 동쪽은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산지가 군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홍천은 지리상으로도 영동과 영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같은 고장인데도 기후가 다르고 말이 다르다. 백두대간 험산준령에 기대고 사는 동쪽 사람들은 거센 영동지방 사투리를 쓰고, 서쪽 사람들은 부드러운 경기도 말씨에 더 가깝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었던 한서 남궁억(1863-1939) 선생은 1918년 향리인 이 마을로 낙향해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짓고 교육에 힘쓰는 한편 무궁화를 전국적으로 퍼뜨리는 데 힘썼다. 1933년 체포됐다가 2년 뒤 병으로 석방됐지만 77세인 1939년에 사망했다.

홍천군은 해마다 가을에 남궁억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한서문화제를 열고 있다. 홍천이 자랑하는 인물 가운데 또 한사람이 최승희(1911-1967)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춤꾼인 최승희는 남면 제곡리 안말에서 태어났다. 최승희 춤 정신의 계승을 위해 해마다 최승희 춤 축제를 열었으나 2년전부터 중단된 상태이다.

인류는 물줄기를 따라 마을과 도시 형성이 되고 그 물줄기의 형태에 따라서 크고 작은 도시를 이루며 집단생활을 하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즉 물은 인간에게 없어선 안 되는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적에는 나룻터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으며 많은 토종물고기들이 있어 가재잡고 피라미 등을 잡아서 철엽하던 추억이 있고, 한여름 밤에는 아낙네들의 목욕탕이 되어 주고 겨울이면 강물이 얼어서 썰매타고, 팽이치던 화양강 굽이굽이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화양강 물줄기도 옛 추억으로만 생각해야 하는가? 지금은 모든 생활원이 배금주의 사상이 농후한 흐름에 따라 실개천까지 생활폐수 또는 축산분료로 인하여 강물이 혼탁해지며 외지에서 찾아오던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이는 홍천군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우리 모두가 노력하여 천연 1급수를 오래도록 유지하는데 민·관이 합심하여 지켜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홍천군은 전체 인구수도 증가일로에 있으며 군수의 강한 의지로 군민을 위한 어려움 해소에 적극 노력하고 화양강을 유지 보존한다는 강한 의지에 고향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출향민들이 모여서 1980년도에 화양회라 칭하여 현재까지 맥을 이어온 재경 화양회원들은 고향홍천을 그리워하고 화양회의 뜻을 알기 위하여 화양강 발원지를 다녀왔다.

화양강은 내면 율전리 미약골(백제고개터)에서 발원하였으며 가리산, 공작산의 물줄기와 합류하여 홍천읍을 거쳐 청평강까지 150Km를 흘러 북한강과 합류하게 된다. 화양강이라는 이름은 1864년에 편찬된 “관통지”에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화양강은 홍천사람들에게는 어릴 적 부르던 학교 교가에도 들어있듯이 우리 마음의 고향이며 청정1급수를 가진 우리 모두의 자랑이다. 주변 환경이 가장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치는 5월, 6월에 화양강의 발원지를 찾아보면 좋을 듯 하다.

특히 발원지 촛대 돌에 새겨진 “화양강발원지”란 기표를 보고 그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홍천사람만이 간직할 수 있는 그 이름 “화양회”의 회원과 단체는 영원할 것이다.
(기사의 일부 글은 경향신문 김석종 기자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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