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호 존중돼야 한다
   요즘 TV 켜기가 두렵다. 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이야기,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했다는 이야기,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체벌을 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 사는 맛과 향기가 듬뿍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 차야 할 뉴스가 정반대의 현상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은 크게 가정과 학교라는 두 축이 있다. 하지만 지식기반 정보화사회로 전환되면서 가정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지 오래됐고 그나마 마지막 보류인 학교교육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지 오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던 때도 언제인가 싶다. 학생의 인권과    선생님들의 교권이 충돌하면서 힘겨루기가 한창인 곳이 학교 교실이다.
   교과지도는 점수라는 성적으로 눈에 쉽게 보이지만 생활지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성적은 학원이 대신해 주거나 보완해 줄 수 있지만 가정교육이 사라진 상태에서 인성지도는 학교가 아니면 대신해 줄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생활지도가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교육은 학생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과 감화를 통해 변화시키는 방법도 있고 자극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도 있다. 전자는 시간이 필요하고 매우 힘들다. 후자는 즉각적이고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오랜 전통적인 지도 방법인 사랑의 회초리를 사용해 왔다. 학생지도라는 명목으로 간접체벌도 많이 사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학생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회초리의 사용은 물론 간접체벌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학습자는 누구나 편안한 가운데 대우받으면서 공부하기를 원한다. 1:1의 관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교실에는 많은 학생들이 함께 더불어 공부를 해야 한다. 따라서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편안함 이전에 동료의 학습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학교 교실은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생활해야 하므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인 이해, 양보, 배려, 협동, 규정 준수 등이 요구된다. 하지만 철저하게 나를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참을성도 부족하다.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평생을 그르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정에서부터 자녀를 한두 명만 낳아 기르기 때문에 귀하게 키운다. 대부분 맞벌이 부모로서 자녀 양육에 직접 참여가 어려우므로 어린이집이나, 조부모 또는 보모를 통해 양육이 이루어지므로 부모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오냐오냐’로 키우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귀하게 키우는 자녀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맞거나 체벌을 당하면 앞뒤 사정은 따져볼 겨를 없이 자녀의 이야기만 듣고 흥분하는 것이 요즘 학부모의 세태다. 귀한 자식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 담당선생님이나 학교 측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오냐오냐’ 양육은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가장 큰 배경이다. 귀할수록 엄하게 키워야 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오냐오냐 키우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훗날 부모형제도 몰라보는 패륜아라는 끔찍한 결과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녀의 당장의 환한 웃음소리보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신음소리에서 희망을 찾고 읽어야 한다.
   선생님들도 요즘 세태를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세계로 뛰어들어 그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는지를 파악해 가며 자신과 함께 배워나가는 존재로 인정하고 학생이라는 생각보다는 인격체로서 존중해 줄때 선생님을 존경하는 학교 풍토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다면 학부모의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어야 한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사의 교권은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들 스스로 학생들을 사랑과 열정으로 지도할 때 자연스럽게 스승 존경 풍토가 만들어지고 교권이 확립될 것이다.
이영욱 홍천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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