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은 철정검문소에서 내촌다리를 건너 ‘용회골’ 산자락을 돌아 ‘아오라지’를 지나 다시 ‘북창다리’를 건너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마을 이름을 많이 들먹이는 이유는 북창은 철정에서 강 건너 마을이지만 외따로 떨어진 마을이기 때문이다.
  ‘내촌천’과 ‘장남천’의 양수머리를 이루는 이곳은 역사적으로는 ‘북창’이라는 사창이 있던 곳이다.
  북창 다리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둔덕위로 이색적인 건축물이 자리하고, 한길씩 자란 밀밭 사이로 바람의 흔적이 묻어난다.
  마을 한가운데 취수탑이 서있다. 이 취수탑은 북창의 희망이었다.
  홍천군에서 자신만만하게 추진했던 ‘관광휴양단지’는 1995년 2월 21억7천만원을 들여 북창일대에 9만9천571㎡의 단지를 조성했으나 투자 기피로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게 이끌어오다가 최근에는 전원주택단지로 분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 이와 더불어 ‘회골’ 안막에 ‘온천개발’ 관정을 뚫었지만 수온 및 수량부족으로 포기상태에 놓여있다.
  서울~양양간 동서고속도로 가운데 연말까지 서울~춘천~홍천 구간이 완공되면 지가 상승이 기대돼 경기가 회복되면 매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할 뿐이다. 
  마을사람들은 기대가 컸지만 어찌 하겠는가. 평온한 듯 여전히 땅을 갈고 농사를 짓는다.
  ‘북창’은 ‘승사봉’이 길게 이어져 내리면서 너른 뜰을 이룬다. 그 사이로 ‘횟골’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한가운데를 지난다.
  횟골은 깊지만 수량이 많지 않아 개울이 말라있다.
  ‘북창 세곡 창고’ 터는 횟골 어귀에 있다. 밀밭너머로 밤나무 아래 파란 기와집이 두채 있고 좀 더 짙은 지붕을 한 집이 창고 터다. 
  창고는 오래전에 없어지고 또한 그곳에 집이 들어서서 몇 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창고 앞쪽 뜰은 ‘창되(창대)’라 한다.
  온천개발을 하던 곳이 어디인지 여쭈어보니 횟골을 가리킨다. 물이 흘러나오고 있어 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며 일단 들어가 보라고 한다.
  횟골로 들어섰다. 비포장도로다. 바위벼랑에는 벌통이 놓여있고 개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가자 공터가 나왔다.
  공터를 둘러보다가 물이 흘러나오는 관정구를 찾았다. 풀숲에 있는 관정구는 벌겋게 녹이 슬어 있다.
  뚜껑을 닫아놓고 열쇠를 채워놓았다. 물이 흘러나와 그대로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어떻게 물을 받을까 생각하다가 버드나무를 꺾어 비틀어 호수를 만들어 틈새에 끼우고 한 모금 받아 마셨다.
  물은 시원했고 약간 단맛이 났다.
  골 안막으로 들어갔다. ‘웃골’과 ‘아랫골’에서 흘러내리는 토사방지용 사방댐이 놓여 있다.
  웃골 어귀에는 작은 폭포수가 있고 숲이 우거진 사이로 난 좁은 산길이 ‘화상대 연못골’로 이어진다.
  ‘아랫골’은 ‘술음재’로 이어진다.
  다시 내려와 온천물 약수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관광휴양단지로 내려왔다.
  취수탑의 물은 어디서 내려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횟골에 개발한 온천수를 끌어와 사용하려고 했을 거라 생각하며 ‘뒷물가’로 나갔다.
  북창 관광 휴양단지가 들어선 곳은 ‘뒷물가’다. 뒷물가 둑을 따라 내려오면 ‘대평보’가 있다. 이 보는 ‘누치소’를 지나 ‘외삼포리 대평뜰’로 든다. 봇물로 흘러드는 물이 엄청나다.
  이 보 어귀는 소문난 낚시터다. 특히 모래무지가 잘 낚인다고 한다.
  ‘모래무지’는 맑은 수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바닥이 모래와 자갈이 섞인 곳에 즐겨 서식한다. ‘모래무지’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입으로 모래를 들이켜고 모래 바닥을 파고드는 습성을 한마디로 잘 나타내고 있다. 먹이를 먹을 때도 모래와 음식물을 함께 섭취한다. 물론 음식물은 삼키고 모래는 아가미로 배출한다. 몸 전체를 모래 속에 묻고 머리만 위로 내놓은 채 숨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갑자기 놀랐을 때에도 가슴지느러미를 움직여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긴다.
  모래무지는 ‘전어지(佃魚志)’, ‘물명고(物名考)’ 등 외에 ‘취사어(吹沙魚)’, ‘사매어(沙埋魚)’로 소개되어 있다. 잉어과의 민물고기인 모래무지는 한 쌍의 수염을 가지고 있으며, 물속의 환경미화원이라 할 만큼 수족관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어망에 한 사발 정도 잡은 낚시꾼은 점심참에 잠깐 나와 잡았다며 모래무지찜으로 참을 준비할 것이라고 한다.
  강둑을 따라 돌아들면 ‘문두대기’다. 문두대기에서 ‘북창고개’로 올라서면 ‘심배나무골’이 나온다. ‘심배나무’는 ‘돌배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이홍섭 시인은 ‘입 안에서 맴도는 이름 붙일 수 없는 풍경과 / 마당을 서성이며 / 먼 산과 다정스레 얘기를 나누던’ 사람을 떠올린다고 할 만큼 심배의 향과 맛을 노래하고 있다. 
  이맘때쯤 하얀 꽃을 피워 내뿜는 꽃향기와 늦가을 아랫목 구석에서 말랑말랑하고 누렇게 문내 나는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두촌은 아직도 심배나무 같은 향기가 남아 있다. 
  두촌을 뒤로하고 화촌면으로 들어섰다.
  강물은 ‘가막소’를 휘돌아 ‘두벙소’로 흐른다. 두벙소 아래는 주음치의 생명줄인 다리가 놓여있다. 
  주음치(酒飮峙)는 ‘수름재’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수름재’는 원래 ‘설음재’였다. 옛날 새색시가 고개를 넘어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 숲이 우거지고 길도 없는 험한 고개를 넘어오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한없이 서럽게 울었다하여 ‘설음재’라 붙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지명을 정리하면서 ‘주음치’가 되었는데 새색시의 한이 친정아버지의 서러움으로 바뀌어 술을 먹고 울면서 넘었다는 이야기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주음치’는 ‘춤새’와 ‘갈번지’, ‘밤나무골’, ‘삼막골’, ‘중간말’, ‘부목골’, ‘동수골’을 합쳐 부르는 지명이다. ‘북창고개’와 ‘뒷버덩’, ‘고업’은 ‘춤새’의 소지명이다.
  ‘춤새’는 ‘추임새’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뒷산을 에두른 산의 형상이 봉황이 춤을 추는 듯하다 하여 ‘무봉말’, ‘무봉촌’, ‘춤새’라고 부른다. 
  북창고개를 올라서면 둔덕을 이루고 있는 ‘뒷버덩’이 나오고,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서면 삼거리를 이루는 ‘고업’이다. 예전에는 지대가 높아 고업이라 하였지만 지금은 평지를 이룬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은 ‘설음재길’이고 오른쪽 길은 ‘동수골’을 지나 다리를 건너 ‘부목골’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북창으로 넘나 다녔지만 지금은 ‘말고개’에서 ‘부목골’로 빠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와 다리를 건너 들어오게 된다.
  ‘부목골’에는 76사단이 자리하고 있고 ‘말고개 육탄용사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동수골’이다. 마을 경로당이 있고 춤새로 넘는 둔덕에는 ‘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큰동수골’, ‘작은동수골’에서 물이 흘러들고 예전에는 보를 막아 물을 끌어왔다고 한다.
  ‘동수골’에서 ‘갈번지’로 넘어가는 고개에는 서낭당이 있었다. 아름드리 엄나무(음나무)와 소나무가 서있었는데 엄나무는 고사하고 소나무만 남아있다.
  ‘갈번지’는 원래 ‘질번지’였다고 한다. 진흙인데다가 샘이 나서 땅이 번지르르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제 때 ‘갈보’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갈번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길을 따라 강둑으로 내려오면 ‘점말나들이’다. ‘점말’은 ‘말고개’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잔미’ 끝자락의 아랫마을이다. 100여년 전 이곳으로 귀양살이 온 사람들이 옹기점을 하던 곳으로 ‘옹깃말’, ‘점말’이라고 한다.
  이곳을 ‘점말나들이’라고 한데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점말나들이에서 ‘문바우골’로 이어진다. 산 양편에 문처럼 우뚝 선 바위가 있어 ‘문바우골’이라 하였지만 광산개발로 폭파하여 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문바우골’로 천렵을 가기도 했다. 물도 좋고 가재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문바위 안쪽으로 펼쳐진 계곡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마음에만 두고 있어 더 아쉬워하는 걸까?
  문바위골 어귀를 지나 ‘누치소’로 이어지고 ‘독밭골’, ‘버드나무골’을 지나면 ‘대평뜰’이다. 누치소의 물살이 예사롭지 않다. 
  발길을 돌려 강으로 내려가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달뿌리가 무성하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 물살이 세차다. ‘물레소’와 ‘진소’에서 물이 휘감긴다. 다리 위쪽 ‘두멍소’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늘 지나다니면서 보아도 낚시꾼들이 있다. 낮에는 준치나 누치, 모래무지를 잡고 밤을 기다려 쏘가리를 잡는다고 한다.
  다리를 지나면 ‘새벗뜰’이다. 새벗뜰에서 ‘대평보’를 따라 ‘가막소’까지 올라간다. ‘가막소’는 물에 빠지면 나올 수 없는 감옥 같다 하여 붙여졌다. 물의 감옥 문이 열렸다 닫힌다. 마음이 서늘하다.
  강 건너 부대 아래 자리 잡은 전원주택이 참 아름답다.
  동수골-망대를 지나 ‘춤새’로 들어서서 ‘술음재’ 길로 접어들면 ‘무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백락사’가 있다.    
  백락사는 오랜 된 절이 아니다. 그러나 즐거움이 가득한 사찰이다. 
  즐거움의 근원은 마음의 여유이며 나눔이다. 백락(百樂)의 근원이 일락(一樂)에 있다는 깨우침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원한 화두이자 수행정진의 초석이라 느껴진다.
  봄은 할 일이 많아 행복하고, 오늘 심는 나무는 십년 후의 풍경을 꿈꿀 수 있어 즐겁다.  
  백락사에서 펼치는 ‘일락전(一樂展)’ 설치미술전시회는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운 전시회다. 환경보존과 자연보호를 주제로 매년 절 안팎에 작품들이 펼쳐진다. 또한 산사음악회를 비롯한 많은 문화행사들은 오감을 통하여 만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즐거움이다.
  종교라는 근엄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자연과 자연의 삶을 이어주는 생명과 인연을 깨닫는 일이 즐거움의 일락이 아닐까?
  백락사 성민스님과 차를 나누며 자연과 생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 속에 담긴 즐거움은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음재 길을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오지체험이다. 백락사 뒤편의 ‘무레이’를 지나면서 생각에 잠긴다.

  집도 없고 지나는 차도 별로 없다.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만 있다.
  그게 삶이리라.
  그 한 순간이 극한이리라.

  길가에 자라난 시금(수영)이나 찔레순을 꺾어 먹으며, 또 미나리싹이나 잔대 싹을 꺾어 먹으며 그 길을 간다. 산골짜기 다람쥐가 내쳐 달려가고 멧비둘기가 산을 건너간다. 하늘이 길처럼 열려있다. 벽(碧)이다.   
  몇년 전 ‘주음치 지역골’에 한국산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사가 났을 정도로 산골속의 섬이다. 백락사부터 술음재 어귀까지는 한적하다. 한쪽으로는 높은 산이 한 옆으로는 ‘밤나무골’과 ‘되난이’로부터 흘러오는 개울물이 녹음이 깊어가는 숲 사이로 흘러갈 뿐이다. 고추나무가 하얀 꽃향기를 내뿜고 들꽃이 피어 마음을 환하게 한다. 먼 산 뻐꾸기 울음소리가 산협(山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머드렁골’, ‘까투리밴골’, ‘납산골’을 지나면 ‘지역골’이다. 큼직큼직한 바윗돌 사이로 물이 흘러내린다. 참나무 숲 사이로 골 깊이 이어지는 길이 있다. 들어서니 서늘하다. 갈잎에 맺혔던 이슬이 비처럼 내린다. 작은 폭포주변에 안개가 서려있고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나올 것 같다.
  굽이를 돌아 ‘쇠떨어지기’, ‘뱅뱅이골’을 지나고 ‘나막골’, ‘마니골’을 지나면서 인가가 보인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율촌분교장(폐교)’의 교문이 서있다. 
  술음재의 ‘밤나무골’과 ‘중간말’, ‘삼막골’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지만 지금은 ‘주음치리 친환경 지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체험관과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매년 서울 ‘휘경여고’에서는 농촌체험 및 봉사활동을 이곳에 와서 펼친다.
  특히 ‘한살림 생명운동’을 펼치는 이 마을을 중심으로 올해는 단오장터를 준비 중이다. 
  ‘한살림’은 ‘모든 생명을 함께 살려낸다’는 뜻으로 생명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모든 생명이 한집 살림하듯 더불어 살자는 생명살림 공동체 운동이다. 안전하게 먹을거리와 자연생태계가 조화를 이루는 농법으로 생산하여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일을 시작으로 친환경-유기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삼(麻)이 잘 자란다는 ‘삼막골’과 ‘질골’, ‘웃뭇골’, ‘낼골’, 오르내리기가 가파르다는 ‘되난이’, ‘밤나무골’에서 가꾸는 농산물을 직접 사고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악, 줄다리기, 씨름, 풍년제 등 단오풍경과 다양한 자연 생태체험마당을 연다고 한다. 또한 설움 깊은 ‘설음재’ 옛 길 걷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을에서는 ‘술음재’를 ‘앞고개’라 부른다. ‘앞고개’를 넘으면 ‘조가터’가 나온다. 고갯마루에는 ‘옻나무 샘’이 있다. 산속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에 ‘옻’이 오르면 고생이 심했다. 따라서 이곳저곳의 샘을 찾아 마시고 목욕을 하였는데 효험이 있으면 ‘옻샘’ 혹은 ‘옻물약수’로 알려졌다. 옻샘은 이 고개를 넘나드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고, 장에 갔던 어머니를 기다리던 곳이 되기도 했다. 버스가 넘어 다니면서 걸음이 뜸해졌고, 춤새와 길이 연결되면서 고갯길은 설화속의 길이 되었다. 그래도 약물의 효험은 대단하여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뒷골’을 지나 올라가면 ‘낼골’이다. 골막에서 고개를 넘어 ‘화상대’, ‘연못골’, ‘내골’로 이어진다. ‘되난이’ 길은 가파르지만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전원주택지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고개를 넘어 ‘장평’으로 가기도 했다.
  ‘밤나무골’로 오르는 길은 한국적 선(線)이 남아있는 곳이다. ‘홍천 큰집농원’의 된장항아리들과 계단식 다랑구지 논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논두렁과 연못 그리고 손으로 모를 심으며 모 밥을 먹는 풍경만으로도 흐뭇하고 아름답다.
  특히 황수아 영화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웰컴투 동막골의 여배우 강혜정과 연기파 배우 박희순이 출연한 이 영화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라는 깨달음을 주제로 상처받은 영혼들의 자기치유기를 그린 작품이다.
  마을입구에 테마여행 이정표를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음치의 풍경이 홍천의 새로운 테마여행지로서 탈바꿈하길 기대하며 부목골로 내려왔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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