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유동’에서 ‘용소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을 한가운데 ‘서낭고개’를 지나 ‘갈밭구미’ 아래쪽 내리막이다. 계곡에 이르러 ‘개암평(갬벌)’과 ‘쇠나들이’로 갈라진다.
전인미답의 계곡을 따라 내려온 물과 길이 다시 만난다. 오른쪽으로 돌아 다리를 건너면 ‘개암평(갬벌)’이다. ‘평’이란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좀 너른 둔덕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개암평’에는 평지가 없다. ‘쉰재’로 넘는 ‘쉰재골’과 ‘회골’, ‘서낭골’이 굵은 골격을 들어낸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쇠나들이’ 길이다. ‘설통바위’를 지나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반석 위로 다문다문 서있는 ‘수구막이(수구메기)’다. 비포장도로가 맘에 든다.
수구막이 건너편으로 너른 둔덕은 소나무 숲이다. 아마 ‘개암평’의 ‘평’자가 여기서 비롯된 듯하다.
길과 함께 가는 계곡은 고적하고 청안하다. 물은 너래 반석 위를 흐르다가 여울을 이루다가 또 폭포를 이루며 ‘쇠나들이’까지 이어진다.
쇠나들이는 군유동의 끄트머리다. 그나마 좀 너른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물이 휘돌아 흐른다. 평지에는 소들이 잘 먹는 풀들이 무성하여 ‘군유동(군넘이)’에서는 소를 몰고 이곳으로 나들이 왔을 것이다. ‘쇠나들이’에는 화전을 떠올리게 하는 집이 있다.
‘백우산’을 올랐다가 ‘군유동’으로 내려온 등산객들은 용소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이집에 들러 물을 마시며 쉬었다 간다. ‘쇠나들이’ 집 주인은 이곳 토박이라 용소계곡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관광안내자이기도 하다.
건너편으로는 산비탈에 서까래로 지은 움막이 있다. 산촌에서만 즐길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 한여름에도 모기가 없을 만큼 서늘하며 물과 바위가 이루어내는 크고 작은 폭포는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물놀이다.
‘쇠나들이’ 집과 외양간 사이를 지나 계곡을 바라보며 산길을 따라 나서도 좋다. 그러나 이왕이면 돌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트래킹을 권하고 싶다.
‘금산아터’는 바로 ‘쇠나들이’ 건너편 양지바른 밭이다. 예전에는 집이 있었다고 한다. ‘금산아터’ 건너편으로 보이는 골짜기는 백우산과 매봉사이로 이어지는 ‘금광굴’이다.
‘너래소’에 이르기까지 계곡에는 집채만한 바윗돌이 우뚝우뚝 물길을 막아선다. 그러면 물은 바위를 안고 돌아 흐른다. 내설악에 버금가는 풍경이다. 너래바위가 계곡의 바닥을 이루고 물은 비단을 풀어 놓은 듯 흘러내린다. 산 밑으로 이어지는 그늘진 바위에는 이끼가 푸른 물빛에 더한다.
물소리도 바람도 잦아든다. ‘작은너래소’다. 물이 씻어 내린 바위만으로도 감탄사가 나온다. 또한 물살이 바위에 남긴 흔적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작은너래소’를 지나면 비로소 ‘큰너래소’다.
계곡을 가로지른 너래 반석 위로 물은 가슴을 쫙 펴고 하얗게 가쁜가쁜 뛰어 내린다. 한여름에는 옥류와 함께 바위 위로 미끄러지는 미끄럼틀이다.
얼마나 물이 흘러내렸으면 살결처럼 보드라울까?
‘너래소’를 바라보다가 산위를 쳐다보면 아기를 잉태한 듯 배를 불쑥 내민 바위가 햇살을 받고 서 있다.
‘너래소’를 지나 ‘망밭’까지 이어지는 길옆으로는 사람이 살던 흔적들을 만난다. 밭이었고 논이었고 또 한가족이 살을 맞대고 살았던 집터였을 돌무더기가 버드나무숲 속에 남아있다.
특히 ‘망밭’은 산죽(조리대)의 군락지이다. 버드나무 숲밑에서 싱그러움을 더한다. 이곳은 ‘군유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려고 마의태자는 망을 세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망밭’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논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인데 버드나무가 숲을 이룬 버덩은 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모내기를 하고 벼 타작을 하여 ‘절터’ 방앗간까지 지고와 방아를 찌었다고 한다.
‘망밭’을 지나면서 깎아지른 바위아래를 지난다. 산을 이룬 바위, 바로 ‘천상바위’다. 천상바위를 지나 ‘사슴이고개’를 넘어 ‘절터’로 들어선다. 버드나무 숲을 이룬 절터는 곡식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린 흔적이 남아있다. 돌담을 쌓아 개간한 다랑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절터에는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괘석리 삼층석탑’이 서있고, 주변에 폐가와 전신주와 부서진 변압기, 방앗간에서 쓰였던 물건들로 보이는 부품들이 벌겋게 녹슨 채 버려져 있다.
홍천군 문화재 자료 12호로 지정되어 있는 ‘괘석리 삼층석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만한 돌로 되어있고 그 위는 1층 지붕돌과 2층 몸돌,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 3층 지붕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 받침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두꺼운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고려때 수타사(壽陀寺)에서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며, 관(官)에서 탑을 옮기려 하다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막는 바람에 옮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석탑은 원래 지금의 위치 앞쪽 논 가운데 흩어져 있었다.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논이었는데 농사짓는데 불편함을 주어 지금의 자리로 옮기며 다시 쌓아놓은 것이다.
‘망밭’부터 ‘절터’까지 일구었던 논밭은 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농사짓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계곡을 따라 계단식으로 일군 크고 작은 다랑구지 논과 밭은 넓었다. 가을이면 거두어들인 곡식을 모아 이곳 ‘절터’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었다.
방앗간은 허물어진 집 앞쪽에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모터를 돌려 방아를 돌렸다.
삼층석탑 앞쪽으로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석산은 ‘딴봉’이다. 마을에서는 ‘딴봉고개’를 넘어 불공을 드리러 오곤 했는데. 고개를 오를 때 땀을 한번은 다부지게 쏟아야 넘는다하여 ‘땀봉고개’라 부른다.
지금 절터는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버드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왼쪽으로 바위들이 흘러내린 골짜기를 만난다. ‘연재기골’이다. 어귀에 빈집이 남아있다. 다락과 부엌, 김치곽, 툇마루, 곳간, 시렁, 닭장, 외양간 등 산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 자료로 손색이 없다.
‘연재기골’을 따라 올라가면 ‘가령폭포’에 버금가는 30m 높이의 폭포를 볼 수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 찾아 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연재기골을 지나 내려오다가 ‘천상바위’처럼 깎아지른 바위봉우리는 ‘굴아우’다. 봉우리를 이룬 바위에는 굴이 아홉이나 된다고 하는데 굴은 보지 못했다. 다만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얼어붙어 얼음 계단을 이루고 있다.
‘굴아우’와 이어지는 봉우리가 계곡에 닿아 소를 이룬다. 구비를 돌면 ‘수태(수타동)’다. ‘수태’에는 멋들어진 소나무가 있다. 삼백년은 넘었음직한 소나무는 몸을 비틀어 수관을 밀어 올렸다. 수관의 푸른 그림자가 너래반석을 덮는다. 솔향기와 바람소리와 물소리와 옥빛의 물결이 바위사이로 흘러간다. 자연 나그네의 쉼터다.
소나무 아래서 다시 일어나 내려오다 보면 ‘큰보’ 어귀가 보인다. 날짜와 이름까지 선명하다. 이 봇물은 산 밑을 돌아 논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이 밭으로 바뀌면서 봇도랑은 흔적만 남아있다. 봇둑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서로 등을 기댄 듯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서있다.
소나무 아래는 바위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소를 이룬다. 이정도의 소는 용소계곡에는 많다. 다 따진다면 정말 백담(百潭)을 이룬다.
용소계곡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간직하라는 듯 계곡은 잔잔한 물소리를 남기며 흘러간다. 갈대와 억새, 달뿌리가 용소계곡의 풍경을 더욱 고요하고 아늑하게 만든다.
버들가지에 날아든 벌이 한창 바쁘다. 겨울을 무사히 넘긴 뿔나비가 나불나불 날아간다.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양지바른 산기슭에서는 생강나무(개동백나무)가 도톰하니 꽃망울을 부풀린다. 금세 터질듯하다.
‘수태’에는 지금 두 가구가 살고 있다. 빈집과 짓다만 조립식건물, 컨테이너가 놓여 있을 뿐 아무도 살지 않는다.
밭에다 두엄을 내고 있다. 이 계곡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들고 있다. 시간이 흐를 것 같지 않은 이곳에서는 자연처럼 묻혀 살면서 짐승의 시간 감각을 느끼는지 모른다.
다시 다리를 건넌다. 다리에서 바라보니 바위가 예사롭지 않다. 다시 돌아 올라가 그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니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용소간’을 둘러보라고 한다.
‘용소간’은 ‘돌고개(수태와 경수골을 잇는 고개)’ 아래 절벽을 이루는 산줄기를 따라 1㎞쯤 이어진다. ‘용소목이’라고도 하는 이곳의 경관을 두고 용소계곡이란 말이 붙었다고 한다.
암벽을 이룬 능선과 바위를 감고 도는 물줄기,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용소간의 전부이다.

용을 보지 못한 나는
용소계곡을 흘러와
용소간에 이르러 우선 귀를 연다

물이 바위에 어떻게 스미는지
물결에 바위는 무슨 색의 꽃을 피우는지
귀를 씻고 본다

듣지 못해 본다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바위나 물이나 밑둥이 썩은 팥배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귀로 볼 수 없다면
눈으로도 보지 못할 것이다
흘러가는 것 말고
단단하게 뭉쳐있는 것들 말고

그 속에 스미는 햇빛과
햇빛을 밀고 일어서는 이끼의 촉수에 귀를 기울인다

바위들은 어떤 음모를 꿈꿀까
하늘이나 나무나 구름이 보여준 것들을 밀어내고
꿈틀꿈틀 물속 모래밭을 걸어가는
개구리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바위 밑에서 까만 눈을 뜨고 잠을 자는
깔딱메기의 코고는 소리를 듣는다
바위 너의 가슴에 귀를 댄다

그래도 안 보이면 눈을 떠라
용을 삼킨 바위들 먹먹하도록 볼 일이다

- 용소계곡에서 -

귀로 들어라. 그리고 마음을 열어라. 마음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눈을 떠라. 눈앞에 펼쳐지는 바위를 두발로 온몸으로 기어오르고 내리면서 가라. 물처럼 흘러가라.
작은용소와 용소간 그리고 용가마로 이어지는 바위너설, 파릇하니 돋아나는 바위 이끼와 하늘을 담은 옥빛의 물줄기, 물때 하나 끼지 않은 맑은 물은 홍천7경 용소계곡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홍천7경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촛대바위와 또랑소, 용소를 이루는 계곡과 너래소를 이루는 계곡, 그리고 용소간이다.
그리고 용소계곡은 ‘쟁이울(장여울)’에서 숨을 고르고 경수골로 흘러든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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