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생명의 나눔이다. 생명을 키워내는 어머니이다.
경칩(驚蟄)을 지나면서 대지를 흔드는 울림이 시작되었다. 고드름 끝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 작은 물방울이 얼어붙은 대지를 깨운다.
언 땅이 풀리고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의 눈들이 깜빡거린다.

용소계곡.
홍천의 7경이다. 산과 계곡이 물과 함께 어우러져 만상(萬象)을 이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비경을 담고 있는 명소다.
아직은 바람이 차고 계곡에는 얼음이 남아있다. 양지 바른 산기슭이나 밭둑에서는 쑥이며 씀바귀를 캐는 가족들의 나들이 모습도 보인다.
계곡의 강가에는 갈대가 바람에 마른 대를 흔든다. 저들은 저 몸짓으로 겨우내 흔들렸으리라. 새순이 밀고 올라오기까지 이 땅에서 펼치는 바람의 춤사위를 맘껏 풀어냈으리라. 그리고 아무 미련 없이 물러날 것이다.
갈대와 더불어 자리를 잡은 버드나무 숲은 몸속에 푸른 피돌기를 하듯 푸른빛이 감돈다. 가지마다 버들강아지가 눈을 뜬다. 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시간의 전령사이다. 햇살이 희롱하듯 솜털 위에서 반짝인다. 자세히 보면 노란빛과 붉은빛, 흰빛의 스펙트럼을 내뿜는다.

털끝마다 독기를 문 버러지일지라도
마음을 열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마음속에 넣고 불러봐라
눈도 채 뜨지 못한 새끼처럼
햇살의 간지럼처럼
꽃이라는 이름으로 생생히 살아나는
호랑버드나무 꽃
생명의 사서함을 열어라
거기
거울 같은 봄이 있다

- 호랑버드나무 꽃 -

길을 나서면 모두가 시인이다. 아니 배우이다. 아니 음악가이다. 아니다.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연출가이다.
세상에 존재의 모든 생명에게 부여하고 싶은 말이다. 삶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며 생명을 키워온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삶의 충분조건을 나는 자연에서 찾는다. 그래서 홀로 떠나는 길을 나는 즐긴다. 이런 길은 길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도 나를 받아준다. 바위가 길을 막으면 나무가 가지를 내밀어 나를 끌어 올리고, 물이 길을 막으면 돌이 떠올라 자신의 등을 내줄 것이다.
용소계곡을 이런 마음으로 찾았다.
용소계곡은 ‘천현리 경수마을’에서 시작해도 좋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자신을 한 마리 연어처럼 자연으로 이끌 것이다.
또 ‘대명어터’를 지나 ‘달음재’를 넘거나 ‘내촌면 도관리’를 지나 ‘가족이고개’를 넘어 ‘너벙바위’에서 시작해도 좋다. 물이 흘러드는 괘석리의 계곡을 둘러보며 물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기만 하면 눈앞에 용소계곡의 모든 것을 펼쳐놓을 것이다.

나는 ‘대명어터’를 지나 ‘달음재’를 넘어 ‘너벙바위’에서 계곡으로 들어섰다.
‘광암리 자그로마을’ 공원에 차를 세우고 ‘윗괘석리’의 물줄기와 ‘느와터’의 물줄기가 만나는 ‘너벙바위’로 올라갔다. 돌배나무길이다. 상큼한 돌배꽃향기가 묻어날 것 같은 길은 비포장도로다. 개울 건너 산위에 ‘선바위(독바위)’가 푸른 하늘과 닿아있다.
다리건너 산 아래 협성분교가 잣나무 숲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다리 위쪽으로는 펜션이 자리 잡고 있고 뒤쪽으로 맞닿은 계곡은 바위 위로 흐르는 물소리가 눈뜬 버들강아지를 흔들며 다가온다. ‘고향산(관향산)’은 바위 틈새마다 소나무를 품은 푸른 절벽을 내보인다.
한때 방앗간이었던 펜션 앞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서면 창고와 출입통제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이 ‘너벙바위’다. 너벙바위는 너른 버덩이다. ‘느와터’로 오르는 버덩 한 가운데 ‘너벙바위’가 있다. 이곳에 올라 물처럼 떠나고 싶었던 사람들의 가난을 더듬어 보다가 개울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떠나자 버덩에는 버드나무와 온갖 풀들이 깃들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물레방아가 있고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개울로 들어서면 기억이나 하라는 듯 물소리가 귓속으로 솔아든다.

흐르는 돌은 언제 멈추는가?
하얗게 다듬어진 돌들이 개울을 이룬다. 계곡이면서도 돌들의 얼굴이 부드럽다. 둥글둥글한 세상을 흘러온 듯 날을 세우지 않는다. 몸속에 칼날을 감추었으면서도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야하는 진정한 순리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물이 바위의 구비를 돌아 흐르면서 소(沼)를 이룬다. 큰 바위가 물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다. 물은 그 사이로 흐른다. 발이 미끄러지며 돌을 흔들자 놀란 듯 산버드쟁이(버들치)가 뛰쳐나왔다가 다시 바위 밑으로 들어간다.
‘연애바위’다. 잔잔하게 흐르던 물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면서 맑은 음표를 만든다. 물푸레나무와 팥배나무, 물박달나무, 단풍나무들이 엿보지 못하게 차양을 친다. 여울을 이루며 너래바위를 따라 흘러내리며 물이 뒤섞인다.
옛 다리를 지나 내려오면 두촌면 괘석리와 내촌면 광암리를 잇는 다리 아래다. 물이 속도를 내다가 ‘물구비’를 지나면서 작은 소를 이룬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소 등 같은 바위를 타고 물은 흘러내린다.
용소계곡은 ‘군유동’으로 이어지는 길과 동행한다. ‘물구비’ 가게 앞에서 광암리 ‘다락터’와 ‘샛골’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용소계곡으로 흘러들고, 조금 아래쪽으로 괘석리 ‘큰골’과 ‘탑골’에서 내려온 개울이 ‘탑거리’를 지나 ‘목우너미’로 휘돌아 용소계곡으로 흘러든다. 합수머리를 이루는 이곳부터 계곡에는 큰 물줄기가 흘러간다.
용소계곡은 두촌과 내촌의 경계이다. 길은 ‘군유동’으로 이어지지만 계곡을 건너면 ‘괘석리’다. 군유동 길에서 괘석리로 건너는 다리는 둘이다. ‘용수동 다리’와 ‘개암평 다리’다.
첫번째 계곡의 다리를 건너 ‘용수동’으로 들어선다. ‘영수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갈미봉’의 남쪽 비탈에 마을을 이룬다. 용씨가 일가를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영수대’ 위쪽은 ‘안덕’이다. 갈미봉 턱밑까지 비탈을 이루는 ‘안덕’은 골짜기를 이루었는데 그리 넓지는 않다. ‘갈미봉’과 마주하는 산은 ‘고석산’이다. 높을 高 돌 石. 한 마리의 공룡 같다.
고석산과 갈미봉 사이에는 ‘오십고개(쉰재)’가 있다.
‘오십고개’는 ‘대명어터’에 터를 잡은 마의태자가 오십명의 군사를 두고 고갯마루에서 지키게 했다는데서 생긴 지명이다. 한국전쟁 때는 ‘쉰재’는 있어도 ‘오십고개’는 없다고 하여 고초를 겪었던 고개다.
‘오십고개’를 넘으면 ‘정골’이다. 그러나 ‘영수대’에서는 산등성이를 두개나 넘어야 하기 때문에 주로 ‘개암평(갬벌)’에서 넘어 다녔다.
‘영수대’에서 비탈을 깎아 낸 길을 따라 ‘개암평’ 까지 이어진다. 예전에는 군유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용수동 다리 아래는 ‘구유소’다. 다리를 놓으면서 구유를 이루었던 바위는 많이 깨지고 메워졌지만 형태는 남아있다.
‘구유소’부터 ‘군유동’을 돌아 ‘개암평 다리’까지 용소계곡의 백미다. 물과 바위가 어우러진 비경을 만난다.
계곡 트래킹을 마음먹었다면 용수동 다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백암산의 산기슭과 고석산의 산기슭이 맞닿을 듯 좁은 협곡을 이룬다. 바위사이로 물길을 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단애를 이루는 계곡은 단풍나무 신나무 등의 활엽수와 철쭉이 계절을 반긴다. 특히 철쭉꽃이 만개하는 봄과 단풍이 붉게 익어가는 가을은 청자 빛의 물결과 붉은 꽃물로 옥류의 물줄기가 붉고 푸르다. 또한 여름의 녹음은 푸른 그늘을 드리우며 여름의 정취에 취하게 한다.
용소계곡의 멋은 겨울에 만끽할 수 있다. 계곡에 뒹구는 돌과 바위는 하얀 눈으로 뒤덮여 고요와 신비감을 더 하며, 푸른얼음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용소계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특히 ‘촛대바위’와 ‘또랑소’, ‘용소’를 잇는 얼음길과 바위를 넘나들며 즐기는 트래킹은 오직 홍천의 겨울 용소계곡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계곡여행이다.
물은 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굽이쳐오는 용을 삼킨 바위들이 꿈틀대며 너를 맞이할 것이다. 용은 아직도 살아서 바위사이를 뛰어내릴 것이다.
길을 따라 ‘군유동(군넘이)’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 자체가 산림욕이다. 산 구비 구비 이어지는 길은 현재를 떠나 먼 과거의 마을로 이끌고 가는 듯 깊은 감동을 줄 것이다. 산 아래 깎아지른 협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는 또 다른 교향곡이다. 그 감동은 ‘군유동 서낭고개’를 넘을 때까지 가슴에 잔잔한 파문으로 남는다.
그때 군유동이 나타난다.
무릉도원인 듯 눈을 의심케 하지만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이다.
‘군유동’은 ‘광암리’에서도 10리나 멀리 떨어진 마을이다. ‘군넘이’라고 하는 이 마을은 뒤로는 ‘백우산’이, 앞으로는 ‘용소계곡’이 흐르고, 하늘과 맞닿은 고석등이 건너편으로 길게 이어진다. ‘백우산’에서 이어지는 골짜기는 ‘배골’과 ‘미약골’이 있다. 백우산에서 이어지는 ‘매봉’과 ‘도롱봉’은 마을을 더욱 아늑하게 감싼다.
군유동은 고개를 넘지 않으면 용소계곡을 따라 오르내려야 한다. 백우산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큰고개’를 넘어 ‘도관리 우렁골’로 이어지고, 백우산과 매봉 사이로 넘는 ‘작은고개(군넘이고개)’는 ‘도관리 큰골’로 이어진다. 도롱봉으로 오르는 둔덕은 ‘갈밭구미’다.
군유동은 마의태자가 머물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건에게 쫓기면서도 신라왕조의 국권회복을 꿈꾸는 마의태자는 횡성 ‘어답산’을 넘어 ‘홍천 동면 지왕동’을 지나 ‘왕터’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공작산’을 넘어 ‘조가터’를 지나 ‘도관리 군넘이고개’를 넘어 ‘군유동’에 머문다.
그동안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서 ‘대명어터’에 자리를 잡고 ‘마답터’에서 말을 기르며 ‘양병소’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킨다. ‘오십고개(쉰재)’ 마루에는 군사들을 배치하고 ‘망밭’에서 망을 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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