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대’에서 ‘어은동’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다. 간다면 못갈 게 없지만 좀 고생이 따른다. 강을 건너거나 산 밑을 돌아가야 한다. 한때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던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나무들이 길에 들어섰다. 이 길은 자연으로 가는 길이다.
길이란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해 주는 통로다. 두개 이상의 길이 합쳐져 정리된 길은 도로라고 부른다. 또한 어떤 상태로 가는 과정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다시 ‘삼선대’에서 ‘깨뜰’을 거쳐 다리를 건너 ‘용포’를 지나 ‘오형제고개’를 오른다. 오형제고개는 봉우리가 다섯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 길은 다섯 봉우리를 굽이굽이 돌았다. 지금은 그 봉우리들을 밀어내고 길을 냈다. 걸어서 넘기엔 가파르다.
모든 사람들은 길을 걷는다. 자신의 길이 분명하다. 그 길은 삶의 길이고 목적이고 꿈이다. 그 길엔 삶의 흔적이 주름살만큼 깊고 멀다. 그리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고개를 넘으면 ‘지장골’어귀를 지나 ‘살벼울’이다. 살벼울에는 대봉초등학교(폐교)가 있었다.
오형제 고갯마루에는 작은 공원이 서있다. 혹시 이 마을에 오형제가 살았던 건 아닐까하여 물어보았으나 굽이가 다섯인데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고갯마루에서 산속으로 난 길을 따라 ‘경신뜰(정신뜰, 경신평)’로 내려갔다.
경신뜰로 내려가는 골짜기는 ‘여우박골’과 ‘품목골’이다. 여우박골로 내려가면 집이 한 채 있고 길은 끊겨있다. 다시 돌아 나와 품목골을 따라 내려갔다. 강이 보이고 재활용 수집창고가 있다.
길은 산 밑을 돌아 강을 따라 올라간다. 구비에서 강 아래쪽으로 보면 산 아래 벼랑을 이룬 ‘귀미(구미)소’가 있다. 절벽이 햇살에 반짝인다. 강가의 달뿌리 숲과 조약돌, 벼랑의 소나무, 그리고 청정 물빛이 어울린다. 물이 휘감아 돌아흐르며 구멍을 이룬 듯이 파인 벼랑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마을로 들어서면 산 밑 양지바른 곳에 집들이 자리를 잡고 앞뜰에는 경신뜰이 펼쳐진다. 경신뜰을 적시는 물줄기는 ‘말구리소’ 아래의 ‘웃보’다.
경신뜰은 큰길에서 벗어난 조용한 마을이다. 그래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큰 강이 흐르고 강에는 ‘가목소’와 ‘농바우(잿간바위)’, ‘귀미소’, ‘말바위소’가 있다. 가목소를 이룬 물줄기가 ‘삽쟁이’ 어귀를 돌아 경신뜰과 어은동 사이를 천천히 흐르다가 귀미소를 이룬다.
말바위소는 귀미소 아래 강 한가운데 놓인 두 개의 바위다. 이 바위가 둘이 된 데는 웃지 못할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말바위의 원래 머리는 어은동 쪽을, 엉덩이는 경신뜰 쪽을 향하고 있던 한 덩어리의 바위였다. 그런 바위를 두고 어은동 마을 사람들은 말이 어은동에서 풀을 뜯어먹고 땅에 좋은 똥은 경신뜰에 싸기 때문에 경신뜰은 풍년이 들고 어은동은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하여 마을에서 회의를 열어 말바위를 부수자고 하여 한밤중에 바위를 깼다고 한다. 그 후 어은동도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어은동이다. 어은동은 산 밑인데다가 응달이다. 어은동으로 들어가자면 다리를 건너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따라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고 강 또한 자주 찾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물고기들이 은신해서 노는 개울이라 할 만큼 어은동이란 이름이 붙은 듯하다.
다리를 건너면 길은 갈라진다. 삽쟁이 쪽은 웃말이고 귀미소 쪽은 아랫말이다. 삽쟁이는 어은동에서 우물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돌아 ‘논골’로 올라가고, 오른쪽으로 돌아 ‘삽쟁이고개’를 넘어 ‘연못골’로 가던 길목이었다.
‘어은동골’은 골이 깊고 산 능선을 넘으면 연못골이다. 골짜기가 바로 강까지 닿아있다. 마을길은 강을 따라 ‘돌고개’ 쪽으로 이어진다. 돌고개를 넘으면 ‘옹돌’이다. 돌고개 못미처 아랫말에는 ‘무장골’이 있다.
어은동 뒷산은 연못골과 경계를 이룬다. 어느 골을 넘든지 연못골로 이어진다.
어은동 마을사람들은 돌고개를 넘어 이사를 가면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여 돌고개 넘기를 꺼렸다고 한다. 이야기인즉 물고기가 돌고개를 넘었다는 것은 밥상에 올랐다는 뜻이라며 돌고개를 넘어 대처로 나간 사람들 중 잘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돌고개마루에는 성황당이 있었고 강으로 이어져 내린 곳에는 ‘궁둥이소’가 있다.
고개를 돌아내려가면 ‘옹돌’이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옛날부터 옹돌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만 할 뿐 왜 옹돌인지는 모른다. 아마도 마을 어딘가에 옹이처럼 박힌 돌이나 바위가 있어서 그리 부르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름이 얼마나 예쁜가?
옹돌에 교회가 서있는 자리가 옛날 대봉초등학교 터였다. 그만큼 마을도 컸고 인가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화상대에서 이곳 학교로 건너다녔는데 다리가 놓이고 큰 길이 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 대봉초등학교(폐교)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은 살벼울이다. 귀미소부터 궁둥이소에 이르는 강가의 마을이다. 마을에서는 ‘살벼울’ 대신 ‘사탄동(沙灘洞)’이라 더 많이 부른다.
살벼울은 모래강변이다.
강바닥에 깔린 은빛 모래알이 물결에 여울져 이루는 물소리를 상상해 보라.
달빛 흐르는 밤이거나 반딧불이 깜빡이며 날아가는 여름날 저녁을 누군가와 손잡고 걷는다고 상상해 보라.
푸른 어둠을 배경으로 물소리와 달빛, 모래와 바람이 어우러지는 선율에 마음만 열어놓고 귀만 열어놓고 흐벅지게 그냥 취해라.
그러나 아쉽게도 살벼울 강가에서 돌들이 물을 내치는 여울물 소리에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화상대’에는 다리가 두 개 놓여있다. 하나는 경신뜰에서 어은동으로 건너는 다리이고 또 하나는 화상대에서 옹돌을 지나 ‘월부터’, ‘연못골’로 가는 다리다.
화상대에서 다리를 건너면 옹돌 둔덕이 나온다. 마을의 중심처럼 여겨지는 이곳은 네거리를 이룬다. 교회가 있고 큰 농장이 있다. 이정표에는 어은동과 연못골 두 갈래지만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월부터와 화상대, 어은동, 연못골로 갈라지는 길이다.
옹돌 앞강에는 ‘독바위’가 있다. 항아리를 닮은 바위가 아니라 독수리를 닮은 바위다. 다리를 건너 강둑으로 이어지는 끄트머리쯤에 자리한다.
나는 옹돌 네거리에서 ‘연못골’로 접어들었다. ‘월부터’다. 앞산의 모양이 달(月)과 같다하여 ‘월부터’ 혹은 ‘월정대’라 부른다. 월부터에서 보이는 앞산은 ‘봉대산(봉황산)’이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앞산을 바라보았지만 달과 닮은 모양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봉대산 한가운데 있는 ‘수리바위(궁뎅이바위)’가 달이 떠올라 비출 때 달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월부터 안쪽은 ‘덕거리’다. 오르막에는 얼음이 얼었었는지 모래가 깔려있다. ‘다름재’를 넘었다. 다름재는 고개 이름이자 마을 이름이다. 연못골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고개 밑에 쌓아올려 터를 이룬 마을이다. 고개가 품어 안은 듯 아늑하다. 고개는 길게 이어져 ‘절터께’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이루며 연못골로 이어진다.
암자가 있던 자리에는 누군가 집을 짓고 있다. 석양의 햇살이 곧게 들이비춘다. 고개를 넘자 짧은 겨울해가 노루꼬리만큼 산마루에 걸린다. 서둘러 연못골막치기까지 올라갔다.
연못골은 ‘웃연못골(상연지)’과 ‘아래연못골(하연지)’로 나뉜다. 연지분교가 들어섰던 ‘둔덕고개’에 올라서자 한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제법 규모가 큰 우사가 나온다. 우사는 집집마다 있고 많게는 오육십 마리에서 적게는 열댓 마리씩 기르고 있다.
웃연못골에 들어서면서 연못이 있을만한 자리부터 찾아보았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연못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서석과 장평의 경계에 우뚝 솟은 ‘촉새봉’의 능선이 ‘비선동’, ‘드렁봉’을 따라 이어지다가 웃연못골을 에두르며 골짜기를 이룬다. 산 이름은 없고 그냥 ‘604고지’라 한다. 전쟁터의 흔적이다.
골짜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연못처럼 고였을 법한 자리는 지금 다리가 놓여있는 그 언저리쯤이라고 귀뜸해준다. 그러나 연못터는 아닌듯하여 찾아보기로 했다.
개울은 비탈을 흘러내리는 탓에 물살이 세다. 개울 가장자리는 얼음이 얼었다. 어림짐작으로도 꽤 높은 지대까지 올라온듯하다. 산능선이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이 해발 450m는 넘는다고 한다.
개울을 따라 오르면 세개의 골짜기를 만난다. 먼저 ‘비사리골’이 문을 열어준다. 물은 별로인데 물이 흘렀던 자국이 깊이 패여 있다. 비만 오면 급류를 이루며 흘러내렸다는 증거다. 또 안으로 들어서는 골짜기는 숲이 우거져 있다. 예전에는 ‘비선동’으로 가는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어디가 길인지 분간이 안된다. 다만 그런 기억이 남아있는 마을사람들을 찾아보기로 하고 원골로 나와 다시 오른다.
두번째 골은 ‘수마지기골’이다. 산능선의 한가운데 높은 봉으로 이어지는 골이라 골이 깊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한계령이 보인다고 한다. 내촌에서 한계령이 얼마나 먼데 또 그 앞을 가로막은 산들이 얼마나 많은데 보인다고 할까? 그만큼 높다는 것인데 아마도 보인다는 고개는 ‘행치령’이 아닐까 싶다.
수마지기골 안쪽으로 ‘안말’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으로 보아 평지를 이룬 듯하다.
마지기란 말에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마지기란 논·밭의 면적을 나타내는 말로 두락(斗落)이라고도 하는데, 한 말의 씨를 뿌릴 만한 면적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마지기란 논을 부쳐 먹던 땅이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또 마지막 골을 이루는 골짜기는 ‘쉰마지기골’인데 분명 짚히는 데가 있다.
지금 웃연못골에 인가를 이루고 사는 지대는 평지가 아닌 비탈이다. 이곳에서 논을 부쳐 먹던 곳은 ‘된덕고개’ 마루를 이루는 둔덕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곳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은 물이 나거나 거센 바람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된덕고개 마루의 그 둔덕 높이로 이어지는 수마지기와 쉰마지기를 둘러보았다. 생각대로 다랑구지 논이라도 일굴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수마지기골과 쉰마지기골은 수렁의 늪지였다.
아무도 알 길이 없는 먼 시간 속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에 논을 일구고 그 논에 물을 대기위해 연못을 팠을 것이다. 그래서 귀한 쌀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을로 들어와 이곳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사는 어른들께 여쭈어보니 지금 임도가 나있는 그 아래쪽으로 논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 숲으로 돌아가 흔적도 찾기 어렵다.
웃연못골의 물줄기는 ‘쉰마지기골’에서 시작된다. 골이 깊은데다가 고개를 넘으면 서석 ‘수하리’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골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개울물은 ‘된덕고개’를 돌아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물은 산과 산이 맞닿은 좁은 수구막이를 따라 흐르다가 된덕고개 아래에서 된덕고개에서 흐르는 골짜기와 합쳐 ‘도롱소’를 이룬다. 도롱소는 연못골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폭포다.
비탈로 이어지는 밭에선 아직 베어내지 않은 옥수수대궁이 칼바람을 낸다. 도롱소를 지나 내려오면 ‘나근터’다. 나근터는 낡은터에서 나온 이름인데 ‘할매골(한맥골, 할미골)’과 ‘웃연못골’의 갈림길이다. 이곳에 아주 낡은 집이 있었다고 한다.
길은 뚝방을 내려가 개울을 건너 골짜기로 이어진다. ‘할매골’로 들어서면 왼편쪽으로 길게 들여다보이는 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가 ‘삼화광산’이 있던 ‘광산골’이다.
연못골에 사람들이 들어와 북적대던 시절은 삼화광산에서 금이 쏟아지던 때이다. 금이 얼마나 많이 나왔던지 큰비가 내리거나 장마가 지면 굴에서 캐낸 버럭더미(깨낸 바윗돌)에서 금을 주웠다고 한다. 최근에도 금맥을 찾아 탐색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안막은 ‘심목골(조룬)’로 이어지고 고개를 넘으면 ‘장평(화촌면)’이다.
‘할매골’은 ‘할미바위’에서 온 이름이다. ‘팔매바위’로도 불린다. 지금도 그 바위는 마을 한가운데 있다. 돌바위 위에 구멍이 있다. 올라가 보니 발자국처럼 움푹 파여있다. 예전에는 팔매(돌 같은 물건을 손에 쥐고 멀리 내던지는 짓)를 쳐서 이 구멍에 들어가면 재수가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 바위의 발자국은 요귀 할매가 천지창조를 하면서, 공작산에서 가리산을 가다 거리가 너무 멀어 이 바위를 딛고 갔다고 하는데 그때 생긴 발자국이라 한다. 여기에 고인 물을 사마귀에 바르면 사마귀가 없어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할미바위를 지나 ‘두미안고개’로 오르자 고갯마루 아래 별장인지 마가리인지 나무로 귀틀집처럼 지은 집 앞까지 시멘트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두미안고개는 ‘숫돌봉’과 ‘주저리봉’ 사이로 나있고 고개를 넘으면서 갈라진다. 숫돌봉쪽으로 따라가면 ‘장평’으로, 주저리봉 쪽으로가면 ‘술음재(주음치)’가 나온다.
술음재는 주음치다. 성산에서 ‘작은말고개’를 넘어 강 건너 마을이다. 그 마을 뒷산이 바로 연못골이라니! 이제야 내가 서있는 자리를 알겠다.
갑자기 배고픔을 느꼈다. 가게도 없고 더군다나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가서 찬밥이라도 먹자. 이맘때면 메주를 쑤고 청국장도 띄울 것이다. 그 맛이 이 계절의 멋이다.
무작정 경로당 옆에 있는 농가로 들어갔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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