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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홍천강 탐사기행을 떠나며 36 우렁골과 가래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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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2.17  09: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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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바람이 불고 눈발이 거세다.
도관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대서소에 들렸지만 문이 잠겨있다.
장거리에서 다리를 건너 당고개를 넘었다. 당고개 밑은 당벌이다. 지금은 중학교를 중심으로 한 일대를 말하지만 중학교가 들어선 버섯고지와 거주포 언덕 아래쪽 ‘안골(안고래)’을 아우르는 너른 버덩이다.
당벌뜰은 하도 넓어 물이 늘 모자랐다. 고심고심하다가 우렁골과 새목에서 흘러드는 물을 막아 수로를 만들었다. 그때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포왕저수지’다.
지금의 ‘동돌봉(동도리)’ 아래가 된다. 이 저수지에 방아삼치(큰 배)만한 물고기가 살았다 하여 ‘거주포(巨舟浦:거주개)’라 하고 또 ‘서곡대사(찬연스님)’가 돌비를 운반하고 배를 매어놓았던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마을사람들은 거주개라고 부른다.
안말에서 ‘거추포’와 ‘거스르미’로 갈라진다.
먼저 거스르미로 방향을 잡았다. 산을 넘어가는 길이 멀리 보인다. 거스르미를 오르다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화약고가 있던 ‘화약골’이다. 백우산과 두봉산을 중심으로 금광을 파던 시절 이곳에서 화약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 주막도 생기고 전기불도 밝혔다고 한다.
거스르미 고갯마루가 멀지않은 왼쪽 둔덕 밭 한가운데 석탑처럼 쌓아올린 바위가 제법 모양을 갖추고 서있다. 그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게 되면 ‘서곡대사의 무덤’이라고 하는 묘가 있다. 고개를 넘어가면 여창이이다. 테니스장이 있고 쌍계사로 가는 이정표가 서있다.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여창이와 도관동의 마을 풍경이 마음에 남는다 - 특히 가을날에 넘었던 도관동 하늘가에 어리는 석양의 황혼 빛과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여창이의 저녁 풍경은 아득한 시골의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여창이에서 이 고개를 가리키며 저기로가면 어디냐고 물었던 고개가 바로 거스르미고개였다.
도관동 사람들은 거스르미 고개를 넘어 ‘장구메기’-‘느릅나무골’과 ‘느라우골’-‘두봉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다녔다고 한다.
다시 발길을 돌려 거주포로 내려와 가족이고개로 향했다.
거주포로 올라서면 ‘동도리’이다. 동도리에서 개울 건너편으로 보이는 긴 밭은 망밭골이다. 망밭골을 넘으면 큰골이 나온다. 이 고개가 덕고개다.
‘동돌봉’은 마을회관이 있는 곳이다. 경로당에 들렀더니 어르신께서 나와 ‘저곳에서 장수가 태어났다’는 집터를 가리킨다. 지금은 삼밭으로 붙이고 있다. 장수가 태어났다고 하여 가보았더니 특별난 곳도 아니다. 개울 둑방일 뿐이다.
설화속의 장수는 매짓골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그건 설화일 뿐이며 이곳에서 장수가 태어났다고 거듭거듭 말을 한다.
장수의 집터에서 오른쪽으로 난 골은 ‘혼인골’인데 마을에서 서로 좋아하는 총각과 처녀가 그 골짜기로 도망가서 혼인을 올리고 살았다 한다. 남의 집 귀한 처자를 데리고 가 혼인을 올린 것이 무슨 죄일까마는 그래도 겁이났던지 망을 보았다는데 그곳이 건너편 망밭골이다.
거주포의 유래가 된 저수지는 동돌봉 아래 있었다. 이곳에 저수지는 ‘보’ 보다는 컸다. 그래서 ‘보’라는 말 대신 ‘포(浦)’, ‘포락(浦落)’이라는 이름을 붙인듯하다. 이 보는 새목골과 우렁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두었다.
장수가 죽자 용마가 울었다는 우렁골에 들어서면서 말울음소리 같은 물소리를 들었다. 용마의 울음소리일까? 눈발과 함께 내리치는 바람소리였다.
‘우렁골’은 백우산의 신선들이 자주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한다. 물을 실어 나르는 계곡에는 크고 작은 소(沼)와 담(潭)을 이룬다. 그 골짜기가 용마가 지나다니던 길이었을 것이다. 우렁골 안막에 용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바위도 개천에 있다. 바위투성이의 개천이 용마가 태어나면서 깨져 나온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백우산에서 난 용마는 이 골짜기 소와 담에 숨어살면서 장수의 성장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장수가 한밤중 이웃의 눈을 피해 무예를 연마하러 나섰던 그 길이 우렁골은 아닐까?
마을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쉴바위를 찾아보기로 했다. 쉴바위는 장수가 강변에 나가 칼싸움 훈련을 하다가 쉬었다고 하여 붙여진 바위다.
장수가 성장하기를 기다리던 용마는 장수의 죽음을 알고 천둥 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우렁골로 내려왔다. 주인 잃은 슬픔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결국 장수를 따라 용마 또한 ‘말구리소’에 몸을 던진다.
여기까지가 거주포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다. 분명한 것은 장수는 태어났고 용마도 태어났다. 그러나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찾아 나는 떠돌고 있다.
거주포에서 ‘가족이고개(광암리고개)’로 오르는 길 왼편쪽으로 우렁골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유지라는 안내판과 함께 차단막이 내려져 있다. 길을 막고 뭘 어쩌자는 것일까? 오로지 나만 사는 집과 땅만이 있을 뿐이다.
그 어귀에 있다는 쉴바위며 아들바위도 보이지 않는다. 전설도 설화도 장수도 용마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해 홍수에 떠내려갔거나 묻혔다고 한다.
용마가 자신의 삶의 흔적을 쓸고 간 것은 아닐까?
때마침 갑자기 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렸다.
눈이 내려 바위를 덮은 모습이 비단 이불을 깔아놓은 듯하다. 살짝 들추고 들어가 몸 좀 녹이고 싶다. 그 생각이 나의 발길을 돌려세운다.
올 들어 첫추위와 함께 찾아온 첫눈과의 조우는 아쉬웠지만 조금씩 어두워지는 길 위에 발자국을 남겨놓으며 내려왔다.
우렁골에서 나와 가족이고개(광암리고개)를 오른다. 백우산과 백암산 자락을 잇는 준령이다. 준령이 품은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라 굽이가 많고 가파르다. 길은 ‘새목골’을 따라 끝까지 오른다. 중턱에 오르면 반야사라는 절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다 왔구나 싶은데 대여섯 구비는 더 돌아야 한다.
고갯마루에는 장승과 석탑을 쌓아올린 작은 공원이 있다. 그 옆에 ‘자그로 마을’이란 안내판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자그로 마을’이란 ‘자연 그대로 친환경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광암리의 또다른 이름이다. 이곳은 눈이 내리면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돌아선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도관동을 내려다본다. 멀리 강은 마을과 마을을 품고 흘러가고 강 건너 산에 안긴 ‘가래울’과 ‘논골’이 보인다.
도관동 ‘모종촌’을 돌아 답풍리 다리를 건너면 가래울과 논골로 가는 작은 이정표가 서있다. 다리위에서 약승대(약세)쪽을 향하여 바라보면 강가에 핀 억새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모뎅이쪽은 산과 접해있지만 가래울 쪽은 물살이 실어 나른 모래둔덕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섶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 섶다리로 유명한 곳은 영월이지만 모종촌과 가래울을 잇는 섶다리도 한겨울의 볼거리였다.
우리나라에는 개울이나 강이 많아 다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리의 이름도 각각 다르다.
옛부터 줄을 매어 놓은 다리를 ‘출렁다리(구름다리)’라 했다. 다리 위를 걸을 때 흔들흔들, 출렁출렁 한다하여 그리 불렀다. 남면 용수리 용수초등학교 앞에 출렁다리가 놓여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돌다리’나 ‘징검다리’는 작은 개울에 돌을 놓아 건너던 다리이다. ‘두껍다리’도 있다. 골목의 도랑이나 시궁창에 걸쳐 놓은 작은 돌다리인데 놓인 돌이 두꺼비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름다리’도 있었다. 도로나 계곡 따위를 건너질러 공중에 걸쳐 놓은 다리로 공중에 구름처럼 걸쳐놓은 다리다.
‘널다리’도 있었는데 물걸리의 널나드리에 놓였던 다리가 널다리다.
‘섶다리’는 섶(소나무 생가지)을 엮어서 놓은 다리이다. 섶다리는 홍천 시내에서도 볼 수 있었다. 문화원 뒤쪽과 행화촌을 잇던 다리로 처음에는 섶다리로 놓았다가 판자로 엮어 놓았다.
그때의 그 다리를 ‘달강다리’라고 불렀던 적이 있다. 달밤에 다리를 건너면 물결에 반짝이는 달빛에서 달강달강 소리가 난다하여 지었는데 그때 지은 글이 있다.

물일 수만 있다면야
바람일 수만 있다면야

우리
아픔 없이 섞여서
하나 된다는 거
무슨 걱정이랴

밤새 시간을 밟고 가는 달을 본다

- 달강다리에서 -

섶다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다리다. 아름답거나 튼튼한 다리는 아니다. 가을에 놓았다가 장마가 지면 떠내려가는 다리다. 그래서 가래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비만 오면 학교에 가지 못했고 학교 왔다가도 비가 많이 내리면 일찍 집으로 가기도 했다. 그 다리가 놓여있던 곳이 ‘약세’아래다. 다리를 건너 ‘갯가’를 지나 ‘용바위’ 앞으로 하여 ‘가래울’로 들어선다.
가래울에서는 지금도 걸어서 약세보를 건너오는 사람들도 있다. 달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진 길은 잔잔하다. 달뿌리와 갈대의 차이점은 구분이 어렵지만 ‘달뿌리’는 습지나 냇가, 연못 등에서 자라는 화본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줄기가 땅위로 뻗으며 마디에서 다리처럼 뿌리가 나오고 ‘갈대’는 땅속줄기이며 민간에서는 갈대와 달뿌리 뿌리를 말려 차처럼 달여 마셨다. 중금속중독, 알콜중독, 숙취제거에 좋다고 한다. 갯가 숲의 정취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은 삶의 경지에 들어서야만 안다.
다리를 건너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응달떼소요, 가운데 길로 가면 논골이요, 왼쪽 고개를 넘으면 가래울이다. 가래울로 올라서자 강을 등지고 선 통나무펜션이 이색적이다.
‘가래울’로 넘는 고개가 좀 길다. ‘갈매울’이라는데 입안에서 갈매라는 말이 맴돌았다. 갈매울은 이곳에 갈매나무가 많다하여 생긴 마을이다. 갈매나무는 한자로 서리(鼠李)라고도 한다. 골짜기와 냇가에서 잘 자란다. 가지 끝에는 가시가 있다. 잎은 마주나고 끝이 뾰족하며 잎맥에 털이 있다. 잎 뒷면은 회녹색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한방에서 열매를 서리자(鼠李子)라 하고, 나무껍질과 뿌리를 각각 서리피, 서리근이라 하여 해열, 이뇨, 소종(消腫)에 쓰인다. 열매와 나무 껍질은 황색염료로 쓰였다.
또한 ‘울’ 자가 들어가는 마을은 우물과 관계가 있는듯한데 마을에가서 물어보니 큰 갈매나무아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갈매울’을 넘자 ‘큰오리울’이다. 마을이라기보다는 한 골짜기다. 이곳에도 큰 오리나무아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지금 논이 되었다. 작은오리골을 지나 드디어 ‘가래울’에 들어섰다.
나를 반겨준 것은 마을 어귀에 서있는 ‘용바위’다. 용바위 위에는 약 200년쯤 되 보이는 소나무가 청정한 빛으로 맞이한다.
가래울의 가래나무는 마을 한 가운데쯤 되는 언덕에 있었다 한다. 그 가래나무아래 옛날 한 장수가 퇴각을 하다가 보물을 묻었다고 전해지는데, 가래나무가 죽어 그 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마을 여기저기에 새로 지은 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가래울의 물줄기는 골말이다. ‘골말’을 오르다가 ‘고개미테’에서 문현동으로 넘는 샛길이 있다. 골말은 깊다. 따라서 좌우로 거느린 골짜기도 많다. 골말 막치기는 연못골과 비선동에 닿아있다. 호랑바위골, 산지당골, 송장골, 턱막힌골, 큰진골, 작은진골, 작은가래울, 한사골, 고메골, 뱀골, 석장골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가래울에서는 ‘꽃봉산’이 진산이다. 특별한 이름이 없던 산에 진달래와 철쭉이 붉고 화사하게 피어나 산봉우리를 뒤덮자 마을에서 꽃봉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의 이름은 ‘속등’이다.
석장골은 돌무덤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이곳에 나물을 뜯으러 가면 탄통이라든지 탄피등 전쟁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갈밭골’은 ‘홍통골’이라고도 하고 ‘산자골’이라고도 한다. 전란에 이곳에 숨었던 사람들이 많이 살아 돌아왔다고 하여 붙여진 골이다.
‘새둔지’를 지나 ‘사실고개’를 넘으면 ‘논골’이 나온다. 지금도 이 고개를 넘어 논골로 농사를 지으러 다닌다.
가래울에서 강과 닿아있는 마을은 ‘갯가’다. 용바위에서 강쪽으로 내려가면 달뿌리풀이 무성한 강가와 백사장이 나온다.
이 강에는 꺽지와 자라, 메기, 뚝찌(동사리:강원도 홍천 사투리) 등 토종물고기가 많아 밤낚시뿐만 아니라 가족단위로 물놀이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갯가를 따라 내려가면 ‘약세보’가 나온다.
약세보를 건너 다시 답풍리 다리를 건넌다. 가운데 길로 접어들어 ‘논골’로 간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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