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집이야, 상여. 그것도 몰라?!’ 도방골은 바로 상여집(곳집)이 있는 골이다. 이 마을에서는 지금도 상여를 메고 장사를 지낸다.
마을 입구나 으슥한 곳에 서있던 상여집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다. 왠지 을씨년스럽고 뭔가 나올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장례행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영여(靈輿)와 상여(喪輿)다. 영여는 상여에 앞장서서 가는 작은 가마로 두 사람이 메고 간다. 이 가마에는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싣는다. 오늘날에는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서기도 한다.
상여는 몸채 좌우에는 밀채가 앞뒤로 길게 뻗어 있어 양쪽 끝에 채막대를 가로로 대고, 앞채막대 좌우로 2줄씩 끈을 달아 뒤채막대에 붙잡아맨 다음,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멜 방망이를 좌우로 끼워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끈을 어깨에 멘다.
몸채는 단청식으로 여러가지 채색을 하고, 네귀에 기둥을 세워 위로 포장을 쳐 햇빛을 가리며, 상여 뚜껑에는 연꽃·봉황 등으로 장식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향도군(香徒軍)이라 한다.
우리의 관혼상제(冠婚喪祭)는 놀이에 가깝다. 울다가 웃다가 노래도 하고 곡도 한다. 산자와 죽은자가 한자리에서 한바탕 이렇게 노는 민족이 우리민족 말고 또 있을까?
문득 장자가 그리워지기도 하는데, 그 순간 문자를 받았다. 깨타작을 하는 집에서 들밥을 먹으러 오라는 것이다.
요즘은 들밥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기계화란 이름으로 혹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라면을 끓이거나 자장면을 시켜다 먹기도 하는데, 손전화에 전통(傳通)을 넣은 이 집 어르신이 도랑에서 버드쟁이(버들치)를 잡아 배춧국을 끓였다는 것이다.
며느리는 도리깨질을 하고 시어머니는 검부재기(검불)를 걷어내며 깨타작을 하는 동안, 도랑에서 잡은 버들치를 넣고 끓인 장칼국수. 첩도 안주고 샛서방도 안주고 먹는다는 그 맛. 알기나 해?
‘불어터지기 전에 냉큼 오시게나’ 문자가 배꼽시계처럼 울렸다. 가을추수가 끝나가는 마당에 나도 먹는 추렴하고 가야겠다.
그렇게 바쁜 가을걷이도 끝나면 샘통이나 고논,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다 추어탕을 끓인다.
미꾸라지는 한자로 추(鰍)다. 글자 그대로 가을에 제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통째로 끓여 뼈까지 꼭꼭 씹어야 맛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칼슘과 단백질, 필수 아미노산, 각종 무기질 등이 풍부해 고단위 영양제나 다름없다.
그래서 옛부터 어른들은 몸이 허하면 미꾸라지탕이나 미꾸라지 어죽을 먹었다. ‘본초강목’에 ‘미꾸라지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발기불능에 효과가 있다’고 되어있다. 최근에 밝혀진 이야기로는 ‘미꾸라지는 콘드로이친 이라는 점액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의 혈관과 장기를 깨끗이 해주어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가을에 먹고 싶은 음식이다.
밧실은 안말과 샛가람, 선바위, 웃덕탄을 아우르는 마을이다. 서낭고개를 넘으면 안말이다. 안실과 밧실의 경계를 이루는 서낭고개는 무서움도 많이 주는 고개였다. 높지는 않았지만 지루하리 만큼 길었다. 고갯마루에는 서낭당이 있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서낭당 뒤에 숨어서 놀래주기도 하고 장에 가신 엄마를 마중하러 나가 기다리던 곳이기도 했다.
옛길이 아직도 안말을 휘돌아 이어지고 길가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안말 앞밭에는 호박과 오이가 덩굴을 이룬다.
안말은 눈에 띄는 골은 없다. 골이라야 ‘뒷골’이다. 뒷골로 넘어가면 안실이다. 개울이 없을듯한데 샘처럼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이리저리 마을을 휘감는다.
안실에서 서낭고개를 넘어서자마자 오른쪽 비탈로 내려서면 샛가람이다. 삼밭을 지나 논으로 이어진다. 둔덕배기에 제각(祭閣)이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그 길을 돌아 내려가면 선바위 가는 길이다.
다리를 건너 선바위로 가는 길에는 집이 한 채 있다. 길은 거기까지다. 선바위를 보려면 풀섶을 헤치고 가야한다. 강가에 우뚝 서있다는 것 말고 별다른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오솔길이 있었다고 하는데 다 이사가고 다니는 사람도 없어 길이 없어진 것이다.
개울 건너편은 ‘더르래기’다. 강을 마당삼아 지은 펜션들이 들어서있다. 더르래기를 따라 올라가면 ‘도둔터’다. 발길을 돌려 ‘덕탄’으로 향한다.
‘덕탄(德灘)’은 물과 바위가 어우러져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옛날부터 풍류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요즘은 틈틈이 사진을 찍으러 오거나 산책하러 찾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덕탄은 보를 기준으로 웃덕탄과 아래덕탄으로 나눈다. 선바위부터 보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물살이 거세게 흐르다 양안의 산자락을 물속에 품고 숨결을 고른다. 수반 위에 놓인듯한 바위와 물빛이 서로를 반추한다.
우련히 붉어지는 산빛과 노을이 물결마다 실려 온다. 강안의 바위등강에 자리잡은 소나무가 작은 시야의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그 위에 ‘복주께(주발의 뚜껑)바위’가 있다. 얼핏보면 항아리를 더 닮았다.
보 막을 따라 강을 건너 반석 위를 걷는다. 봇물은 덕탄의 암반위로 난 수로를 따라 ‘사갑’뜰로 든다.
흐르는 물속으로 잠긴 듯 피어난 연꽃이 물결에 일렁인다. 하늘빛이 배인 바위에는 물이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공원이다.
노송은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바위의 속마음을 연다. 물살에 때를 씻은 바위는 제 몸 속의 형상을 내비춘다.
어느 도공의 손길이 닿았을까? 너럭바위 틈새에 뿌리내린 산부추가 꽃대를 밀어올리고 물결의 결을 따라 수천송이의 연꽃이 피어난다.
덕탄의 경치를 두고 누가 노래하지 않았겠는가? 오래된 서고에서 찾은 시 한편을 떠오른다.

德灘 덕탄

白雪齋 백설제

水勢逶迤兩岸開 수세위이양안개
萋萋芳草反爲媒 처처방초반위매
雷霆自作淸流瀑 뇌정자작청류폭
霜雪長留白石臺 상설장유백석대
少也登臨看不厭 소야등림간불염
老而管領興難裁 노이관령흥난재
始知白髮猶春事 시지백발유춘사
滿渚芳花笑欲來 만저방화소욕래

물살은 구불구불 에둘러 양 언덕을 열고
더부룩하게 자란 꽃다운 풀들은 얽혀 있다
격렬한 우뢰소리 내며 맑게 흐르는 폭포
서리와 눈 같이 흰 바위가 둔덕을 이룬다
어려서 올라왔을 때도 보기 싫지 않았지만
늙어서 다 돌아봐도 흥을 헤아리기 어렵구나
비로소 춘사를 알만큼 늙게 되니
물가 가득한 아름다운 꽃 웃으면서 반긴다

백설제 허해(白雪齋 許垓 : 1744년 1월12일~1824년 11월5일)는 홍천 영귀미면(동면) 후동리 동막골에서 태어나 화촌면 야시대 원평에서 돌아가셨다. 벼슬은 하지 않았으나 후학들을 가르치며 한학자로써 널리 알려진 분이다.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백암산 가령폭포 소리에 귀를 씻고 덕탄에 와 눈을 씻고 다시 듣고 다시 본다. 귀와 눈을 씻으니 순진무구한 마음만 남는다. 바쁜 일상을 훌쩍 떠나 자연 속에 어우러진 나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빛이 푸른 소리를 낸다. 방울방울 물거품을 일으키며 맴돌다가는 ‘거품소’를 바라보며 ‘수레바위’ 위에 앉아 바람소리에 묻어오는 물소리를 듣는다.
수레바위에 얽힌 전설에는 며느리의 고달픔이 담겨있다. 옛날 안실 샘밭에 부자가 살았다. 이집에는 손님이 하도 많이 들어 며느리가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주를 나온 스님에게 ‘시주는 달라는 대로 드릴 터이니 우리 집에 손님이 오지 않게 하는 비법을 가르쳐 주시겠어요?’하고 소원을 말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저기 덕탄이라는데 가면 수레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떠넘기고 그 옆에 있는 약수터에 돌을 던져 메우시면 이 댁에 손님이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돌아갔다 한다. 며칠 후 며느리는 스님이 일러준 대로 사람을 시켜 수레바위를 떠넘기고 그 옆의 약수터를 돌로 메워버렸다 한다. 그 후로는 손님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집안에 적막이 감돌고 가세도 기울어 끝내 망해버렸다고 한다.
‘말등바위’에 새겨진 물의 흔적과 ‘물새바위’, ‘수레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느림과 여유의 참뜻을 일러준다. 우뚝우뚝 이름도 없이 서있는 바위들이 손을 내민다.
강가에 드리운 노송에는 까막딱따구리가 봄마다 와 집을 짓고, 바위 밑에선 메기와 꺽지, 모래무지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지나간다.
바위와 물이 만나 이루는 향연이 이보다 더 조화로울까.
한때 덕탄을 찾는 사람들로 몸살을 겪었던 적이 있다. 최근에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편입되면서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자 강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강가에 서있는 소나무에서 솔잎이 떨어진다. 이 가을 단풍으로 몸살을 앓던 나무들이 옷을 벗듯 근심을 떨어내듯 바람에 훌훌 날려 보낸다. 아름답다고 다 끌어안고 가려한다면 그의 업보는 얼마나 무거울까? 그게 자연의 순리이리라.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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