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淸凉) - 말만 들어도 시원하다.
들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자를 푹 눌러쓴 아낙네들의 이마에 땀이 흐른다. 노란 물장화를 신고 허리춤엔 비료포대로 만든 주머니를 매달고 한손엔 모춤을 잡고, 이앙기가 빠뜨린 모를 꽂는다. 하루종일 쫓아 다니며 모를 잇는다.
곁두리 때를 맞추어 마을을 지나다가 참을 얻어 먹었다. 예전에는 모심는 날이면 잔치 분위기였다. 힘들지만 품앗이를 하거나 두레를 하였다. 그래서 봄에 장가든 사내 녀석은 품에 넣지도 말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부부가 심는 곳이 많다.
나그네의 발길도 붙잡고 막걸리 한 대접을 권하지 못하는 시절을 나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땅을 믿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눈이 맑다.
근심을 품고 사는 게 우리네 삶이지만,
씨앗을 뿌리는 순간
마음은 꽃을 담는다.
웃음에선 향기가 난다.

농사란 자연을 마음에 담는 일이다.
뜻을 알고 순리에 순응하는 법을 땅에서 배운 것이다.
서석에서 횡성으로 가는 19번 국도를 따라 들어선다. 하군두리 옥녀동을 지나면 청량리다. 청량사란 절이 있었다고 하여 청량이라 부르지만 청량사는 없다.
먼드랫재를 경계로 보면 청량이란 이름은 응달을 달리 부르는 이름인 듯하다. 암튼 이름이 참 예쁘다.
청량은 운무산이 감싸안은 마을이다. 크게 세 골짜기로 나눌 수 있다. 삼년대와 면골, 서근바위라 불리는 삼근암골, 먼드랫재를 넘는 국도변의 노장촌이다. 골로 따지면 면골이 가장 깊고 멀지만 운무산을 주산으로 하면 보리울과 삼근암골이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나그네에게 경계를 넘는 느낌이 색다르다. 나는 횡성 청일을 거쳐 먼드랫재를 넘기로 했다.
먼드랫재는 운무산과 수리봉의 능선마루다. 경계에는 횡성군과 홍천군의 입간판이 서 있고 쉼터 겸 산림초소와 군기가 나부낀다. 가재마을이란 정감 있는 이정표가 서있고 정상에는 해발 고지판이 서있다. 고개를 넘어 홍천으로 들어서자 산막으로 드는 느낌이다.
길은 골짜기와 함께 한다. 숲이 우거져 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골짜기로 들어서면 암반위로 물이 흐른다.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씻고 싸가지고 간 찐빵을 먹었다.
홍천이란 숨겨진 곳이다. 안으로 들어와야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을 알리는 안내판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골짜기마다 전원주택이 들어서있다. 누군가 살아야 마을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먼드랫재에서 내려오면 노장촌이다. 노장촌은 새댁이, 달박골, 북밭치, 노장골, 미락골, 가는 논골(가는 골), 헛가마골, 산지당골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먼드랫재에서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넓은 둔덕이 보인다. 새댁이골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더 넓다 한다. 그래서 벌떡새댁이라 한다. 다시 19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달박골인데, 새재를 넘어 삼근암으로 갈 수 있다. 고개를 다 내려와 만나는 골은 참산데기다.
지나온 먼드랫재를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북밭치다. 그러나 북밭치는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하고 입새는 흙둔지다. 제방을 따라 올라가다 왼쪽으로 서석장뇌농원이 있는데 광산골이다. 광산골을 지나야 비로소 북밭치와 가골에 들어설 수 있다.
가골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안쪽까지 띄엄띄엄 집들이 들어서 있다. 골이 아름다운 탓일까? 그러나 가골은 깊지 않다. 나는 북밭치로 올랐다. 웃무동골을 지날 때였다. 꽃향기가 은은하니 깊어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고추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병꽃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다. 꽃향기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나는 보문사라는 작은 절 앞에 와 있다.
절은 골이 합쳐지는 자리에 있다. 절 아래에는 작은 폭포를 이루는 칡소가 있고 절 뒤는 칡소골 바람이 시원하다.
산과 산이 빚어낸 크고 작은 골은 한 폭의 산수화다. 작은 베메기골이 있고 큰베메기골 있다. 큰베메기골을 오르면 호랑바위가 나오는데 안개가 감고 돌아 봉우리를 감춘다. 호랑이가 나오는데 여우는 안 나올까? 오른쪽 능선 마루는 여우재인데 고개를 넘으면 횡성 봉명이다. 능선 오른쪽은 버드래골이 한자리 한다.
법당에 들어 삼배를 올리고 돌아 내려왔다. 큰길에 나서니 네시 반이다. 아직은 해가 중천이다. 길옆 우사에는 소들이 나른한 오후를 되새김질 한다.
길 건너편은 노장골이다. 노장골은 긴 능선 따라 골이 나뉜다. 길도 왼쪽으로 휘어져 든다. 샘이나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논골은 벌써 모내기를 했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도로박골이다. 할머니가 걸망을 지고 내려온다. 뭐냐고 물으니, 나물이라며 이것저것 뜯었다고 하신다.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골이 집골이다. 여느 마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마을이다. 그러나 승량골로 들어서면 다르다. 아직도 승량간(대장간) 터가 남아있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승량골에서는 보습이며, 고드랫돌(자리나 발을 엮을 때 끈을 감는 추), 호미, 낫 등을 벼르는 망치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승량골에서 망치질 소리가 멈춘 것은 기계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다 떠났기 때문이다. 그 아래 골이 댕배골이다.
노장골은 골골이 이어져 버덩을 이루고 있어 아늑하다. 노장골이란 이름은 오른쪽으로 길고 야트막하게 내리뻗은 능선에서 비롯된 듯싶다.
이 능선을 황정재골이라 하는데, 고개를 넘으면 어론 황정골로 이어진다. 능선 오른쪽 골은 전란골이다. 난리가 났을 때 피난살이를 하였다 한다.
큰길에서 보았을 때는 금방 둘러보겠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기울었다. 서둘러 서석으로 나오면서 국도변에 세워진 마을 이정표를 메모한다. 밤나무골은 노장골 아래 골자기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른다. 아직도 저녁에는 군불을 넣어야 한다. 가는 논골은 가는 골이라고도 한다. 골 어귀에 우사가 있다. 저녁 여물을 주는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골이 깊은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얼굴에 망을 쓰고 나왔다. 벌이 난 것이다. 고약하게도 밤나무 상수내기에 뭉쳐 받아내는데 힘들게 됐다. 쏘일까봐 도아주지도 못하고 잘 받으라는 인사만 했다.
산지당골은 가는 논골과 마주한다. 저녁 햇살이 산봉우리에 걸렸다. 산그늘이 깊어 응달말이라 하는데 주로 소를 키운다. 헛가마골은 가는 논골 아래 골짜기이다. 황정골로 넘는 지름길이라는데 나물 뜯으러 가는 사람들 말고는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럭저럭 붉은대기를 돌아 삼근암까지 내려왔다.
낮에는 모두 일하러 나가서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저녁이 되니 들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잡고 이것저것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일에 지쳐 많이도 물어보지 못한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골짜기에 맺힌 사연이 하루아침에 잊혀 지겠는가? 청량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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