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산으로 오르는 길은 두갈래이다. 버들구미에서 양지말로 오르는 길과 응달말에서 모둘자리를 지나 오르는 길이다. 나는 양지말이라 부르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양지말 어귀는 버들구미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실버타운이 조성돼 있다. 옛날에는 아득한 골짜기였고, 어귀에는 성황당이 있었다. 그 자리에 삼생정보화센터가 있다. 앞으로 삼생마을농촌체험관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버들구미를 지나 용오름 마을로 들어서면 양지말이다. 구방, 둔지, 새말이 언덕을 이루고 있으며 하루 종일 해가 든다.
마을로 들어서면 보건진료소와 마을회관 경로당이 있다. 여기가 구방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언덕배기를 올라서면 둔지다. 한때 군사가 주둔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 낮은 산 밑으로는 안구랭이라고 하는데 집들이 드문드문하다.
둔지를 지나 길은 개울 쪽으로 이어지고 약간 내리막을 지나 왼쪽 산 밑을 올려다보면 무덤사이로 빈 집터가 보인다. 여기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줄줄이 솟은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제일 앞의 봉은 채일봉이고, 가운데는 장군봉이다. 장군봉에는 아기장수 탄생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아기장수전설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죽음을 당하지만 이 아기장수는 수명을 다하고 죽는다.
다시 마을 안길을 따라 내려 오다보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만난다. 소나무 숲속에 용오름 펜션이 있다. 그 뒤편이 폭포산이다.
폭포산은 물의 산이다. 산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데 분명 산은 있다.
폭포산은 물속에 잠겨 있다. 소나무 숲 사이로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물은 깊은 소를 이룬다. 소나무 숲을 돌아 내려가 보를 막은 둑에 서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속을 바라보면 산이 보인다. 수양산이다.
폭포산에 잠긴 수양산은 봉우리만 보여준다. 폭포는 그리 높지 않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아니라 너럭바위를 흘러내리는 물줄기다.
옛날 이곳에 살던 늙은 부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비범하여 역적이 될까봐 죽였다고 한다. 그러자 이 폭포에 살며 장수를 기다리던 용이 바위를 뚫고 올라갔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에는 용의 발자국을 닮은 형상이 남아 있다.
폭포산은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찾는 이들이 많다. 소나무 숲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다. 폭포산에서 다리를 건너 내려가면 응달말이고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덕거리다. 앞개울에는 소나무 숲 야영장이 있어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이 좋고 바람이 좋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길도 물줄기도 갈라진다. 계속 올라가면 진장동(긴장골)이고,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명동이다. 진장동은 응봉산 막까지 이어지는데 골에 비해 물은 실하지 않다. 옛날에는 진장동을 지나 내면 방내로 넘나들었다. 가마소를 지나면 골이 부채살 같다 하여 ‘부채사뱅이’라 한다. 가장 낮은 골을 따라 올라가도 벼랑같이 깎아 세운 고개다. 하여 ‘각근치(까근재)’라고 한다. 산이 높고 길이 험해 호랑이가 살지도 모른다고 한다. 최근에는 행치령에서부터 출발하는 등산객들이 어쩌다 오간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마리소리박물관이란 조그만 이정표를 따라 들어섰다. 명동이다. 마을사람들은 멍데이라고 부른다. 골이 깊고 멀다하여 그렇게 부른다.
어느새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마리소리박물관은 왜 이리 깊은 산골짜기에 지었을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생각하며 터덜터덜 걷는다.
멍데이에는 소명동골, 마리골, 대명동골이 있다. 길옆 바위벼랑에는 벌통이 놓여있다. 원래 멍데이는 철을 캐던 광산이 있었다. 철이 얼마나 많이 났던지 쇠판이라고 불렀다. 마을에서는 철을 주제로 대장간을 비롯하여 전통농사도구 전시관 및 체험학습장을 건의했다고 한다.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은 마리골 내치기에 있다. 이곳은 장자터다. 왼쪽 골이 마리골인데, 골 안까지 쌓은 석축이 방문객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아담한 별장이 있고 뒤쪽에는 석굴이 있다.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하얀 건물이 있다.
박물관이다. 귀를 형상화하여 설계한 박물관은 전시관 겸 무대가 꾸며져 있다. 편종, 편경, 비파, 가야금 등 우리의 전통악기와 서양악기 등 8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대시대의 악기다. 그러나 아직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먼 걸음을 한만큼 눈과 귀가 즐거워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2007년 개장 이래 바뀐 게 없다.
박물관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간다. 쇠판이까지 갈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들어갈 수가 없다. 사유지라며 막아선다. 그렇게 돌아서서 내려오는 길은 참으로 허망하다.
멍데이는 계곡이 참 아름답다. 귀룽나무, 신나무, 단풍나무가 그늘을 이루는 암반계곡이다. 지금은 귀룽나무, 돌배나무 꽃이 한창이다. 수수하고 욕심이 없이 스며드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씻으며 다시 폭포산까지 내려왔다.
폭포산에서 다리를 건너 응달말로 들어선다. 폭포산을 에두른 강물은 응달말과 양지말을 가르며 흐른다. 응달말은 수양골, 곧너미골, 가등골 발치에 펼쳐진 너른 버덩이다. 수양골을 따라 올라가면 바루봉을 만난다. 골이 제법 깊고 물도 실하다. 수양산은 바로 바루봉을 말한다.
수양골을 지나면 곧너미골이다. 이골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판관대가 나오는데 이 고개를 곧너미 고개라한다. 서석과 내면은 이웃하고 있어 옛날부터 왕래가 많았다. 새말에 사는 이종윤씨(93)는 내면에서 화전을 하다가 이 고개를 넘어 이사를 왔다고 한다. 걸어 다니던 시절 내면으로 갈 때 이 고개를 넘어 가면 15리는 빨리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곧너미골 어귀를 돌아들면 삼신산이다. 태극지형의 물길이 구불구불 세 봉우리를 감싸고 흘러내린다. 삼신산에는 1962년 ‘정신’스님이 세운 아담한 절이 있다. 서봉사다. 서봉사는 삼신을 모시는 절이다. 삼신은 천신, 산신, 성황신을 말하는데, 서봉사가 삼신이 모이는 자리라고 한다. 절 뒤편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 아래 산신각과 성황당이 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있다. 계곡으로 내려가면 물소리, 솔바람소리가 시원하다. 기암괴석의 바위가 물속에 비춰든다. 유년을 기억하는 사오십 대의 사람들은 소풍가던 날을 기억한다. 성황당을 끼고 도는 계곡의 물소리는 불경처럼 들린다. 한 여름이면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물놀이를 즐기며 몸과 마음의 때를 씻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도 물놀이 사고는 없었다고 한다. 삼신이 보살핀 덕이라고 한다.
성황당에서 마을사람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미신이라고 마을사람들이 성황당을 부순 적이 있었는데, 마을에 액운이 돌아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마에 떠내려가 소실되었다가 서봉사와 함께 세워진 것이다.
더러는 마이산, 아미산, 수양산을 삼신산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삼신산은 산이 아니다. 옛부터 부르던 마을의 한 지명이다.
삼신산의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모둘자리다. 농촌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농원이다. ‘모둘자리’는 ‘모두 올 자리’라는 정감 있는 말이다. 이 농원은 강원도 내 관광농원의 개발 모델로 선정되었으며 토박이 농민들이 공동 출자하여 조성한 시설이다.
봄이면 야생화의 유혹을, 여름에는 옥수수 굽는 모닥불과 계곡 물놀이, 가을에는 알밤 줍기와 고구마 굽기, 겨울에는 황토 찜질방과 비료포대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사계절 산촌의 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라일락이 한창 향을 내뿜는다. 삼신산 계곡의 물길이 농원 한가운데를 흐르며 개울가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출렁인다. 전통가옥과 수영장, 호숫가에 세운 정자에 앉으면 고향집에 온 듯하다. 추억으로 떠나는 시간이다. 손수 빚은 솔잎동동주와 버섯생불고기에는 농부의 인심이 넉넉하게 담겨있다.
모둘자리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56번 국도에 닿는다. 옥수수의 담백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해도 기울고 배도 고프다. 서석 옥수수 찐빵을 먹으면서 군두리로 들어선다.
하군두리는 ‘딴마산’능선에 솟아오른 옥루봉의 자락이다. 옥루봉은 부도골, 너머모텡이, 둔덕모텡이, 옥로골을 거느린다.
부도골과 옥로골로 오르면 옥루봉에 오르는데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고 한다. 상보의 물꼬가 옥루동에까지 닿는다. 조롱고개를 넘어 옥루골로 들어왔다. 청량이다. 구비를 돌아서자 청량분교가 보인다.
글·사진 허 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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